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 연재중인 기획인 '지식인의 죽음' 가운데 한 꼭지이다. 오래된 것이지만 고병권의 글이라서 읽어보았다. 그러나 다중지성, 대중지성이 시대적 흐름이라고 보는 것은 일견 그럴 듯하지만 그러한 시대적 흐름이 그러해야만 하는 당위적 흐름이라고 나는 보지 않는다. 나의 스타일은 아닌 듯하다. 난 마르크스의 표현처럼 생산이 사회 협력적 형식을 가지듯이 지식도 그러해야만 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좀 끔찍하다. 물론 사회 협력적 형식을 가지고 생산되어야할 지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 개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아니 지식인이 아니라 인간이 그러한 측면이 없다면, 그리고 지식이 한 인간의 독특성을 개발시키고 성숙시켜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고병권의 글이다.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지식인이 사라진 시대의 지식투쟁
작년 초 어느 잡지로부터 한국 사회의 지식인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자료들을 이것저것 뒤져보면서 내가 도달한 결론은 아주 역설적인 것이었다. 지식을 둘러싼 투쟁은 그 어느 때보다 격화되고 있는데, 정작 지식인이라는 존재는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쓴 글의 제목이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죽음을 예감하다’였다. 현재 지식인은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믿는 자들의 자의식 속에서만 살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신지식인’ 희극적 죽음 역설-
그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내가 학부시절 지켜본 격렬했던 논쟁의 당사자들, 수강신청에 상관없이 매 학기마다 수백 명을 불러 모았고, 내게 ‘공부도 피를 끓게 하는 구나’를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여전히 발표하고 토론하지만 이제는 박수도 욕설도 없다.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시위대의 맨 앞에 서 있지만 내 눈엔 그들 뒤에 서 있는 것이 한 무리의 허전함으로 보인다.
대신에 신종 지식인들이 나타나고 있다. 가령 정부는 매년 수십에서 수백 명씩 ‘신지식인’들을 발표하고 있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생산력 향상 및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수십, 수백 명의 신지식인들. 나는 정부가 양산하는 이 지식인들에게서 지식인의 희극적 죽음을 느낀다. 나는 또 어느 포털 사이트에 출현한 탈인간적 형상을 한 ‘지식인(지식iN)’의 대성공을 보면서도 지식인의 죽음을 생각한다. 이제 ‘지식인에게 묻는다’는 것은 어떤 ‘인간을 만난다’는 뜻이 아니라 ‘네트워크’에 접속한다는 말이 되고 있다. 나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지식인의 죽음을 예언하는 징표들을 보고 있다.
물론 지식을 다루는 일도, 그 일을 하는 사람도 사라지지 않았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하는 게 사실이라면 그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독자적인 집단으로서, 하나의 범주로서 지식인이 존재할 것인가. 만하임의 말처럼 “어디에도 뿌리를 박지 못하므로 도리어 보편적”일 수 있는 ‘인텔리겐치아’가 우리 사회에 존재할 것인가. 그람시의 말처럼 계급의 눈이 되어 총체를 바라보는 ‘유기적 지식인’이 존재할 것인가. 어떤 냉소적 기운도 담지 않은 채 나는 ‘아니오’라고 답하겠다.
1980년대에 글을 썼다면 나는 ‘지식인의 죽음’이 아니라 ‘지식인의 탄생’을 예감했을지 모르겠다. 흥미롭게도 80년대 초반의 지식인들, 이른바 ‘현장’에 침투한 이들은 스스로의 지식인성을 지우려 애썼다. 지식인들이 자기 긍정의 운동을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에 들어서였다. 해직교수들, 대학원생들, 재야학자들이 아카데미 바깥에 조직한 여러 연구실들. 그곳에서 지식인들은 지식과 사상, 담론의 영역을 자기 현장으로 삼아 운동했다.
지식인들은 노동운동가에서 학술운동가로 변모해갔다. 일부 논자들은 이를 운동의 퇴보라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이때 지식인 운동은 어떤 긍정적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지식인들은 공장만큼이나 연구실을 자기의 ‘현장’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실제로 80년대 중반 아카데미 주변에선 파업 현장만큼이나 높은 긴장이 형성되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공안검찰에 소환되고 구속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 어느 원로 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그야말로 ‘학문이 태풍 속에 있었다’. 그러나 이 긍정적 가능성이 현실화된 시간은 섬광만큼이나 짧았다. 1990년대 초반부터 지식인의 자기발견은 이미 자기변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령 1990년대 초반 문단에서 잠시 관심을 끌었던 ‘지식인 소설’ 논쟁은 한편으로 80년대 중반 이후 계속된 지식인의 자기 발견과 관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으로부터 지식인의 탈퇴를 지향하고 있었다. 오직 두 개의 나쁜 방향만이 나타났다. 일부는 지식인임을 포기하고 대중에게 뛰어들 것을 요구했고, 일부는 대중들로부터 분리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려 했다. 어떤 지식인도 지식인인 채로 대중이 되고자 하지는 않았다.
1990년대 이후 진보적 지식인들의 권력은 외견상 크게 확대되었다. 정치권에서든 학계에서든 진보세력들이 권력에 다가갔다. 많은 지식인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중들을 ‘떠나’ 청와대로 갔고, 대중들을 ‘떠나’ 대학으로 갔을 뿐이다. 진보적 연구실들은 ‘학회’가 되었고 진보적 잡지들은 ‘학회지’가 되었다. 그러나 연구와 교육은 대학과 학회지의 폐쇄적 회로 안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들은 대학으로 들어가 거기서 고립되었다.
-전통적 아카데미즘 밖으로-
한 때 한국의 대학은 지나치게 탈속적이라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민중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자왈만 읊조리는 상아탑은 세상과 참 멀리 있었다. 그러나 요즘 대학은 지나치게 세속적이라는 이유로 비난받을 만하다. 대학 교육은 시장과 연동하는 인간 양성에 맞춰져 있고, 대학 연구는 지식기반 경제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지식 생산을 지향하고 있다. 많은 대학들이 학내 기업을 만들었고, 교수이면서 사장이고 대학원생이면서 직원인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작년엔 기업활동으로 100억원대 이상의 자산을 갖게 된 교수들도 탄생했다. 경제적 부만이 아니라 정치권력에도 교수들은 상당히 가깝다. 작년 7월 현재 현 정부에서 각료를 지낸 64명 중 14명이 교수였고,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04명의 교수가 출마했고, 현재 32명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식인은 이런 식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지식인이 사라진다고 지식을 둘러싼 투쟁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식이 권력이고 지식이 부이기 때문에, 어떤 지식을 누가 차지하느냐는 극심한 갈등의 대상이 된다. 지식과 정보에 대한 실질적 접근성이 계급별로 차별화 되고, 국가의 테크노크라트들은 중요 지식과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통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렇다면 저항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나는 그것이 지식인 없이도, 지식인이 죽은 채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로 하여금 ‘지식인 없는 지식 투쟁’을 떠올리게 한 몇 개의 사건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황우석 교수 사건이다. 우리 모두가 알듯이 정부와 대학, 기업의 긴밀한 협력 결과 아주 흉측한 괴물이 탄생하고 말았다. 그런데 PD수첩이 그 실체를 고발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가. 논문의 진위 여부는 해당 전문가들의 몫이며 학술지를 통해서만 반박될 수 있다는 논리가 한 동안 모든 언론을 지배했다. 전문가 영역에 대한 대중들의 개입은 불가능했다.
정보통신 발달로 소통 유리그러나 이 논문의 검증을 끌어낸 젊은 연구자들의 웹사이트가 있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 사이트에서 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양상이다. 여기에 글을 올린 이도 해당 분야에선 전문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실명을 알 수 없는 아이디로 글을 올렸고, 그 글은 다른 익명의 필자에 의해 보완되고 재가공 되었다. 그리고 무수한 익명의 대중들이 다시 그것을 ‘퍼 날랐다.’ 논문 제1저자의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일부 사람들에게만 전문 학술지를 통해 유통되는 통상적인 학계의 지식 순환과는 완전히 달랐다.
정보통신기술에서 나타난 최근의 진보는 이런 식의 지식 생산과 소통에 더욱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자본주의 대공업이 발전할수록 생산은 점차 사회 협력적 형식을 띠며, 집합적 생산자의 일반지성에 의존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지적인 존재의 단위가 개체가 아니라 집합체라는 주장은 최근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이 나오고 있다. 가령 하트와 네그리는 열대지방 흰개미의 놀라운 건축술을 지적하며 ‘무리지성(swarm intelligenc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개별 흰개미의 지능은 미미하지만 이들이 이룬 무리의 지능은 정말로 대단하다는 것이다. 사실은 인간의 뇌가 그렇다. 인간의 뇌란 신경섬유 다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단지 그 연결만으로 우리 뇌는 창조적 지성이 된다. 그렇다면 그런 뇌들이 다시 연결된 네트워크로서 대중지성(mass intelligence)은 어떨 것인가. 게다가 상품의 생산과 유통, 나아가 상품 자체가 지적인 형태를 취하며, 사람들을 지적으로 훈련시키고 소통하게 하는 상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지배계급을 대변하든 피지배계급을 대변하든 나는 이제 그런 지식인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상황을 보건대 지식인은 더 이상 자기 계급의 지배를 위해 이데올로그로 활동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의 지식은 권력과 자본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이기 이전에 곧바로 권력과 자본이고, 대중의 투쟁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 이전에 대중의 투쟁 자체이다. 지식인들은 한편에선 곧바로 통치자와 자본가일 것이고, 다른 한편에선 대중들의 지적 네트워크일 것이다. 나는 지식인의 죽음이 찾아온 이 시대가 결코 불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저 높은 파수대에서 세계를 내다보는 현자는 잃었지만, 저 넓은 세계에 걸쳐있는 무수한 익명의 현자들을 얻었으니 말이다.
▲대중지성
지식을 소비하고 생산하는 주체라는 뜻의 ‘대중지성’이란 용어는 ‘일반지성’이란 말에서 비롯됐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비판 요강에서 공장의 기계를 ‘일반지성’으로 불렀다. 원료 가공 등 공정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기계를 ‘지성체’로 본 것이다. 다중지성이라고도 한다. 문학평론가 조정환씨에 따르면 ‘대중’이 덩어리져 있는 개념이 강하다면, ‘다중’은 흩어진 상태에서 ‘네트워킹’을 통해 이루어진 지성이다. 위키피디아, 웹2.0, UCC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을 두고는 ‘집단지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