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⑤ 장뤼크 낭시

1940년 프랑스 코데랑에서 태어났다. 평생의 동료였던 필리프 라쿠-라바르트와 함께 초기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문헌들을 편역한 <문학적 절대>를 내놓으면서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동유럽이 본격적으로 몰락하기 전에 내놓은 <무위의 공동체>에서는 현실 공산주의의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도래할 공동체의 철학적·정치적 밑그림을 제시함으로써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철학적 기획은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를 윤리적·정치적 지평에서 급진화하는 데에 그 핵심이 있으며,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기계적으로 제도화되어버린 민주주의에 ‘영혼’의 힘을 불어넣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실존이 어떻게 타인과 함께하는 공 - 실존인가를 밝힌 <복수적 단수의 존재>, 개념·명제 너머의 의의(sens), 개념·명제의 성립조건으로서의 의의를 밝힌 <세계의 의의>, ‘현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인 <사유의 무게> 등이 있다.
  

 

 

 

 

현실과 미래에 유용할지도 모를 비전, 이상적 체제의 형태 등을 관념화할 수 있다는 지식인들의 확신은 자만에 불과하고 정치적으로 유용하지도 않다. 지식인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이미 구축된 질서와 대립하는 ‘보이지 않는 하부 공동체’의 절망과 희망을 듣고, 거기에 ‘열리고’ 동참하는 것이다.



 

» 장뤼크 낭시
 

장뤼크 낭시에 대해 특히 한국에서 이러한 의문 또는 비판이 있다. 당신이 말하는 ‘무위(無爲)의 공동체’는 국가나 민족이나 이데올로기나 이념이나 정당 바깥에서, 어떠한 정체성·동일성도 없이 이루어지는 어떤 순수하고 이상적인 공동체인가? 당신이 거기에서 어떤 정치적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면, 이는 너무 순진하고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보고 국가와 민족도 버리고 이념도 고려하지 말고 새로운 정당도 만들지 말고, 나아가 학회도 만들지 말라는 것인가?

낭시가 무슨 말을 했든, 그의 사상이 옳든 그르든 국가와 민족은 (‘영원히’는 아닐지 모르지만) 존재할 것이고, 새로운 정치적 사유들은 구성될 것이며, 새로운 정당들도 설립될 것이다. 낭시는 민족이나 이념이나 정당을 단순히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구체적인 정치적 문제는, 정치적인 것은 민족·이념·정당같이 사회나 역사의 지평에서 규정되고 이미 정립된 것들 배면의 드러나지 않고 가려진 것, ‘밝힐 수 없는 것’ 가운데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박정희가 자신의 정권을 공고히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강요했던 한민족이라는 정체성 배면에 일제 점령기 강제노역과 성폭력에 시달리던 민중의 몸들이 있으며, 프랑스 대혁명 당시 구축된 자유·평등·박애라는 아름다운 이념들 배면에 민중의 배고픔과 생존이라는 문제가 놓여 있고, 현재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국가가 내놓는 정책들 배면에 이름 없는 인간들의 생존 욕구와 소통과 평등에 대한 욕망이 있다. 낭시가 말하는 무위의 공동체는 어떤 초월적 세계에 존재하는 공동체가 아니고, 사회와 완전히 분리된 어떤 남다른 인간들의 공동체도 아니며, 사회 그 이하 또는 배면에서 사실은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공동체다. 그것은 조직·기관·이념에 기초해서 정립된 공동체의 ‘차이’로서의 공동체다. 그것은 조직·기관·이념이 절대적으로 배제된 공동체가 아니라, 그것들의 정당성 또는 부당성의 근거가 되는 공동체다.

어떻게 무위의 공동체에 접근할 것인가? 우리에게 공동체는 회사와 같은 이익집단과는 다른 집단을 의미해 왔으며, 우리는 공동체라 하면 강한 일체의식과 집단적 존재를 바탕으로 한 우두머리가 이끄는 구성된 집단을 떠올린다. 곧 우리에게 공동체는 무엇보다 강한 구성적 의지에 기초한 집단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 공동체가 자신의 궁극적 비동일성(차이)을 용인하지 않는 강력한 능동적 의지 위에서만 정초될 경우 관념화·화석화되고 맹목적으로 변하며, 나아가 역사의 적잖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파탄에 이르게 된다(나치,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 나아가 폴 포트의 캄보디아처럼).

사실 무위의 공동체는 구성‘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그것이 오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으며, 그것에 능동적으로 접근할 수도 없고 거기로 다만 ‘열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생존욕구와 차별에 시달리는 자에게 자유·평등·박애를 가르칠 수는 없으며, 신자유주의의 무차별적 등가화의 폭력 속에서 배제와 생존의 위협에 내몰린 자에게 국가의 이념을 교육시킬 수 없고, 사랑하는 그 사람 앞에서 사랑의 정도(正道)를 설교할 수 없다. 먼저 우리는 그자에게, 그에게 열려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사실에 우리의 구체적 경험의 ‘현실’이 있다. 그 사실은 단순히 도덕적·정치적 질서가 아니라 관계의 존재론적 질서 내에서 분명해진다.

그 질서는, 타자가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나’ 또는 ‘우리’의 능동적·구성적 의지가 아니라 수동적 열림(내어맡김)을 통해 현전한다는 데에 있다. 그 열림은 어떠한 관념으로도 완전히 포착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아직 기준을 획득하지 못한 비(非)사회적인 것(또는 반(反)사회적인 것),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으로의 열림이며, 바로 그 열림이 무위의 공동체를 연다.

그러나 낭시의 이 모든 논의가 정치적 관점에서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물론 그의 정치사상은 현대의 모든 정치철학(또는 모든 철학)과 마찬가지로 가령 혁명을 직접 촉발시킬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의, 특히 지식인들의 정치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교정하기를 요구한다. 사실 거의 모든 정치사상이 수신되는 곳은 일반인들이 아니라 지식인들인데, 마르크스도 <자본>을 노동자들이 읽으라고 쓰지는 않았다.

정치의 지평에서 지식인들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현실과 미래에 유용할지도 모를 비전이나 이상적 체제의 형태나 이념이나 프로그램들을 제시하는 데에 있지 않다. 그러한 전체를 관념화할 수 있다는 지식인들의 확신은 자만에 불과하고 정치적으로 유용하지도 않다. 그 확신은 사회 상부에 위치한 한 정치인의 확신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특히 한국에서 많은 경우 정치인들의 정치적 ‘이성’과 지식인들의 정치적 ‘이성’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지식인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사회 또는 이미 구축된 정치적 질서와 대립하는 보이지 않는 하부의 공동체의 절망과 절규와 희망을 듣고 거기에 ‘열리고’ 동참하는 것이다. “따라서 혁명에 대한 올바른 독법은 거대담론의 극적 도식을 해체하고 그 속에 묻혀 있는 인간의 진정성에 접속하는 일이다.”(신영복) 사회와 이름 없는 인간들의 공동체 사이의 갈등과 대립과 투쟁은 아마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지속될 그것들에 대한 긍정과 주목과 참여, 거기에 민주주의가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결코 우리의 관념에 단번에 고정될 수 없는 무한의 움직임이다. “민주주의는 여러 정치 형태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질서를 원리적으로 넘어서는 것이다.”(낭시, <민주주의의 진리>)

낭시는 사회와 공동체 사이의 대립이 극단화된 형태인, 아마 ‘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 부유한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희망한 적이 있다. 또한 그는 현재의 한반도 상황과 결부된 필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해 왔다.

“나는 지배적 ‘문명’의 모델, 말하자면 생산·소비와 일반적 등가화의 모델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지점 근방에 우리가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남한과 북한은 아마 ‘민족’, ‘조국’, ‘국가’ 사이의 관계와 차이에 대해 사유하는 실험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준상 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연구원

Jean-Luc Na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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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자크 랑시에르


자크 랑시에르는 1940년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루이 알튀세르 등과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읽기 세미나를 이끌었지만, 1968년 이후 알튀세르의 이론주의와 이데올로기론을 비판하며 그와 결별했다. 1970년대 내내 19세기 노동자 운동 관련 문서고를 연구하면서 노동자 정체성에서 벗어나 ‘공통적인 것’에 참여하는 정치적 형상들과 집단적 주체화의 문제에 천착했다. 그 결과물이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프롤레타리아들의 밤>이다. 그 뒤로도 지적 능력의 평등을 다룬 <무지한 스승>, 정치의 종언론에 맞서 정치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그동안의 성찰들을 개념화한 <불화>, 민주주의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성찰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 등을 썼다.
  

 

 

 

 

 

모든 정부·통치는 과두적이다. 통치란 항상 통치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소수가 다수를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민주주의란 통치자격이 없다고 간주된,‘아무 것도 아닌 자들’이 ‘공통적인 것’에 참여할 자신의 몫을 주장하는 행위다. 이런 민주주의적 투쟁이 없었다면 우리에겐 선거권도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자크 랑시에르.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우리는 민주주의에서 살고 있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정부는 그 조항을 공공연히 무시하고 삭제하지 않았던가. 민주주의가 헌법 조문으로 보장되는 하나의 ‘정체’였다면, 국민들이 거리에서 헌법 제1조를 외칠 필요도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자크 랑시에르의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주장을 참조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에서 산다’는 표현은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과두적인 우파 국가에 살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헌법이나 여타의 제도로 보장되는 하나의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모든 정부/통치는 언제나 과두적이다. 통치란 항상 부·출생·지식 면에서 통치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소수가 다수를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치의 관건은 각자 본성에 맞는 직무와 자리, 자신에 맞게 보고 행동하고 말하는 방식을 배분하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이것을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대의 민주주의’ 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기원을 따져볼 때 투표 또는 대의란 넓은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인구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가 아니다. 대의란 공통 사무를 관장할 자격을 지닌 소수가 다수에게 동의를 요구하는 장치일 뿐이다. 반대로 민주주의란 통치 자격이 없다고 간주된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 공통의 일에 참여할 자신의 몫을 주장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런 민주주의적 투쟁과 정치적 실천이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선거권마저도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요컨대 랑시에르에 따르면 대의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모순된 두 단어의 결합이다.

랑시에르가 <불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서 묘사하고 있는 과두정의 풍경을 더 따라가 보자. 우리는 너무도 낯익은 그 장면에 섬뜩함마저 느끼게 된다.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방송에 출현해 일방적 담화를 쏟아내며 국민의 동의를 구한다. 국민의 목소리는 각종 설문조사나 여론조사를 통해 재현된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주민’의 의견이 곧 ‘인민’의 의견과 동일시되고, 그 밖의 다르거나 보충적인 말과 생각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생각할 가치도 없어진다. 정치의 종언(한국의 우파들은 87년 6월을 등에 업은 정치 편향적 정권의 종언과 그것을 동일시했다)을 선언한 과두정의 통치자들은 공적인 일은 경제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대중은 사적인 이익활동에 매달리면 된다고 주장한다. 정부 주장에 반대하며 거리에 나온 자들은 통치 전문가들의 ‘과학’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도래하지도 않은 사건에 벌벌 떠는 ‘무지한 자’로 간주된다. 정부는 자본의 무제한적 증식에 맞춰 화폐와 주민의 흐름을 관리하는 기구로 전락했으며, 이 정부가 내세우는 진보적이고 현실적인 비전에 반대하는 자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자’ 또는 퇴행적 이기주의자로 치부된다.

더구나 정부의 통치를 반박하는 의견은 혹세무민하는 ‘포퓰리즘’으로 낙인찍히고 처벌받는다. 거리에서 표출되는 목소리와 함성은 통치자의 귀에 ‘들리지 않으며’, 도로를 점거한 시민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뿐이다. 거리를 물대포로 청소하고 컨테이너로 만든 숭고한 작품을 전시한 우리 정부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듯이, 과두정이 추구하는 최고 목표는 ‘인민 없는 통치, 정치 없는 통치’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또 하나의 풍경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를 하나의 말로 간주하지 않던 정부는 거리에 나온 모든 국민을 주권자로 보기는커녕, 사회의 부분으로 셈하지도 않으려 했다. 이에 맞서 도로를 점거하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외쳤던 익명의 사람들, 즉 ‘아무나’가 있다.

그들은 헌법 제1조를 외치면서 헌법이란 반복적으로 ‘검증’되는 순간에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헌법은 투쟁 속에서 매번 다시 기록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시위대는 ‘인민 없는 경영’의 정치를 주장하는 하나의 세계와 ‘인민 권력’의 또 하나의 세계를 함께 놓음으로써 서로 불일치하는 공통의 무대를 세웠다. 이처럼 정치는 사회적·이데올로기적 갈등을 해소하거나, 각 개인 또는 집단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중재하고 경영하는 ‘합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분할’과 ‘불화’에 있다.

정부는 쇠고기 수입 문제를 ‘사적인’ 소비의 문제로 환원했으며, 이 과두정을 함께 경영하는 전문가들은 IT산업과 자동차를 위해 축산업을 희생해야 한다는 ‘공공선’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나눔에 반대함으로써 인민은 더는 소비자 대중으로 머물지 않고 정치적 주체가 되었다. 이 정치적 주체화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아는 자와 무지한 자를 나누는 정부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에서 이탈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시위대가 말하는 인민권력은 비단 하층민이나 노동자 계급의 권력을 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통치 받을 자격 외에는 다른 자격을 갖지 않은 모든 자들의 권력으로 확장되어야할 것이었다. 통치가 아니라 정치를 했던 그 ‘아무나’들이 가진 것은 부, 출생, 지식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뿐이었다.

이것이 랑시에르의 사유를 ‘지금 여기에’ 중첩시켰을 때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장면이다. 독자들이 랑시에르에게 기대했던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이런 얘기들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랑시에르는 “지식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지적 능력의 평등에서 출발하지 않고 지식인과 대중을 나누는 것은 이미 통치의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의 사유의 의의는 오히려 우리가 잠시 겪었던 사건들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 사건을 반복하도록 촉발하는 데 있다. 그가 지식인이 아니라 한 명의 ‘무지한 스승’으로서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아닐까. “네가 하는 것을 계속하라” 네가 가진 힘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게 해준 우연적 사건을 되풀이하라, 네가 배운 것을 다른 모든 것과 연결하라.

양창렬/파리1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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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선생님의 글이다.  

 

박명림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번 주신 글에서 선생께서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에 대해 소상히 설명을 해주셨으니 오늘 저는 ‘정부 수립 60주년,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였나’라는 물음을 통시적 관점에서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저는 1986년부터 92년까지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했는데,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이미지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가끔 TV뉴스에서 듣던 이 한 마디입니다.―‘남한에서 다시 소요사태!’(Wieder Unruhe in Sudkorea!)



3·1운동에서 촛불시위까지 수십년 간격으로 계속된 ‘소요사태’는 국가와 국민의 첨예한 갈등의 표출이란 점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근본 성격을 규정한다. 사진은 2006년 임금 인상 요구로 시작된 소요사태에서 멕시코의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자욱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어지러이 난무하는 돌과 화염병 그리고 쫓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느꼈던 분노와 슬픔과 부끄러움은 지금도 가슴의 흉터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 ‘소요’라는 낱말이 좋든 싫든 한국 역사의 근본 성격에 속하는 것임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엔 그땐 제가 아직 어렸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역사의 지속적 특징에 속하는 그 ‘소요’의 필연성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1811년 홍경래의 반란 이래 이 나라의 역사는 이미 왕조시대부터 민중봉기와 항쟁의 연속이었습니다. 반세기 뒤인 1862년 이른바 진주민란을 효시로 삼남지방을 뒤흔든 농민항쟁이 일어났고, 30여년 뒤인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망하고 의병전쟁도 잦아들었을 무렵 기적처럼 1919년 3·1운동이 있었고, 10년 뒤 광주학생운동은 이름과 달리 함석헌이 가르치던 평안북도 오산학교까지 번진 전국적 봉기였습니다. 해방 후 1948년 제주 4·3사건과 여순반란사건에 이어 1950년 비극적인 전쟁이 있었고, 공산당에 대한 증오에 기대어 천년을 갈 것 같았던 이승만 정권이 1960년 4·19혁명으로 무너졌습니다.



그렇게 얻어낸 민주주의는 이듬해 박정희의 군사반란으로 속절없이 사라지고 다시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세월이 흐르다가,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예고 없는 지진처럼 부마항쟁이 일어났고, 그 직접적인 결과로 박정희의 독재가 종말을 고했습니다. 반년 뒤 1980년 5월 부마항쟁에 응답하듯이 광주항쟁이 터졌고, 길고 고통스러운 투쟁 끝에 1987년 마침내 우리는 민주주의를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20여년 동안 이제 과거와 같은 대규모 민중봉기나 항쟁은 더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더니, 지난해 아무도 예상 못한 촛불항쟁이 백일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역사에 눈 밝은 사람이라면 이것이 오랜 고요 뒤에 찾아올 새로운 봉기의 전조라는 것을 모를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살펴보기만 해도 이 나라의 근·현대사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항쟁과 봉기의 연속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무엇이냐면 이 땅에 참된 공화국이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국가는 내부적으로는 전쟁상태에, 외부적으로는 식민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숩니다. 일제 식민통치나 한국전쟁은 한국사회의 그런 본질이 가장 첨예하게 표출된 경우입니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게 아니라도 내적 전쟁상태와 외적 식민상태가 한국사회의 상시적인 본질에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군사독재 이어서 자본의 독재로…이땅에 참된 공화국 한번도 없어

홉스에 따르면 국가는 전쟁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있습니다. 국가는 내부적으로 정의로운 계약을 통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상태를 종식시키고, 외부적으로는 타자의 침략전쟁으로부터 자신의 주권을 지킬 경우에만 존립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껍데기만 국가일 뿐, 그것은 외세의 괴뢰집단이 아니면 세도가들에 의해 장악된 폭력기구일 뿐입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보자면 바로 한국의 국가기구가 저 두 가지 최악의 경우를 뒤섞어 놓은 것입니다.

그 까닭은 이 땅에서는 국가가 가족을 지양한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전 편지에서 저는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국가를 가족공동체와 얼마나 엄격하게 구분했는지 말씀드렸습니다만, 굳이 서양만이 아니라도 가족공동체를 지양하지 못하는 사회에 참된 의미의 국가란 있을 수 없습니다. 가족은 자유로운 만남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내가 내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은 자유의 현실태일 수 없습니다. 참된 자유와 보다 더 큰 만남을 위해 우리는 가족을 벗어나 더 큰 전체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자기를 실현해야 합니다. 국가는 그처럼 보다 더 확장된 만남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인간이 창안한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혈연관계가 자동적으로 사람들을 묶어주는 가족과 달리 국가는 사람들이 공유된 뜻과 이상을 통해 결속할 때만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런 국가가 없습니다. 2000년 전의 성씨가 아직도 이어지는 이 나라에서 국가는 여전히 씨족연립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단 국가기구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회적 공동체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재벌이나 학벌에서 보듯 가족주의 또는 족벌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곳이 한국사회입니다. 차이라면 과거의 벌열가문이 지금은 ‘고소영’ ‘강부자’ 등으로 옷을 갈아입은 것뿐, 이 나라가 우리 모두의 나라가 아니라 소수 족벌의 나라인 것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결과 국가기구는 평소에는 소수의 집단에 의해 사적으로 장악되고, 위기에 처하면 모래성처럼 해체되어 버립니다. 모두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 국가가 민중의 비판과 저항에 직면하는 것은 정해진 순서인데, 국가기구가 비판하고 저항하는 민중을 서슴없이 적으로 간주해 공격할 때 전쟁상태를 종식시켜야 할 국가가 도리어 민중을 적으로 삼아 전쟁상태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폭력적 권력이 세운 남북한 모두 반대세력 폭력적 방식으로 제거

이런 상황을 엄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국가 내부의 전쟁상태와 정치적 상태를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갈등과 대립이 없는 국가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갈등과 대립이 원칙적으로 구성원들의 사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공적 선을 두고 발생하는 것일 때 대립의 당사자들은 서로를 선의의 경쟁자로서 존중할 수 있고, 대립조차 공공적 선을 위해 이바지하게 됩니다. 국가 내부의 갈등이 이렇게 발생하고 조정되는 한에서 그 국가는 정치적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대립이 순전히 사적인 이익의 충돌에서 발생하고, 그 결과 대립의 당사자들이 상대방을 자기의 이익을 침해하는 적으로 간주할 때 국가는 내부적으로 전쟁상태에 빠져들게 됩니다. 특히 한국사회처럼 국가기구가 특정집단에 의해 사사로이 장악된 곳에서는 국가기구와 민중 사이에 전쟁상태가 조성되며, 이것은 구체적인 계기가 주어지면 언제라도 현실적 충돌로 비화하게 됩니다. 홍경래의 반란에서부터 지난해 촛불항쟁까지 우리 역사 속의 모든 봉기와 항쟁은 무장투쟁이든 비무장항쟁이든 바로 그런 본질적 전쟁상태의 현실적 표출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국가기구가 대다수 민중을 적으로 대할 때, 국가가 아무리 물리적 폭력수단을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전체 민중을 이기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배세력이 민중의 지지 대신 외세에 의존하여 내부 권력을 유지하려 하면, 국가는 밖으로 외세의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 결과 민중의 삶은 이중의 수탈 아래 놓이게 되며, 그럴수록 민중과 국가기구 사이의 전쟁상태는 더 첨예해지는 것입니다.

국가가 시민을 ‘적’으로 안봤다면 용산 대참사 같은 일은 없었을 것

이런 사정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아무것도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생각하면 남한도, 북한도 처음부터 시민의 동의가 아니라 외세를 등에 업은 새로운 권력집단의 폭력에 의해 수립된 국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유롭고 평등한 만남을 거부하면서 국가공동체를 유지하려면 폭력과 강제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과 북 어디서나 현실 권력집단에 반대하는 세력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거되었습니다.

남에서는 김구나 여운형이, 북에서는 조만식 같은 분들이 암살되거나 살해되었고, 평범한 반대자들은 가차 없이 법과 공권력을 통해 처형되었습니다. 그 가장 비극적인 사례가 제주 4·3사건입니다.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봉기한 제주도의 남로당 무장대원을 토벌하겠다고 (이들의 숫자는 아무리 많게 잡아도 500명을 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3만명 이상의 민간인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차별 학살했으니, 이것이 전쟁상태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두 해 뒤에 터진 한국전쟁은 그런 본질적 전쟁상태의 확장이었을 뿐입니다.

소수족벌들에 좌지우지된 한국민중 비판·저항은 ‘예고된 순서’

그렇게 뿌리가 썩었는데 나라가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뒤 우리는 내내 참된 국가, 곧 공화국을 가져보지 못하고 군부독재 아래 살다가 지금은 자본의 독재를 견디고 있습니다. 독재자들이 시민을 동등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인데, 그것이 다시 이 땅에 첨예한 전쟁상태를 조성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지배의 종류를 나누면서 정치가가 시민을 지배하는 것은 동등한 사람들 사이의 지배라는 점에서 주인의 노예지배나 가부장의 가족지배와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간단히 말해 정치적 지배란 동등한 친구들 사이의 지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국가권력을 장악한 자들은 동료 시민을 친구로 보지 않는 것은 물론, 아예 사람으로도 보지 않습니다. 용산 철거민들이 사람으로 보였다면 시너통이 가득한 농성장을 무차별 공격할 수 있었겠습니까?

철거민뿐입니까? 이 나라의 권력자들은 자기들에게 반대하는 모두를 무조건 적으로 만듭니다.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육은 크게 다를 수 없으므로 어디서나 교육자들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데, 한국의 권력자들은 그런 교사들을 싸잡아 적으로 만듭니다. 평교사도 모자라 이제는 일제고사를 통해 교장들까지 줄을 세우겠다고 나섰으니 대다수 교장들이 반정부집단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저들의 탐욕과 미련함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일제고사다 언론법이다, 그렇게 부지런히 모두를 적으로 만들면서 그들은 한 줌의 지배세력으로 고립되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무르익으면 폭풍이 몰려오고 저들은 썩은 과일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듯 몰락할 것입니다. 겨울이 가고 봄입니다. 그렇듯 우리 역사에도 머지않아 봄이 올 것입니다.

우리의 일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조용히 그 때를 기다리며 새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겠지요. 식지 않는 분노를 삼키며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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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4)정부 수립 60주년,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였나(上)  

 

김상봉 선생님, 베트남 학술회의는 잘 끝내셨나요. 저는 베트남에 갈 때면 한국과의 묘한 동질성을 느끼곤 했습니다. 무엇보다 두 나라는 누천년 중화체제하에서 독립된 정치공동체를 유지한 유이(唯二)한 존재라는 점입니다. 서구 제국들로부터 침략당했던 경험도, 20세기 세계 냉전으로 영토분단과 동족상잔 전쟁을 치른 점도 같습니다.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것이나 현재 베트남의 해외직접투자 1위 국가가 한국이라는 사실도 특이하지요.



미디어법 개정 시도, 역사교과서 수정 요구, 제2롯데월드 허용(왼쪽부터) 등은 이명박 정부가 언론·교육·안보 등 민주주의와 국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공공의 영역에 대해서 조차 일관되게 시장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부수립 60년이 지난 대한민국을 저는 세 가지 지점에서 접근하려 합니다. 첫째는 국가의제의 설정과 성취 여부이고요. 둘째는 이를 국제·남북·국내 차원으로 나눠 보려 합니다. 셋째는 국가-시장-시민사회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국가건설, 경제발전, 민주주의, 복지·인간사회라는 네 가지 국가의제(national agenda), 즉 공통의 사회의제가 존재했다고 봅니다. 이 의제에 조응해 국가공동체를 표현한다면 각각 안보국가, 발전국가, 민주국가, 복지국가가 되겠지요. 냉전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진 한국의 국가건설은 좌우대결과 전쟁상태 속에 생사투쟁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경제발전은 한 세대 만에 빈곤탈출과 산업화를 이루는 기적을 보여주었고, 민주화 역시 과거 권위주의 체제를 모두 시민저항으로 붕괴시키거나 붕괴의 단초를 마련할 만큼 놀라웠습니다.

산업화 · 민주화 등 성취 불구
개인의 행복·자유·인권 악화


국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한국의 국가의제 성취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사회주의 진영과의 대결의 최전방에 위치한 이유로, 이 네 가지 의제를 달성하는 데 있어 국제사회의 후원은 상당히 컸습니다. 한국전쟁 참전, 막대한 원조, 민주화를 위한 국제적 연대와 압력의 예가 증명하지요. 동시에 한국의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첨단화, 민주화와 시민운동의 효과 역시 동아시아와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한편 남북관계 차원에서는 분단으로 인해 인권·자유·민주주의가 억압받는 일방적 적대와 남북경쟁을 통한 국가의제 성취를 이루어오기도 했습니다. 이 분단문제는 훗날 상세히 말씀 나눌 것이기에 생략하겠습니다. 이렇게 오늘의 세계화 이전에 이미 한국은 ‘들어오는 세계화’와 ‘나가는 세계화’가 만나는 방식으로 생존하고 발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취는 공짜가 아니라 막대한 인간적 비용을 지불한 결과였습니다. 전체 국가의제를 성취하기 위해 개인의 행복은 물론 자유와 인권, 심지어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토록 큰 희생을 치르며 그 의제들을 성취한 지금, 과연 그 꿈과 희망에 값하는 공동체를 만들었나요?

불행히도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를 건설하고,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궁극적 이유는 삶이 더욱 행복하고 평안해지기 위한 것, 인간적인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역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와 국가 공동체를 위해 반드시 독립적으로 자기역할을 해야 할 영역에서마저 일관되게 시장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탈공공화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보의 문제는 ‘제2롯데월드 허용’으로, 교육의 문제는 ‘교과서 개정 논란’으로, 언론의 문제는 ‘미디어법 개정’이라는 사건에서 보듯이 시장의 관점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시장유일주의의 귀결이 두렵습니다.

정부수립 이후 우리는 국가주도의 산업화를 통해 시장을 창출하고, 이어 국가와 시장이 시민사회를 성장시키고, 다시 시민사회가 권위주의 국가를 전복하며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관계의 발전을 보여왔습니다. 위로부터 근대화의 전형적인 순환경로였지요. 문제는 민주화를 이룬 지금 이 3자간의 상호 균형과 견제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민주화가 시장과 기득권 세력의 자유화로 연결되면서 우리는 시민-민주-공화국가가 아니라 기업-시장-경제국가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자살률 높고 출산율 세계 최악
한국사회 피폐성·불안정 증거


결국 지난 60년 동안 우리는 민주화 이전에는 국가 우위의 권위주의 국가를, 민주화 이후에는 시장 우위의 시장·기업국가를 건설했지만 그렇게 소망하던 민주공화국은 아직 이루지 못했습니다. 또한 교육·노동 등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부분적으로 해결해 왔으나 응축된 한 개인의 인간적 실존에 관한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거나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사회문제는 곧 실존문제이며, 실존문제가 곧 사회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회를 떠난 실존도 실존을 떠난 사회도 불가능하며,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뿐만 아니라 개인에 대한 사회의 책임 역시 막중한 것이지요.

구체적인 지표를 통해 이런 사실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치로 봐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계적 보편으로부터 너무 멀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민주정부하에서조차 성장 위주의 정책과 사회권력 자원의 집중 현상은 강화되었습니다. 양적 지표를 비교하면 민주정부가 권위주의 정부들 못지않게 시장의 성장에 유능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명박정부의 시장·기업주의
민주공화국가 건설에 치명적


박정희 시대 1961~70년의 평균 GDP 성장률은 8.45%, 71~79년은 8.27%였습니다. 전두환 시기는 8.7%, 노태우 시기 8.36%, 김영삼 시기 7.1%, 김대중 시기 7.2%로 계속 고성장을 이어갔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4.3%로 1인당 국민소득은 1만2826달러에서 2만81달러로, 수출은 1938억달러에서 3567억달러로 급상승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의 경제성장은 같은 수준의 세계국가들 중 최상위급이었습니다.

이 여섯 정부의 마지막해 외환보유액을 보면 각각 57억달러(1979년), 92억달러(87), 171억달러(92), 204억달러(97), 1214억달러(2002), 2622억달러(2007)였습니다. 이 역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급증합니다. 무역총액 및 수출 증가율, 물가상승률도 권위주의 정부에 못지않습니다.

반면 민주주의의 내면은 보편적 경로를 이탈하고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사회·평등·복지성의 완전한 일탈입니다. 1인당 GDP 2만달러라는 동일시점에서 공적사회지출 비율을 보면 OECD 국가의 평균은 19.9%였습니다. 그러나 한국(2004)은 OECD 평균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6.3%였습니다. 이것이 지난날 좌파정부라 공격받던 한국 민주주의의 참담한 내면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최악의 공공성, 사회성조차 외면하고 더욱 탈공공화, 시장화, 친기업화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선진화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는 보수담론들이 이토록 명백한 반선진화, 반글로벌 비교통계는 왜 준거로 삼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은 한국이 각각 2.8%(91), 3.5%(95), 6.3%(99), 5.7%(2003)에 불과하나 같은 시기 OECD 평균은 19, 19.9, 19.7, 20.7%입니다. EU 15개국 평균은 각각 22.8, 23.9, 23, 23.9%이고요. 80년의 OECD 평균이 15.0%였음을 고려하면 2분의 1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한 한국사회가 어디에 서 있는지 분명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복지예산’이라는 비판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연간 평균 노동시간 역시 세계 최장입니다. 자살률은 OECD 2배에 달하고, 출산율은 세계 최악입니다. 복지파탄과 육아·교육문제로 인해 출산율은 매년 세계 최저 기록을 경신했지요. 이것이 한국 사회의 삶의 피폐성과 불안정성의 정체입니다.

소득분배 역시 계속 악화하고 있습니다. 지니계수는 각 정부의 마지막 해를 기준으로 0.248(노태우), 0.262(김영삼), 0.284(김대중), 0.312(노무현)로 상승 악화하고 있고, 상위 20%와 하위 20% 계층의 소득을 나눈 ‘소득 5분위 배열’ 역시 같은 기준으로 3.63, 3.94, 4.5, 5.08%로 상승 악화하고 있습니다. 중산층의 붕괴와 하향빈곤화를 의미하는 상대적 빈곤율(소득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각각 7.3, 8.9, 10.3, 13%로 계속 악화하고 있습니다. 평등은 악화되고 빈곤은 심화되고 있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 그러나 실질적 민주주의의 역진. 이 조합은 사회통합을 해체해 궁극적으로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집어삼킬 위험이 있습니다. 국가-시민-시장의 균형, 특히 ‘사회적 권력 자원’의 분산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회권력 자원이 과점·독점된 상태에서 민주국가가 정상적으로 발전한 사례는 없습니다. 그것은 민중적 저항을 불러일으키거나 아니면 독재나 파시즘을 낳았습니다. 저는 정부수립 60년을 넘어가는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라고 봅니다. 즉 절차적 민주주의는 진전하는데 사회권력 자원은 더욱 집중되고 있다는 겁니다.

언론·종교·노동 권력 소수에 집중
한국 민주주의 가장 위험한 경고


특히 교육, 언론, 종교, 노동, 지역의 권력은 양극화를 넘어 소수 상위층으로 더욱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위험한 경고입니다. 공익과 공준의 존재를 부정하고 공론형성과 표출을 방해하며 공동의 가치를 지향하는 행위를 사사화하는 재벌체제, 노동구조, 언론질서, 교육제도, 종교규모, 법률시장, 지역문제는 이제 정치제도 못지않게 우리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대면해야 합니다. 아마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만남’과 ‘서로주체성’은 이를 위한 출발요소이며, ‘모두로부터’와 ‘모두를 위해’는 그 귀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민주국가들은 경제발전 이후 ‘자본주의 속의 사회정부(social government in capitalism)’를 견지해왔습니다. EU는 아예 헌법에 “고도로 경쟁적인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문구를 삽입해 “경쟁과 사회를 결합한 시장경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요. 그러나 “자본주의 속의 기업정부”를 추구하는 한국이 이미 모든 통계가 민주주의와 공화국가에 반하는 결과로 드러난 현재의 시장·기업국가 지향을 고수할 때 그 귀결은 가공할 만한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침식은 물론 좌우로부터의 도전을 통해 훨씬 심각한 결말을 초래할지 모릅니다.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선생님의 인문적 통찰을 기다리며 오늘의 편지를 맺습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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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연재 기사이다.  

 

박명림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공화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에 이어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가 어떤 역사적 유래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설명해 주신 글은 제게도 많은 배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근대적인 헌법이 쓰인 뒤에 여러 차례 헌법이 개정되어 왔지만, 선생님이 설명해주신 것처럼 그리도 일관되게 나라의 정체성을 민주공화국이라 천명한 것은 헌법을 기초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입장이나 성향과 무관하게 민주공화국에 대한 온 겨레의 요구와 열망이 감히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보듯이 민주공화국의 기틀이 이 나라에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말뜻뿐만 아니라 그 괴리를 사유하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헌법 제1조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주셨으니 이번 편지에서 저는 헌법 제1조의 뜻을 생각하되, 그 조항이 표현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염두에 두고 논의를 시작하려 합니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밤새 토론하고 있다. 참된 민주공화국은 시민들이 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누어야 하고, 서로의 행불행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며, 모든 일에 대해 같이 알고 더불어 생각하면서 나랏일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근본에서 보자면 국가는 인간의 본질로부터 생겨난 공동체입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기를 스스로 형성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모두 미완성의 존재, 가능성의 존재로서 세상에 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하나의 과제인 바, 한갓 가능성으로서의 인간성을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맡겨진 몫입니다. 그렇게 자기를 스스로 형성하고 창조해 나가는 활동이 바로 인간의 자유입니다. 자유란 탈주나 도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형성에 있는 것이지요.

국가는 만남통해 형성된 공동체…헌법의 이상·현실 ‘괴리’ 살펴야

그런데 인간은 누구도 자기 혼자서는 자기가 될 수도, 자기를 형성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오직 너를 통해서 세상에 오며 너와의 만남을 통해 내가 됩니다. 모든 나는 누군가의 너로서 존재하며 너와 함께 우리를 이룰 때만 나도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고립된 홀로주체가 아니라 만남과 인연의 교차점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내가 자기를 형성한다는 것은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된다는 것, 개인이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의 삶의 온전함 역시 너와 나의 만남의 온전함에 존립합니다. 만남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나의 자유의 범위도 넓어지고 그 만남이 참되고 온전한 만큼 나의 삶, 나의 자유도 온전해지는 것이지요.

국가 역시 그런 만남을 통해 생성되고 형성되는 공동체의 하나입니다. 다시 말해 수많은 사람의 만남이 일정한 외연과 형식 속에서 전체를 이룬 것이 국가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첫 번째 편지에서 국가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만남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국가의 문제가 만남의 문제인 한에서, 국가의 참됨 역시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의 참됨에 존립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국가를 생각하는 것은 참된 만남이 무엇인가를 묻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일방적 주제·객체 아닌‘서로주체성’ 가져야 참 국가

만남이란 너와 내가 모여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참된 만남의 현 실태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도 일방적으로 주체가 되거나 객체가 되지 않고 너와 내가 서로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가리켜 서로주체성이라 불러왔습니다만, 이것은 구체적으로 세 계기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감성의 서로주체성은 너와 내가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데서 시작됩니다. 너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되고 나의 기쁨이 너의 기쁨이 될 때, 우리는 감성의 차원에서 서로주체성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둘째로 의지의 서로주체성은 너와 내가 서로에게 책임을 느끼고 의무를 다하려 할 때 성립합니다. 이를테면 너와 내가 서로의 고통을 단순히 공감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내가 책임져야 할 의무의 대상이라고 느끼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애쓸 때, 우리는 윤리적 의지의 차원에서 서로주체성의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생각의 서로주체성이 있는데, 이는 너와 내가 고립된 홀로주체로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더불어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자주 말해지는 집단적 지성은 바로 서로주체성 속에서 생성되는 지성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도덕적 이념과 결합하면 한갓 지성에서 머물지 않고 공공적 이성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서로 고통·책임·생각 나누고 모두를 위한 나라가 공화국

만약 한 나라가 참된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 전체라면 저 세 가지 요소를 반드시 포함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즉 시민들이 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누어야 하고, 서로의 행불행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며, 마지막으로 모든 일에 대해 같이 알고 더불어 생각하면서 나랏일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눈물에 무관심한 사람들, 타인의 고통에 아무런 책임도 못 느끼는 사람들 그리고 만사를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사람들이 같이 나라를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이 심각한 위기에 처한 근본 원인도 바로 이 국가의 바탕이 치명적으로 훼손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지난번 용산참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구체적인 잘잘못을 따지는 일을 제쳐두고 근본에서 생각하자면, 그것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동과 무책임 그리고 반대의견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독단적 사고방식이 낳은 참사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국가권력만이 문제라고 할 수도 없으니 우리들 자신이 자기의 고통에만 예민하고 만사를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홀로주체성 속에 빠져 있는 까닭에, 밀려오는 시대의 파도 앞에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져 속수무책으로 휩쓸리는 것이 지금의 세태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온전히 나라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오직 이 나라의 시민들이 고통과 책임과 생각을 더불어 나누면서 나라를 같이 만들어 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나라의 주인이 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 상태가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서로주체성 속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 국가는 단순히 시민들의 개별적 주체성의 총합이 아니라 언제나 그것을 초과하는 전체입니다. 전체는 여럿의 하나가 모여 다시 새로운 하나를 이룬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 사람의 의지가 하나의 의지가 되고 만 사람의 생각이 하나의 생각이 될 때 그것이 전체로서의 나라입니다. 물론 이 전체는 언제나 개별적 주체들의 전체이니, 그 자신 공공적이고 보편적인 주체입니다.

그런데 공공적이고 보편적인 주체로서의 국가가 개별적인 주체성을 초과한다고 말씀드린 까닭은 국가가 개인 위에 군림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모두로부터 있으며 모두를 위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모두에게 있음과 모두를 위해 있음이라는 국가의 공공적 존재방식을 가리켜 우리는 공화국이라 부릅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 모두를 위해 있는 우리 모두의 나라가 바로 공화국인 것입니다.

숭례문 화재와 용산 참사…나라 태우는 불길 보여준 사건

그러므로 민주공화국이란 개별적 시민의 주체성과 나라의 공공성이 온전히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의미에서 이런 나라를 이루는 것은 시민의 과제입니다. 시민이 국가 속에서 태어나는 한에서 국가는 시민적 삶의 전제이지만, 시민이 국가를 끊임없이 참된 나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에서라면 국가는 시민적 삶의 과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함석헌이 말했듯이 전체도 자라는 것인 까닭에 시민이 국가를 형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같은 것의 반복이 아니라 낡은 것의 부정이요, 지양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의 헌법전문이 3·1운동과 4·19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천명한 것이 바로 이것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말은 밖으로는 나라의 독립과 주체성을 보존하고 안으로는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지만 3·1운동과 4·19를 사건 자체로서 본다면 그것은 민중이 당시의 국가기구를 부정하고 지양한 사건이니, 대한민국의 헌법이 그 사건의 정당성을 승인하고 그 정신을 계승한다고 천명한 것은 참된 나라, 온전한 민주공화국을 이루기 위해 시민이 현존하는 국가기구를 부정하고 지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요구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1987년 유월항쟁의 성과로 이 헌법이 제정된 이래 다시 한 세대가 흐른 지금, 그때의 눈부신 희망은 사라지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가 이대로는 지속하기 어려운 낡은 집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나라의 기둥인 민주주의는 흔들리고 나라의 지붕인 공공성은 여기저기 구멍이 나 우리를 추위와 비바람에서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그렇게 낡은 집에 누전과 합선으로 불이라도 나면 아무것도 모르고 잠든 사람들은 속절없이 불길에 타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금 은유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해 숭례문이 불탄 것이 전조였다면 올해 용산참사는 나라를 태우는 불꽃이 실제로 타오르기 시작했음을 알려준 사건입니다. 서로를 잠에서 깨우고 함께 모여 불을 꺼야 합니다. 하지만 공연히 불이 난 것이 아니라 집이 낡을 대로 낡아 불이 난 것이니, 이제 우리는 이 집을 헐고 새 집을 지을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헌법 제1조를 생각하는 뜻은 씨알들이 그렇게 낡은 국가를 부정하고 지양해 끊임없이 새 나라를 만들어 나가라는 헌법정신을 생각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편지를 베트남 하이퐁의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계가 어디나 위기에 처한 시대여서, 여기서도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와 가톨릭 주교회의가 공동으로 나라 안팎의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을 초대해 공산혁명의 주역이었던 호찌민 아저씨(여기서 그렇게 부르는군요)의 흉상 아래 모여 앉아 과연 시장경제와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 토론을 벌이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에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요, 교회에 공산당은 적그리스도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들이 사이좋게 사람의 일을 같이 염려하는 것이 그렇게 놀랍고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제 다시 회의장으로 갑니다. 다시 뵐 때까지 평안을 빕니다.

<김상봉|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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