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난 어떤 존재일까.
알뜰살뜰 보살펴야 할 필요가 없는 성인. 가끔 한가할 때나 생각이 나는 사람. 그 정도가 아닐까. 매일 무얼 먹고 사는지,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상을 볼 수 없고 일상을 알지 못한다. 사실은 가족이 아니라 가족이었던 사람이다. 일상을 모르면서도 가족이란 기억을 놓지 않고 있을 뿐. 그러니 난 현재는 가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상을 같이 하는 가족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친구가 어떤 존재인지 언니는 모른다. 더 많은 일상을 함께 하는 친구가 차라리 이제 나에게 가족과 같은 존재인지 모르는 것이다.
언니의 말에 화가 났다기보다, 그동안 그런 시각으로 보고, 그런 투로 말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답답함이, 마침 언니를 상대로 터진 것이다. 언니의 애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 언니의 말 사이에는 나에 대한 애정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해받지 못하는 관심과 애정이 더 아플 때도 있다. 이해 없는 사랑은 공기로 한 밥만큼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타인의 박대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무심함이 더 서럽지 않겠는가. 섭섭하다는 뜻이 아니다. 난 어린애도 아니고 투정을 부릴 마음도 없으며 그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다만 적어도 한번쯤은 깊이 냉철하게 생각해 볼 문제란 뜻이다.
그 날 밤,
수화기를 다시 들지는 않았지만,
안개 속에 서 있는 것처럼 가슴이 막막했다.
약한 바람이 일며 배에 무엇이 덮였다.
소형이나 수자가 작은 담요 같은 걸 덮어 주었으리라. 잠이 든 건 아니었지만 자는 척 해버렸다. 나른나른 잠이 오는 중이라 눈을 뜨기가 아까웠다. 발뒤꿈치를 들고 가볍게 물러나는지 옷 스치는 소리만 들린다. 조심스럽게 컵을 놓는 소리도 났다.
자는 척 하다 정말 잠이 들어버렸다.
초인종 소리에 잠이 깼다. 수자가 슈퍼마켓에 내려갔다 온 모양이었다. 수자는 목소리만 큰 게 아니다.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니다. 모든 세포가 아우성을 치는 듯한 그녀의 움직임을 모를 수는 없다. 발소리와 봉지 스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나는 침대에서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미경이 봉지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수자 배고픈가봐. 쟤 배고플 때 슈퍼 보내면 안 되는데. 단비야 너도 봤지? 지난번에 마트 갔을 때, 수자 거의 환갑잔치 하는 줄 알았잖아.>
소형이 미경이와 같이 봉지를 풀어 수자가 사온 걸 꺼내며 나를 보고 웃었다.
<그러니까 배 비었을 때 시장가는 거 아니래. 아줌마들이 그런다잖아. 배고플 때 장보면 평소보다 몇 배로 주워 담는대. 그래서 절약 차원에서도 시장 가기 전에는 배를 좀 채우고 간다더라.>
<쟤는 자더니 언제 일어났어? 깜짝 놀랐잖아. 갑자기 뒤에서 소리가 나서.>
난 수자와 반대다. 존재감이 없다. 내 움직임을 모르고 있다가 놀라는 사람이 많다. 그걸 수자가 제일 못 견뎌한다. 하지만 수자가 그녀의 수다한 움직임을 어쩔 수 없듯이 나도 어쩔 수 없다.
정말 놀랐는지 쇠눈 같은 굵은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우리 언니도 자기 배부르면 밥하기 싫대. 특히 계모임이라도 있었던 날엔,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을 밥인데도 이 정도면 되겠지 싶고, 아이들 대충 차려서 먹인대. 한마디로 ‘내 배 부르면 종 배도 부르다’ 이거지.>
<넌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안하고, 언제 깼냐니까? 아직 잠 덜 깼어?>
수자가 정말 화가 났다. 중요하지 않은 질문에 목을 맨다. 내가 언제 일어났는지가 지금 이 상황에서 그렇게 중요할 리가 없다. 배가 고프긴 고픈 모양이다. 배가 고프면 만사가 불만이다. 이럴 땐 심사 건드리지 않는 게 최고다. 속으로 더럽다 생각하지만 이 정돈 참을 수 있다. 우린 친구니까. 난 상냥하게 대꾸했다.
<응, 너 들어오는 소리에 깼지.>
소형이도 눈치를 챘는지 풀던 봉지를 밀쳐놓으며 일어났다.
<배고프다. 밥부터 먹자.>
미경이는 아무 말이 없다. 모두 알고 있다. 수자의 버릇을. 아니 우리 모두의 버릇을.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바다는 짙은 푸른색으로 넘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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