우린 지금 충무로 가고 있는 중이다.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건성으로 보며 나는 누가 묻지도 않는 질문에 혼자 대답을 만들고 있다. 그건 내 오래된 버릇이다. 마음 상하는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반박을 못하고 몇 날 며칠을 혼자 질문 하고 대답 하는 내 오래된 버릇. 그건 결국 세상과 맞닥뜨릴 용기가 없는 자의 내 살 파먹기 식의 삶의 방식이라고, 머리가 아프도록 인식을 하고 있다.
여름 방학을 하고 보름이 지났다.
미경은 방학하기 두 주 전, 이사 간지 며칠 만에 발목을 부러뜨렸다.
출근 시간에 엘리베이터가 작동이 안 되었다 한다. 초조히 기다리다 바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출근을 해야 하는 아침은 일 초가 귀하다. 그 날따라 좀 늦었다. 이사간지 얼마 안 된 집이라 낯이 설어 그런지 전날 밤 늦게 잠이 들었다. 결국 늦잠을 잤다.
비상계단 쪽으로 달려가 계단을 두 개도 밟아보지 못하고 굴렀다. 출근이 뭔지, 다리가 부러진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벌떡 일어나다 도로 주저 앉아버렸다. 오른 쪽 발목에서 올라오는 통증이 무릎까지 뻗치며 저절로 악 소리가 났다. 다시 일어날 때, 아마 부러진 뼈 조각이 다른 곳을 건드려 수술이 좀 복잡해진 것 같았다. 발목에 얇은 철판을 대는, 두 시간이나 걸리는 수술을 받고 깁스를 했다.
미경은 깁스를 한 채로 꼼짝없이 두 주나 병원에 누워있었다. 병원이라고는 거의 가 본적이 없던, 더구나 꼼짝없이 그렇게 오래 누워 있어본 적이 없는 미경은 답답해서 몸살을 했다. 겉보기엔 정적으로 보이는 미경이, 우리에 갇힌 야생 호랑이처럼 으르렁대는 걸 보고야 상당히 동적인 여자라는 게 믿겼다.
미경은 깁스만 풀면 돌아다닐 수 있는 줄 아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깁스를 빨리 풀 수 없냐고 간호사에게 물었다. 미경은 병원에 있는 하루하루를 무섭게 저주했다. 미경의 고집 때문에 통원 치료를 하기로 하고 깁스를 한 채로 퇴원을 했고, 미경의 저주에 아랑곳없이 병원에서는 약속한 대로 한 달 만에 무거운 깁스에서 미경의 발목을 해방시켜 주었다.
그런데 깁스를 풀기만 하면 가볍게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던 미경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깁스 푸는 날 따라갔던 소형이 말하기를 미경이 그 날 몰래 울더라 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소형이도 굉장히 놀랐다. 생각보다 수술 상처도 컸고, 당연하겠지만 근육을 쓸 필요가 없었던 오른 다리는 엄청나게 가늘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발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발까지 깁스를 해 발목 관절도 굳어버렸다. 물론 물리치료를 하고 운동을 하게 되면 차차 풀린다고 병원에서는 안심을 시켰다. 그러나 깁스를 푸는 날을 너무나 손꼽아 기다려 온 미경에게, 바닥을 딛고 설 수도 없는 발은 당연히 큰 충격이었다. 무슨 일에든 몸을 아끼지 않던 미경은, 생각보다 겁이 많았다. 깁스로 단단히 감겨있을 땐 목발을 짚고 걷기도 하더니만, 갑자기 헐렁해진 발목으로 땅을 디디기가 겁이 나는지, 오른 발로는 디디려고 하지도 않았다.
답답한 병원과 무거운 깁스에서 해방된 미경은 또 다시 집에 갇힌 꼴이 되었다. 방학이었으므로 우린 뻔질나게 미경의 집을 드나들었다. 우리가 자주 드나들어도 미경의 마음은 밖에 가 있는지, 숲에서 쫓겨난 맹수처럼 정기 없는 눈이 슬프기까지 했다.
미경이 목발을 짚고 조심스럽게 땅을 디딜 수 있게 되자, 소형이 수자와 의논해 충무 바닷가의 콘도를 예약했다. 미경이 의향은 필요 없다고 했다. 물어봤자 못 간다고 할 게 뻔 하다고, 그건 미안해서지 가기 싫은 게 결코 아니라고 단정을 했다. 소형의 판단은 정확했다. 남의 속을 헤아리는 데는 과연 천재였다. 가자고 했을 때, 미경의 이마에 그려진 말은 ‘나 때문에 너희들 마음껏 다니지 못해 어쩌지?’였다. 미경이 표정만 보고도 소형은 마음까지 헤아려 대답을 했다.
<우리도 이제 몸을 움직여 신나게 놀 나이도 아니고.>
여기까지 말하고 소형은 한 번 싱겁게 웃었다.
<그저 바다나 실컷 보자. 관광이 아니라 휴양이라 생각해. 하루에도 몇 군데 관광지를 도는 후진국형 관광이 아니라, 느긋하게 바닷가에 누워 햇살이나 쪼이고 책이나 읽는 선진국형 휴양을 하자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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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창은 바다를 향해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짐을 내려놓고 커튼을 열자 바로 바다가 펼쳐졌다. 바다는 온 몸 가득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찬란했다. 덩그러니 높은 침대에 누우면 하늘과 바다만 보여 마치 바다에 떠있는 것 같았다.
바다를 보는 미경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 잘 왔다는 얼굴이었다. 미경은 창가로 가 한참을 정신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를 보는 그녀의 어깨 위에 날개가 자라나 펄럭이는 것 같았다. 그녀에겐 옷이 날개가 아니라 자유가 날개구나. 그런데 우리 중 가장 자유롭지 못하다.
미경은 웬만한 일은 앉은걸음으로 다니며 처리했다. 엉덩이를 바닥에 댄 채, 왼다리로 바닥을 밀며 잘도 움직였다. 그렇게 다니면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를 못 도와 안달이었다.
<앉아서 대접받는 것도 연습이 돼야 자연스럽게 되는 거구만. 아무나 마님 하는 것이 아니여.>
하면서 소형이 혀를 찼다.
<다리 안 다쳤어도 한 끼 해 먹이는 거 뭐 어려운 일이라고. 너 그런 몸으로 밥한다면 우리 인간성이 뭐가 되겠어? 너라면 그러고 싶겠니?>
수자도 왁왁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데 미경의 대답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럼 설거지는 내가 할게. 싱크대에 기대서서 하면 된다. 집에서도 그렇게 했거든.>
수자와 소형은 말도 하기 싫은지 둘이 서로 마주보고 입만 벌렸다.
<그러자. 우리 밥 먹고 미경이 목발 옆구리에 끼워 놓고 설거지시키고, 우린 뭘 할까. 오랜만에 추억을 되살려 수건돌리기나 할까?>
냉장고에 음료수와 반찬들을 챙겨 넣고 있던 내가 돌아보며 말참견을 했다. 그제야 미경이 배시시 웃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그림이 좀 그랬던 모양이다. 미경의 억지는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