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역사이야기1 #월터스콧
9장 더글러스와 랜돌프
10장 배녹번 전투
11장 로버트 브루스의 최후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스코틀랜드를 복속시킨 에드워드 1세도 세월의 흐름에는 저항하지 못하고
로버트 브루스가 스코틀랜드 왕으로 추대되고, 더글러스, 랜돌프 등 용맹한 부하를 두고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을 전개했을 때 사망한다. 에드워드 1세를 이어 아들 에드워드 2세가 왕위에 오르나, 아들은 아버지와 달랐다. 10만 군대를 소집해서 스코틀랜드를 제압하러 오나 3만의 스코틀랜드 군대는 지혜롭고 용감한 왕의 지휘 아래 배녹번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후, 잉글랜드 왕은 스코틀랜드에 대한 종주권 주장을 완전히 철회했고, 여동생 조아나 공주를 로버트 브루스의 아들 데이비드와 결혼시켰다.
1328년 노샘프턴 조약.
로버트 왕은 이 일이 있은 후 사망한다. 그는 그동안 저지른 온갖 죄악에 대해 후회하고, 심장을 성지로 가져가 줄것을 요청했으나 (더글러스에게) 실패하고, 그의 심장은 멜로스 수도원, 시신은 던펌린 교회에 안치되었다. 이후 교회는 파손되었는데 500여년이 지나고 그의 유해가 발견되고, 새로 무덤이 만들어져 안치되었다.
왕의 놀라운 지혜, 용기 그리고 애국심이 그가 한때 다스렸던 나라의 국민들의 기억 속에 그렇게도 오래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다. 그러나 로버트 브루스처럼 훌륭하고 애국적인 행위로 기억될 때에만 그 이름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군주가 압제와 학정을 휘두른 지도자로 기억되느니 차라리 천한 소작농처럼 그저 잊혀지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p151
12장 봉건시대의 스코틀랜드
로버트 브루스 통치 시기 당시의 법률제도와 사회상을 설명한다.
잉글랜드가 귀족원(상원)과 서민원 (하원)으로 의회가 구성되어 있는 반면 스코틀랜드는 귀족, 고위 성직자, 각 주의 대표, 자치도시의 대표등이 한 방에 모여 같은 의회의 구성원으로 토론과 투표를 행했다. 왕이 의회가 넘겨준 법안서를 승인하는 것으로 나라의 법률은 백성들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귀족들의 권한이 커서 여러 문제가 많았다. (특히 지방)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통합된 이후로는 잉글랜드 방식을 따른다.
특히 하일랜드(고지대)와 보더스 지역은 주민들이 워낙 거칠고 야만적이이서 법이 아예 없었다고도 할 정도. 하일랜드는 게일어를 쓰고 타탄이라는 체크무늬 옷을 입고..항상 무장하고 다녔다. 씨족 (가문)으로 구분, 족장에게 무조건 복종했고 저지대 사람들과의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보더스는 하일랜드만큼은 아니나 (거친면, 불복종), 씨족 중심이고, 언어는 저지대 사람들과 같은 언어를 쓰고 의복, 무기도 비슷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아웃랜더‘를 보면 하일랜드 사람들의 생활상이 보인다. 월터 스콧이 소개하는 하일랜드 사람들의 모습을 드라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재밌음!)
13장 더플린 전투와 할리던 힐의 전투
14장 앤드루 머리의 섭정기 ~1338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뛰어난 왕이었던 로버트 브루스가 죽고 나서, 그의 아들 데이비드-데이비드 2세는 겨우 4살로 왕위에 올랐다. 랜돌프가 섭정에 올랐지만, 브루스 가문에 원한을 품어온 사람들은 왕권을 삣으려고 음모를 꾸민다. 에드워드 베일리얼(브루스 전에 스코틀랜드 왕이었던 존 베일리얼의 아들)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스코틀랜드는 군사적 우위에도 대패- 더플린 전투, 할리던 힐의 전투- 스코틀랜드의 대부분을 잃는다. 베일리얼은 왕위에 올랐지만 잉글랜드의 속국이었다.
그러나 일부의 땅을 차지한 브루스 체제는,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면서 스코틀랜드에 소흘한 틈을 타서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재기를 꿈꾼다.
전투 내용, 전쟁 중이면서도 쉬는 시간에 양국의 기사들이 마상 경기를 벌이는 등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위험한 전쟁이 심각한 직무였을 뿐 아니라 동시에 스포츠 경기이기도 했던 이 시대의 오락 문화(p184)‘라니..ㅎㅎㅎ
15장 데이비드 2세 1339-1370
로버트 브루스의 아들로 4살 때 왕위에 오른 데이비드 2세.
42년 간 왕위에 있었고 그 중 12년은 포로 생활을 했다.
그의 삶은 고단했으나, 어쨋든 스코틀랜드인들이 인정한 왕이었다.
에드워드 베일리언은 잉글랜드와의 협약으로 왕으로 올랐으나 이름뿐인 왕이었다. 결국은 물러남.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는 스코틀랜드 정복에 대한 꿈을 접고, 휴전을 제의하면서 데이비드 왕을 석방시켰고(1357년?1358년?). 11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 데이비드 2세가 돌아오자, 스코트인들은 너무나 기뻐했다. 왕을 졸졸 따라다녔고, 심지어는 침실로까지 들이닥쳤다고. 화가 난 왕이 홧김에 부하의 곤봉을 가로채서 가까이 있던 신하의 머리를 박살내었고, 이 사건 이후 왕이 그의 저택에 혼자 머물 수 있었다고.
(이 책에는 이런 사례가 많이 실려있다.재밌음.)
16장 스튜어트 가문의 왕위 계승
데이비드2세는 후손이 없어서, 로버트 브루스계의 남자 혈통은 끊긴다. 이후 외손자(로버트 브루스의 딸 마조리와 월터 스튜어트의 아들)에게 왕위가 계승된다. 이 가문은 스코틀랜드를 통치하게 되고, 이후 잉글랜드 왕도 겸한다. 스튜어트 가문 최후의 왕은 1688년 명예혁명에서 왕권을 잃고, 그의 아들과 손자들은 망명 중에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해서 지금은 스튜어트 가문의 여자 계통이 왕위를 잇게 된 것이다.
17장 로버트3세
18장 올버니의 섭정기
로버트 2세의 장남은 존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나 잉글랜드에서 존이라는 이름의 왕들은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또 스코트인들이 로버트라는 이름을 좋아했기 때문에 존 스튜어트는 왕위에 오르면서 로버트 3세로 이름을 바꾸었다. (잉글랜드의 존왕은 악명으로 유명하고, 이후 존이란 이름은 안쓴다고 들었다.)그러나 이름을 바꾸고도 불행했다고..ㅎㅎㅎ
로버트 3세는 동생 올버니의 공작에게 휘둘려서, 큰 아들 로스지는 굶어 죽었고(헉!) 둘째 아들 제임스는 프랑스로 보내려하다가 배가 잉글랜드 군함의 공격을 받아서 포로가 된다. 제임스는 18년 동안 런던에 포로로 잡혀있었고, 이후 돌아온 제임스는 올버니의 머독 공작(로버트 3세의 동생이 섭정으로 있다가 아들에게 물려줬는데, 그 아들)과 그 아들들을 교수형에 처했다. 머독 공작의 아들들은 너무나 엉망이어서, 아버지 머독은, 잉글랜드에 잡혀있는 왕을 풀려나게 해서 아들들의 오만한 행동을 그만두게 하고 동시에 자신도 섭정 자리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동서를 막론하고 권력 욕심은...핏줄도 부정한다. 역사책을 읽다보면 인간에 대한 회의가 절로 생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