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관심이 가는 주제였다. 관련된 책들을 모아본다. 언젠가는 꼭 이 주제를 가지고 논의를 만들어 볼 것이다. 의로운 전쟁 혹은 정당한 폭력은 가능할까. 과연 비폭력이 가장 도덕적 태도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경향신문에서 퍼왔다.

 ▲폭력의 철학…사카이 다카시|산눈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만은 안된다.’ 누구라도 말할 수 있고, 또 아무도 부인해서는 안될 것 같은 설교식 구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저자의 의심은 이라크 공습을 주도한 미국의 네오콘도, 일본의 핵무장을 주장하는 우익 정치인도 이와 똑같은 구호를 외치는 역설적인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오히려 이 도덕적 구호야말로 도리어 더 큰 폭력을 용인하며, 폭력들간의 압도적인 비대칭성 속에 더 큰 폭력에 대한 무감각을 조장하는 동력이 아닐까. 저자는 ‘테러에도, 전쟁에도 반대한다’는 너무나 ‘올바른’ 구호, 그리고 폭력과 비폭력 또는 전쟁과 평화로 딱 잘라 구분되는 범주 앞에서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렇다고 ‘올바른 폭력’이 있음을 강변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깨끗한 원폭’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다만 군대와 경찰이라는 압도적인 폭력을 독점한 근대국가, 그 중에서도 다양한 명분으로 그것을 나라 안팎에서 사용해온 몇몇 ‘합법적인’ 거대 폭력집단들에 대항해 약자가 자신의 생존권 또는 정체성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나온 저항을 그저 똑같은 폭력으로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1992년 미국에서 발생한 로드니 킹 사건의 예를 보자. 당시 한 시민이 찍은 동영상에 따르면 로드니 킹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경찰에 둘러싸여 81초 동안 56회 구타당했다. 주먹과 발뿐 아니라 경찰봉, 전기충격기까지 동원됐다. 그런데 이 폭행에 가담한 경찰 4명은 모두 무죄 선고됐다. 전원 백인들로 이뤄진 배심원들의 무죄 평결 이유는 “로드니 킹이 만약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경찰에게 덤벼들어 폭력을 행사할 무시무시한 육체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를 “인종차별이나 민족주의 내에서 ‘강자’ 또는 ‘다수파’에 속하는 측이 ‘약자’측에 공포를 느끼는 심리적 전도가 일어나며 먼저 공격하게 되는 전형적인 폭력의 한 발현”으로 본다. 이 사건을 확장하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국가 단위로 세계에 행사하는 폭력의 구조도 간파할 수 있다. 미국 스스로 비난하는 핵무기나 화학병기를 누구보다 압도적으로, 대량으로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 자신이라는 점은 아무리 ‘세계의 경찰’ ‘평화 유지자’라는 말로 포장해도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 오사카여대 강사인 저자가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나키스트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저자는 60~70년대 ‘폭력·비폭력 담론’을 풍성하게 장식했던 마틴 루터 킹, 말콤X, 프란츠 파농, 한나 아렌트, 미셸 푸코 등의 사유를 따라간 뒤 폭력과 비폭력 사이의 ‘반(反)폭력’을 제안한다. 반폭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호되어야 할 폭력 또는 직접행동’이랄 수 있다. “육체를 부여받은 존재인 우리에게 폭력은 숙명”(모리스 메를로퐁티)이란 점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면, “올바른 적대성, 즉 분노를 갖되 주권(국가권력) 쟁취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폭력은 옹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에 저항하며 멕시코에서 무장봉기한 사파티스타 해방군이 대표적 예다. 이들은 자신들처럼 총든 사람들이 사라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총을 든 집단이다. 어쩌면 80년 5월 광주의 시민군이 사파티스타보다 여기에 더 들어맞는 예인지도 모르겠다. 부당한 정권에 올바른 분노를 가지고 국가권력을 탈취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국가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총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은주 옮김.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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