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 박홍규 교수가 쓴 칼럼이다. 중화주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면서 날 선 시각이다.

 

〈박홍규 / 영남대교수·법학〉
8월초 중공중앙당교 교수를 비롯한 몇 사람과 2박3일 합숙을 하며 현대 중국의 ‘중화주의’에 대해 토론했다. 중화주의란 세계 최고인 중국문화가 세계만방에 퍼져야 한다는 사상으로 그 이웃을 오랑캐(가령 한반도는 동이)라 하여 천시하는 점에서 화이사상이라고도 한다. 내가 그것을 제국주의라고 지적하자 중국인 교수는 애국주의에 불과한 것을 과장한다고 비판했다. ‘대국굴기’나 ‘동북공정’ 등에 대한 논의를 비롯하여 몇 차례 위기를 겪어가면서 예정된 토론을 겨우 마치기는 했으나 서로 입장 차이만을 확인한 동상이몽의 씁쓸한 합숙이었다.

 

 

 

 


2006년 11월, 관영 CCTV를 통해 중국 전역에 방영된 총 12부의 다큐멘터리 ‘대국굴기’(大國堀起-대국으로의 도약)는 세계 여러 제국의 흥망사를 다루면서 중국 제국주의를 대내외적으로 선양한 것으로 크게 히트해 지금까지도 반복 상영되고 있다. 특히 강조된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은 1949년 중국 건국 이후 약소민족의 자유와 자치를 약속한 중국 공산당의 강령을 한 순간에 폐기하고 사회주의라면 당연히 인정해야 할 세계평화주의를 포기한 것으로 최근 더욱 강화되고 있다. 즉 대내적으로 위기에 빠진 정치경제체제를 공산당 일당 체제하에 더욱 강고히 하고, 동요하는 소수민족을 더욱 철저히 묶어, 대외적으로 제국 중국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동북공정’도 마찬가지다. 1983년 이후 고구려 발해, 이어 신라와 백제까지 중국역사에 포함시키며, 요동과 요서를 포함한 만주지방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요하문명권으로 부각시켜 그 안의 모든 고대민족은 중화민족이라고 하는 ‘동북공정’의 궁극적 의도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요하문명을 바탕으로 한 대중화주의의 완료로서 고구려 발해, 신라 백제는 물론 고조선까지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것이고 이에 반대하면 한간(漢奸), 매국노, 국적으로 홍위병식으로 비난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중국의 ‘애국주의’란 국가와 민족을 자명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내외로부터 상대화하는 관점이 결여된 제국주의다. 여기에는 세계 규모의 ‘公’, 근린제국과의 ‘共’, 개인과 집단의 ‘私’라는 계기는 전혀 없다. 이는 150년간의 강렬한 피해자 의식과 글로벌리제이션의 피해자의식이 복잡하게 교차하여 나타나고 있다.

현대 중국은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동상이몽인 사회주의, 자본주의, 중화주의를 함께 추구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반대해 생겨났고, 또한 중화주의를 반대하는 것인데도 중국에서는 이 세가지가 공존하며 시대에 따라 그 어느 하나가 강조되었다. 가령 마오쩌둥 시대에는 사회주의, 그 이후 덩샤오핑 시대에는 자본주의가 강조되었다. 그러나 그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그 본래의 것과는 다르고, 특히 그 저변에는 중화주의가 있다. 그래서 중국 사회주의, 중국 자본주의라고 하나 이 중국이라는 것이 바로 중화주의의 중국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라는 말도 중국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중국은 중화주의라는 그 참모습을 숨기고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라는 것으로 가장해왔고 우리도 그렇게 믿어왔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앞으로 중국이 아시아의 일원으로 아시아와 함께 걷는다는 보증이 없다는 점이다. 경제력은 글로벌화하고 핵을 포함한 군사력이 정비되고 있어서, 특히 앞으로 중국과 일본의 투쟁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쉽게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세계화라는 것 자체는 미국 중심의 제국화현상이지만 동아시아의 제국 내지 준제국적 경향은 더욱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주장함이 위험하듯 중국이나 일본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주장함도 위험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중국을 정확하게 보기란 쉽지 않다. 수천년 동안 우리는 중화주의라는 세계관 속에서 살아왔고 조선 후기에는 우리 자신이 중화라고 생각하기도 했기 때문에 사실 이 중화주의라는 것이 중화요리만큼 친숙하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시대 500년은 중국의 사상인 유교, 그 중에서도 성리학이 국가이념으로 뿌리내렸기에 여전히 뿌리 깊어 최근 소위 유교자본주의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사상으로서의 중국=유교문명=공자 말씀=최고의 보편성’을 ‘현실의 중국’과 혼동하는 경향, 즉 중국(또는 유교, 또는 공자)을 절대시하는 중화주의의 경향이 있어서 이에 대한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우리 자신의 중화주의부터 씻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이번 합숙토론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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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삽질해온 글들이다. 고종석의 글은 단아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예리함이 있다.

 

동심(童心)의 세계’라는 말이 나쁜 뜻으로 쓰이는 경우는 별로 없다. 동심은 대개 무구함, 순수함, 깨끗함 따위와 이어진다. 이런 관념의 틀 안에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마음에 때를 묻히는 것이다. ‘우리는 깨끗하게 태어났지만, 세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면서 더럽혀진다; 선한 사람이란 어릴 때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그 깨끗한 마음을 더럽히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 위선은 악을 제어하는 실천
그러나 조금만 돌이켜보면, 이런 어린이 찬가의 근거가 허술하다는 게 드러난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들이 알고 있는 아이들은 선함과 거리가 있다. 아이들은 대체로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드물지 않게 공격적이다.
놀이방이나 유치원 교사 노릇하기가 힘든 것은 동심이라는 게 일반적 관념과 달리 그리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실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선 아이들끼리의 폭력과 따돌림이 난무하고, 경쟁자를 거꾸러뜨리기 위한 음모가 횡행한다.
그런 현상이 큰 사회문제로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이들은 육체적 힘이나 지능이 충분치 않아 그런 폭력과 음모가 어마어마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른들보다 더 선해 보이지는 않는다.
외려 그 반대가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서야 윤리적 자극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염치, 너그러움, 수치심, 배려, 협동심, 겸손, 예의 따위에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것은 대개 교육을 통해서다.
물론 이런 미덕들은 사람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던 것일 테다. ‘교육’에 해당하는 서양말의 어원은 ‘밖으로 끌어낸다’는 뜻이다. 본디부터 없었던 것을 끄집어낼 수는 없다.
그러니까 잠재적으로는 사람이 윤리를 지향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윤리성을 발현시키는 것은 교육이다. 대개의 아이들은, 윤리적으로 자라날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윤리적이지 못한 존재다. 동심은 흔히 비윤리적이다. 아이들은 선한 게 아니라 유치하다.
공동체가 교육을 통해 새 세대의 마음속에서 윤리를 끄집어내는 것은 공동체 자체의 존속을 위해서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세상살이의 한 본질적 측면이고, 그래서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에 대해서 궁극적으론 늑대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그것을 대놓고 선양할 경우 사회는 무뢰한들의 놀이터로 변해 궁극적으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유전자가 본디 이기적이라 할지라도, 공동체가 개체들로 하여금 그 유전자들의 이기적 목적을 이타적 외양으로 이루도록 독려하는 것은 종(種)의 안녕에 크게 이롭다. 그것은 윤리 교육의 한 측면이 위선 교육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위선(僞善) 자체는 선이 아니지만, 그것은 위선(爲善)을 통해서, 곧 선의 형식적 실천을 통해서 이뤄진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일정하게 악을 제어한다. 동심이란 아직 그 위선에 이르지 못한, 날것으로 이기적인 마음이다.
선한 사람으로 그득한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이겠지만, 그것은 영원히 이루지 못할 꿈이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그만저만한 윤리적 굴레로 이기심을 조이며 선을 겉치레로라도 실천하는 사람들(곧 위선자들)이 세상에 넘쳐나는 것 정도일 테다.
넘쳐나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윤리를 의식하는 위선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은 지옥은 아니다. 실제로 인류 문명의 역사는 상당 부분 위선의 역사였다. 위선자들이 우리를 다스렸다.
■ 아이들이 다스리는 세상
새 천년 들어 상황은 한결 나빠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약한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은 미국 행정부의 이지메에는 위선조차 없다. 그저 날것 그대로의 동심만이 펄럭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다음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들도 대개 그렇다. 그들은 부끄러움의 능력마저 완전히 잃은 듯, 유치하고 사악한 동심만을 내보이고 있다. 위선자들이 다스리는 세상도 그리 좋은 세상은 아닐 게다. 그러나 정말 끔찍한 세상은 아이들이 다스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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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비평가로서 꽤나 글빨을 날리는 신형철이 한겨레에 연재하는 글이다.

사랑에 관한 글이라, 퍼왔다. 헐렁한 사랑, 원래 인간은 그렇게 찐한 사랑을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교활하다.

 

[한겨레] 어른이 되기 전에는 알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두 편의 ‘19금(禁)’ 시

▣ 신형철 문학평론가

실연의 아픔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내에게 그의 친구가 이렇게 위로한다. “이봐, 그 여자 말고도 세상에 여자는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이걸 위로라고 하고 있다. 사내가 잃어버린 것은 ‘이 여자’다. 포인트는 ‘여자’가 아니라 ‘이’에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어떤 다른 ‘한’ 여자도 사내의 ‘이’ 여자를 대체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위로는 허름하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은 그렇게밖에는 위로할 수가 없다. 유일무이한 ‘이 여자’가 세상에 얼마든지 있는 ‘한 여자’로 전락할 때에만 고통은 사라진다. 철학자들이라면 단독성(‘이 여자’)이 특수성(‘한 여자’)이 될 때 실연은 극복된다, 라고 정리할 것이다. 대개는 그리 되게 돼 있다. 그 사내, 조만간 또 다른 ‘이 여자’와 나타나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여자’를 만나기 위해 그동안 미망 속을 헤맸노라고. 세상에 여자는 얼마든지 있다는 말, 결국은 맞는 말이 되고 만다.

가라타니 고진이 단독성과 특수성이라는 철학 개념을 구별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례 삼아 한 이야기를 옮겼다(<탐구 2>). 어려운 개념들이야 아무래도 좋은 것이지만, 저 사례는 서늘하니 마음에 얹힌다. 한 사람이 문득 이 사람이 되어 사랑이 시작되고, 이 사람이 떠나면서 세상이 잠깐 멈췄다가, 이 사람이 어느덧 다시 한 사람이 되면 애도는 끝난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의 내막이 본래 이토록 헐렁한 것인지 모른다. 이런 시가 있다.

“이해한다는 말, 이러지 말자는 말, 사랑한다는 말, 사랑했다는 말, 그런 거짓말을 할수록 사무치던 사람, 한 번 속으면 하루가 갔고, 한 번 속이면 또 하루가 갔네, 날이 저물고 밥을 먹고, 날이 밝고 밥을 먹고, 서랍 속에 개켜 있던 남자와 여자의 나란한 속옷, 서로를 반쯤 삼키는 데 한 달이면 족했고, 다아 삼키는 데에 일 년이면 족했네, 서로의 뱃속에 들어앉아 푸욱푹, 이 거추장스러운 육신 모두 삭히는 데에는 일생이 걸린다지”(‘불귀 2’에서)

김소연의 두 번째 시집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민음사)에서 한 대목 옮겼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비밀이 없다고들 하지만 그렇기야 하겠는가. 때로 사랑은 거짓말의 힘으로 세월을 견딘다. 상대의 거짓말을 묵인해주는 거짓말, 그것이 같은 세월을 견디고 있는 이에 대한 예의가 되기도 한다. 날이 저물면 밥을 먹고 날이 밝으면 밥을 먹는 시간들이 또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청승을 떠는 게 아니다. 이것도 사랑 아닌가.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 사람’이 되어가기도 하겠다.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우리의 옛 맹세를 저버리지만 그때는 진실했으니,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 꽃이 피는 날엔 목련꽃 담 밑에서 서성이고, 꽃이 질 땐 붉은 꽃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가지 거기에서 나는 너의 애절을 통한할 뿐 나는 새로운 사랑의 가지에서 잠시 머물 뿐이니 이 잔인에 대해서 나는 아무 죄 없으니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걸, 배고파서 먹었으니 어쩔 수 없었으니”(‘낙화유수’에서)

함성호의 세 번째 시집 <너무 아름다운 병>(문학과지성사)에서 옮겨 적었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겠다’고 말했을 한 사내가 변했다.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구질구질한 변명 따위 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때는 진실했다질 않는가. 꽃 지고 물 흐르듯 그렇게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어쩌겠는가. 그러니까 이 세상의 모든 ‘이 사람’은 결국 ‘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투다. 위악이 아니다. 이것도 사랑 아닌가. 어차피 세상만사 낙화유수일 뿐이라고 청산유수로 주워섬기는 이 사내를 그래서 미워할 수가 없다.

 

 

 

 

 



이 시들은 ‘19금(禁)’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자도 실은 잘 모르는, 어른들의 시다. 사랑에 대해 터무니없는 희망 혹은 절망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약이 될 것이다. (부기: 위 시를 쓴 두 사람은 부부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것인지를 모르겠으면서도 이렇게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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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8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좋군요. 뭐가 19금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ㅎㅎ

허리우스 2007-08-2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덜은 가라 뭐 그 정도 아닐까요. 오랫만에 인사드립니다.
 

경향신문에 연재중인 기획인 '지식인의 죽음' 가운데 한 꼭지이다. 오래된 것이지만 고병권의 글이라서 읽어보았다. 그러나 다중지성, 대중지성이 시대적 흐름이라고 보는 것은 일견 그럴 듯하지만 그러한 시대적 흐름이 그러해야만 하는 당위적 흐름이라고 나는 보지 않는다. 나의 스타일은 아닌 듯하다. 난 마르크스의 표현처럼 생산이 사회 협력적 형식을 가지듯이 지식도 그러해야만 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좀 끔찍하다. 물론 사회 협력적 형식을 가지고 생산되어야할 지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 개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아니 지식인이 아니라 인간이 그러한 측면이 없다면, 그리고 지식이 한 인간의 독특성을 개발시키고 성숙시켜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고병권의 글이다.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지식인이 사라진 시대의 지식투쟁

작년 초 어느 잡지로부터 한국 사회의 지식인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자료들을 이것저것 뒤져보면서 내가 도달한 결론은 아주 역설적인 것이었다. 지식을 둘러싼 투쟁은 그 어느 때보다 격화되고 있는데, 정작 지식인이라는 존재는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쓴 글의 제목이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죽음을 예감하다’였다. 현재 지식인은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믿는 자들의 자의식 속에서만 살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신지식인’ 희극적 죽음 역설-

그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내가 학부시절 지켜본 격렬했던 논쟁의 당사자들, 수강신청에 상관없이 매 학기마다 수백 명을 불러 모았고, 내게 ‘공부도 피를 끓게 하는 구나’를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여전히 발표하고 토론하지만 이제는 박수도 욕설도 없다.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시위대의 맨 앞에 서 있지만 내 눈엔 그들 뒤에 서 있는 것이 한 무리의 허전함으로 보인다.

대신에 신종 지식인들이 나타나고 있다. 가령 정부는 매년 수십에서 수백 명씩 ‘신지식인’들을 발표하고 있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생산력 향상 및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수십, 수백 명의 신지식인들. 나는 정부가 양산하는 이 지식인들에게서 지식인의 희극적 죽음을 느낀다. 나는 또 어느 포털 사이트에 출현한 탈인간적 형상을 한 ‘지식인(지식iN)’의 대성공을 보면서도 지식인의 죽음을 생각한다. 이제 ‘지식인에게 묻는다’는 것은 어떤 ‘인간을 만난다’는 뜻이 아니라 ‘네트워크’에 접속한다는 말이 되고 있다. 나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지식인의 죽음을 예언하는 징표들을 보고 있다.

물론 지식을 다루는 일도, 그 일을 하는 사람도 사라지지 않았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하는 게 사실이라면 그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독자적인 집단으로서, 하나의 범주로서 지식인이 존재할 것인가. 만하임의 말처럼 “어디에도 뿌리를 박지 못하므로 도리어 보편적”일 수 있는 ‘인텔리겐치아’가 우리 사회에 존재할 것인가. 그람시의 말처럼 계급의 눈이 되어 총체를 바라보는 ‘유기적 지식인’이 존재할 것인가. 어떤 냉소적 기운도 담지 않은 채 나는 ‘아니오’라고 답하겠다.

1980년대에 글을 썼다면 나는 ‘지식인의 죽음’이 아니라 ‘지식인의 탄생’을 예감했을지 모르겠다. 흥미롭게도 80년대 초반의 지식인들, 이른바 ‘현장’에 침투한 이들은 스스로의 지식인성을 지우려 애썼다. 지식인들이 자기 긍정의 운동을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에 들어서였다. 해직교수들, 대학원생들, 재야학자들이 아카데미 바깥에 조직한 여러 연구실들. 그곳에서 지식인들은 지식과 사상, 담론의 영역을 자기 현장으로 삼아 운동했다.

지식인들은 노동운동가에서 학술운동가로 변모해갔다. 일부 논자들은 이를 운동의 퇴보라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이때 지식인 운동은 어떤 긍정적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지식인들은 공장만큼이나 연구실을 자기의 ‘현장’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실제로 80년대 중반 아카데미 주변에선 파업 현장만큼이나 높은 긴장이 형성되었다. 일부 연구자들은 공안검찰에 소환되고 구속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 어느 원로 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그야말로 ‘학문이 태풍 속에 있었다’. 그러나 이 긍정적 가능성이 현실화된 시간은 섬광만큼이나 짧았다. 1990년대 초반부터 지식인의 자기발견은 이미 자기변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령 1990년대 초반 문단에서 잠시 관심을 끌었던 ‘지식인 소설’ 논쟁은 한편으로 80년대 중반 이후 계속된 지식인의 자기 발견과 관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으로부터 지식인의 탈퇴를 지향하고 있었다. 오직 두 개의 나쁜 방향만이 나타났다. 일부는 지식인임을 포기하고 대중에게 뛰어들 것을 요구했고, 일부는 대중들로부터 분리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려 했다. 어떤 지식인도 지식인인 채로 대중이 되고자 하지는 않았다.

1990년대 이후 진보적 지식인들의 권력은 외견상 크게 확대되었다. 정치권에서든 학계에서든 진보세력들이 권력에 다가갔다. 많은 지식인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중들을 ‘떠나’ 청와대로 갔고, 대중들을 ‘떠나’ 대학으로 갔을 뿐이다. 진보적 연구실들은 ‘학회’가 되었고 진보적 잡지들은 ‘학회지’가 되었다. 그러나 연구와 교육은 대학과 학회지의 폐쇄적 회로 안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들은 대학으로 들어가 거기서 고립되었다.

-전통적 아카데미즘 밖으로-

한 때 한국의 대학은 지나치게 탈속적이라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민중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자왈만 읊조리는 상아탑은 세상과 참 멀리 있었다. 그러나 요즘 대학은 지나치게 세속적이라는 이유로 비난받을 만하다. 대학 교육은 시장과 연동하는 인간 양성에 맞춰져 있고, 대학 연구는 지식기반 경제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지식 생산을 지향하고 있다. 많은 대학들이 학내 기업을 만들었고, 교수이면서 사장이고 대학원생이면서 직원인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작년엔 기업활동으로 100억원대 이상의 자산을 갖게 된 교수들도 탄생했다. 경제적 부만이 아니라 정치권력에도 교수들은 상당히 가깝다. 작년 7월 현재 현 정부에서 각료를 지낸 64명 중 14명이 교수였고,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04명의 교수가 출마했고, 현재 32명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식인은 이런 식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지식인이 사라진다고 지식을 둘러싼 투쟁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식이 권력이고 지식이 부이기 때문에, 어떤 지식을 누가 차지하느냐는 극심한 갈등의 대상이 된다. 지식과 정보에 대한 실질적 접근성이 계급별로 차별화 되고, 국가의 테크노크라트들은 중요 지식과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통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렇다면 저항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나는 그것이 지식인 없이도, 지식인이 죽은 채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로 하여금 ‘지식인 없는 지식 투쟁’을 떠올리게 한 몇 개의 사건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황우석 교수 사건이다. 우리 모두가 알듯이 정부와 대학, 기업의 긴밀한 협력 결과 아주 흉측한 괴물이 탄생하고 말았다. 그런데 PD수첩이 그 실체를 고발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가. 논문의 진위 여부는 해당 전문가들의 몫이며 학술지를 통해서만 반박될 수 있다는 논리가 한 동안 모든 언론을 지배했다. 전문가 영역에 대한 대중들의 개입은 불가능했다.

정보통신 발달로 소통 유리그러나 이 논문의 검증을 끌어낸 젊은 연구자들의 웹사이트가 있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 사이트에서 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양상이다. 여기에 글을 올린 이도 해당 분야에선 전문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실명을 알 수 없는 아이디로 글을 올렸고, 그 글은 다른 익명의 필자에 의해 보완되고 재가공 되었다. 그리고 무수한 익명의 대중들이 다시 그것을 ‘퍼 날랐다.’ 논문 제1저자의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일부 사람들에게만 전문 학술지를 통해 유통되는 통상적인 학계의 지식 순환과는 완전히 달랐다.

정보통신기술에서 나타난 최근의 진보는 이런 식의 지식 생산과 소통에 더욱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자본주의 대공업이 발전할수록 생산은 점차 사회 협력적 형식을 띠며, 집합적 생산자의 일반지성에 의존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지적인 존재의 단위가 개체가 아니라 집합체라는 주장은 최근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이 나오고 있다. 가령 하트와 네그리는 열대지방 흰개미의 놀라운 건축술을 지적하며 ‘무리지성(swarm intelligenc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개별 흰개미의 지능은 미미하지만 이들이 이룬 무리의 지능은 정말로 대단하다는 것이다. 사실은 인간의 뇌가 그렇다. 인간의 뇌란 신경섬유 다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단지 그 연결만으로 우리 뇌는 창조적 지성이 된다. 그렇다면 그런 뇌들이 다시 연결된 네트워크로서 대중지성(mass intelligence)은 어떨 것인가. 게다가 상품의 생산과 유통, 나아가 상품 자체가 지적인 형태를 취하며, 사람들을 지적으로 훈련시키고 소통하게 하는 상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지배계급을 대변하든 피지배계급을 대변하든 나는 이제 그런 지식인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상황을 보건대 지식인은 더 이상 자기 계급의 지배를 위해 이데올로그로 활동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의 지식은 권력과 자본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이기 이전에 곧바로 권력과 자본이고, 대중의 투쟁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 이전에 대중의 투쟁 자체이다. 지식인들은 한편에선 곧바로 통치자와 자본가일 것이고, 다른 한편에선 대중들의 지적 네트워크일 것이다. 나는 지식인의 죽음이 찾아온 이 시대가 결코 불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저 높은 파수대에서 세계를 내다보는 현자는 잃었지만, 저 넓은 세계에 걸쳐있는 무수한 익명의 현자들을 얻었으니 말이다.


▲대중지성

지식을 소비하고 생산하는 주체라는 뜻의 ‘대중지성’이란 용어는 ‘일반지성’이란 말에서 비롯됐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비판 요강에서 공장의 기계를 ‘일반지성’으로 불렀다. 원료 가공 등 공정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기계를 ‘지성체’로 본 것이다. 다중지성이라고도 한다. 문학평론가 조정환씨에 따르면 ‘대중’이 덩어리져 있는 개념이 강하다면, ‘다중’은 흩어진 상태에서 ‘네트워킹’을 통해 이루어진 지성이다. 위키피디아, 웹2.0, UCC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을 두고는 ‘집단지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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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관심이 가는 주제였다. 관련된 책들을 모아본다. 언젠가는 꼭 이 주제를 가지고 논의를 만들어 볼 것이다. 의로운 전쟁 혹은 정당한 폭력은 가능할까. 과연 비폭력이 가장 도덕적 태도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경향신문에서 퍼왔다.

 ▲폭력의 철학…사카이 다카시|산눈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만은 안된다.’ 누구라도 말할 수 있고, 또 아무도 부인해서는 안될 것 같은 설교식 구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저자의 의심은 이라크 공습을 주도한 미국의 네오콘도, 일본의 핵무장을 주장하는 우익 정치인도 이와 똑같은 구호를 외치는 역설적인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오히려 이 도덕적 구호야말로 도리어 더 큰 폭력을 용인하며, 폭력들간의 압도적인 비대칭성 속에 더 큰 폭력에 대한 무감각을 조장하는 동력이 아닐까. 저자는 ‘테러에도, 전쟁에도 반대한다’는 너무나 ‘올바른’ 구호, 그리고 폭력과 비폭력 또는 전쟁과 평화로 딱 잘라 구분되는 범주 앞에서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렇다고 ‘올바른 폭력’이 있음을 강변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깨끗한 원폭’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다만 군대와 경찰이라는 압도적인 폭력을 독점한 근대국가, 그 중에서도 다양한 명분으로 그것을 나라 안팎에서 사용해온 몇몇 ‘합법적인’ 거대 폭력집단들에 대항해 약자가 자신의 생존권 또는 정체성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나온 저항을 그저 똑같은 폭력으로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1992년 미국에서 발생한 로드니 킹 사건의 예를 보자. 당시 한 시민이 찍은 동영상에 따르면 로드니 킹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경찰에 둘러싸여 81초 동안 56회 구타당했다. 주먹과 발뿐 아니라 경찰봉, 전기충격기까지 동원됐다. 그런데 이 폭행에 가담한 경찰 4명은 모두 무죄 선고됐다. 전원 백인들로 이뤄진 배심원들의 무죄 평결 이유는 “로드니 킹이 만약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경찰에게 덤벼들어 폭력을 행사할 무시무시한 육체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를 “인종차별이나 민족주의 내에서 ‘강자’ 또는 ‘다수파’에 속하는 측이 ‘약자’측에 공포를 느끼는 심리적 전도가 일어나며 먼저 공격하게 되는 전형적인 폭력의 한 발현”으로 본다. 이 사건을 확장하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국가 단위로 세계에 행사하는 폭력의 구조도 간파할 수 있다. 미국 스스로 비난하는 핵무기나 화학병기를 누구보다 압도적으로, 대량으로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 자신이라는 점은 아무리 ‘세계의 경찰’ ‘평화 유지자’라는 말로 포장해도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 오사카여대 강사인 저자가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나키스트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저자는 60~70년대 ‘폭력·비폭력 담론’을 풍성하게 장식했던 마틴 루터 킹, 말콤X, 프란츠 파농, 한나 아렌트, 미셸 푸코 등의 사유를 따라간 뒤 폭력과 비폭력 사이의 ‘반(反)폭력’을 제안한다. 반폭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호되어야 할 폭력 또는 직접행동’이랄 수 있다. “육체를 부여받은 존재인 우리에게 폭력은 숙명”(모리스 메를로퐁티)이란 점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면, “올바른 적대성, 즉 분노를 갖되 주권(국가권력) 쟁취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폭력은 옹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에 저항하며 멕시코에서 무장봉기한 사파티스타 해방군이 대표적 예다. 이들은 자신들처럼 총든 사람들이 사라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총을 든 집단이다. 어쩌면 80년 5월 광주의 시민군이 사파티스타보다 여기에 더 들어맞는 예인지도 모르겠다. 부당한 정권에 올바른 분노를 가지고 국가권력을 탈취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국가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총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은주 옮김.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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