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4)정부 수립 60주년,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였나(上)  

 

김상봉 선생님, 베트남 학술회의는 잘 끝내셨나요. 저는 베트남에 갈 때면 한국과의 묘한 동질성을 느끼곤 했습니다. 무엇보다 두 나라는 누천년 중화체제하에서 독립된 정치공동체를 유지한 유이(唯二)한 존재라는 점입니다. 서구 제국들로부터 침략당했던 경험도, 20세기 세계 냉전으로 영토분단과 동족상잔 전쟁을 치른 점도 같습니다.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것이나 현재 베트남의 해외직접투자 1위 국가가 한국이라는 사실도 특이하지요.



미디어법 개정 시도, 역사교과서 수정 요구, 제2롯데월드 허용(왼쪽부터) 등은 이명박 정부가 언론·교육·안보 등 민주주의와 국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공공의 영역에 대해서 조차 일관되게 시장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부수립 60년이 지난 대한민국을 저는 세 가지 지점에서 접근하려 합니다. 첫째는 국가의제의 설정과 성취 여부이고요. 둘째는 이를 국제·남북·국내 차원으로 나눠 보려 합니다. 셋째는 국가-시장-시민사회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국가건설, 경제발전, 민주주의, 복지·인간사회라는 네 가지 국가의제(national agenda), 즉 공통의 사회의제가 존재했다고 봅니다. 이 의제에 조응해 국가공동체를 표현한다면 각각 안보국가, 발전국가, 민주국가, 복지국가가 되겠지요. 냉전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진 한국의 국가건설은 좌우대결과 전쟁상태 속에 생사투쟁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경제발전은 한 세대 만에 빈곤탈출과 산업화를 이루는 기적을 보여주었고, 민주화 역시 과거 권위주의 체제를 모두 시민저항으로 붕괴시키거나 붕괴의 단초를 마련할 만큼 놀라웠습니다.

산업화 · 민주화 등 성취 불구
개인의 행복·자유·인권 악화


국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한국의 국가의제 성취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사회주의 진영과의 대결의 최전방에 위치한 이유로, 이 네 가지 의제를 달성하는 데 있어 국제사회의 후원은 상당히 컸습니다. 한국전쟁 참전, 막대한 원조, 민주화를 위한 국제적 연대와 압력의 예가 증명하지요. 동시에 한국의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첨단화, 민주화와 시민운동의 효과 역시 동아시아와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한편 남북관계 차원에서는 분단으로 인해 인권·자유·민주주의가 억압받는 일방적 적대와 남북경쟁을 통한 국가의제 성취를 이루어오기도 했습니다. 이 분단문제는 훗날 상세히 말씀 나눌 것이기에 생략하겠습니다. 이렇게 오늘의 세계화 이전에 이미 한국은 ‘들어오는 세계화’와 ‘나가는 세계화’가 만나는 방식으로 생존하고 발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취는 공짜가 아니라 막대한 인간적 비용을 지불한 결과였습니다. 전체 국가의제를 성취하기 위해 개인의 행복은 물론 자유와 인권, 심지어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토록 큰 희생을 치르며 그 의제들을 성취한 지금, 과연 그 꿈과 희망에 값하는 공동체를 만들었나요?

불행히도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를 건설하고,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궁극적 이유는 삶이 더욱 행복하고 평안해지기 위한 것, 인간적인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역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와 국가 공동체를 위해 반드시 독립적으로 자기역할을 해야 할 영역에서마저 일관되게 시장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탈공공화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보의 문제는 ‘제2롯데월드 허용’으로, 교육의 문제는 ‘교과서 개정 논란’으로, 언론의 문제는 ‘미디어법 개정’이라는 사건에서 보듯이 시장의 관점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시장유일주의의 귀결이 두렵습니다.

정부수립 이후 우리는 국가주도의 산업화를 통해 시장을 창출하고, 이어 국가와 시장이 시민사회를 성장시키고, 다시 시민사회가 권위주의 국가를 전복하며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관계의 발전을 보여왔습니다. 위로부터 근대화의 전형적인 순환경로였지요. 문제는 민주화를 이룬 지금 이 3자간의 상호 균형과 견제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민주화가 시장과 기득권 세력의 자유화로 연결되면서 우리는 시민-민주-공화국가가 아니라 기업-시장-경제국가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자살률 높고 출산율 세계 최악
한국사회 피폐성·불안정 증거


결국 지난 60년 동안 우리는 민주화 이전에는 국가 우위의 권위주의 국가를, 민주화 이후에는 시장 우위의 시장·기업국가를 건설했지만 그렇게 소망하던 민주공화국은 아직 이루지 못했습니다. 또한 교육·노동 등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부분적으로 해결해 왔으나 응축된 한 개인의 인간적 실존에 관한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거나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사회문제는 곧 실존문제이며, 실존문제가 곧 사회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회를 떠난 실존도 실존을 떠난 사회도 불가능하며,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뿐만 아니라 개인에 대한 사회의 책임 역시 막중한 것이지요.

구체적인 지표를 통해 이런 사실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치로 봐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계적 보편으로부터 너무 멀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민주정부하에서조차 성장 위주의 정책과 사회권력 자원의 집중 현상은 강화되었습니다. 양적 지표를 비교하면 민주정부가 권위주의 정부들 못지않게 시장의 성장에 유능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명박정부의 시장·기업주의
민주공화국가 건설에 치명적


박정희 시대 1961~70년의 평균 GDP 성장률은 8.45%, 71~79년은 8.27%였습니다. 전두환 시기는 8.7%, 노태우 시기 8.36%, 김영삼 시기 7.1%, 김대중 시기 7.2%로 계속 고성장을 이어갔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4.3%로 1인당 국민소득은 1만2826달러에서 2만81달러로, 수출은 1938억달러에서 3567억달러로 급상승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의 경제성장은 같은 수준의 세계국가들 중 최상위급이었습니다.

이 여섯 정부의 마지막해 외환보유액을 보면 각각 57억달러(1979년), 92억달러(87), 171억달러(92), 204억달러(97), 1214억달러(2002), 2622억달러(2007)였습니다. 이 역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급증합니다. 무역총액 및 수출 증가율, 물가상승률도 권위주의 정부에 못지않습니다.

반면 민주주의의 내면은 보편적 경로를 이탈하고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사회·평등·복지성의 완전한 일탈입니다. 1인당 GDP 2만달러라는 동일시점에서 공적사회지출 비율을 보면 OECD 국가의 평균은 19.9%였습니다. 그러나 한국(2004)은 OECD 평균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6.3%였습니다. 이것이 지난날 좌파정부라 공격받던 한국 민주주의의 참담한 내면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최악의 공공성, 사회성조차 외면하고 더욱 탈공공화, 시장화, 친기업화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선진화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는 보수담론들이 이토록 명백한 반선진화, 반글로벌 비교통계는 왜 준거로 삼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은 한국이 각각 2.8%(91), 3.5%(95), 6.3%(99), 5.7%(2003)에 불과하나 같은 시기 OECD 평균은 19, 19.9, 19.7, 20.7%입니다. EU 15개국 평균은 각각 22.8, 23.9, 23, 23.9%이고요. 80년의 OECD 평균이 15.0%였음을 고려하면 2분의 1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한 한국사회가 어디에 서 있는지 분명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복지예산’이라는 비판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연간 평균 노동시간 역시 세계 최장입니다. 자살률은 OECD 2배에 달하고, 출산율은 세계 최악입니다. 복지파탄과 육아·교육문제로 인해 출산율은 매년 세계 최저 기록을 경신했지요. 이것이 한국 사회의 삶의 피폐성과 불안정성의 정체입니다.

소득분배 역시 계속 악화하고 있습니다. 지니계수는 각 정부의 마지막 해를 기준으로 0.248(노태우), 0.262(김영삼), 0.284(김대중), 0.312(노무현)로 상승 악화하고 있고, 상위 20%와 하위 20% 계층의 소득을 나눈 ‘소득 5분위 배열’ 역시 같은 기준으로 3.63, 3.94, 4.5, 5.08%로 상승 악화하고 있습니다. 중산층의 붕괴와 하향빈곤화를 의미하는 상대적 빈곤율(소득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각각 7.3, 8.9, 10.3, 13%로 계속 악화하고 있습니다. 평등은 악화되고 빈곤은 심화되고 있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 그러나 실질적 민주주의의 역진. 이 조합은 사회통합을 해체해 궁극적으로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집어삼킬 위험이 있습니다. 국가-시민-시장의 균형, 특히 ‘사회적 권력 자원’의 분산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회권력 자원이 과점·독점된 상태에서 민주국가가 정상적으로 발전한 사례는 없습니다. 그것은 민중적 저항을 불러일으키거나 아니면 독재나 파시즘을 낳았습니다. 저는 정부수립 60년을 넘어가는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라고 봅니다. 즉 절차적 민주주의는 진전하는데 사회권력 자원은 더욱 집중되고 있다는 겁니다.

언론·종교·노동 권력 소수에 집중
한국 민주주의 가장 위험한 경고


특히 교육, 언론, 종교, 노동, 지역의 권력은 양극화를 넘어 소수 상위층으로 더욱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위험한 경고입니다. 공익과 공준의 존재를 부정하고 공론형성과 표출을 방해하며 공동의 가치를 지향하는 행위를 사사화하는 재벌체제, 노동구조, 언론질서, 교육제도, 종교규모, 법률시장, 지역문제는 이제 정치제도 못지않게 우리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대면해야 합니다. 아마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만남’과 ‘서로주체성’은 이를 위한 출발요소이며, ‘모두로부터’와 ‘모두를 위해’는 그 귀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민주국가들은 경제발전 이후 ‘자본주의 속의 사회정부(social government in capitalism)’를 견지해왔습니다. EU는 아예 헌법에 “고도로 경쟁적인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문구를 삽입해 “경쟁과 사회를 결합한 시장경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요. 그러나 “자본주의 속의 기업정부”를 추구하는 한국이 이미 모든 통계가 민주주의와 공화국가에 반하는 결과로 드러난 현재의 시장·기업국가 지향을 고수할 때 그 귀결은 가공할 만한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침식은 물론 좌우로부터의 도전을 통해 훨씬 심각한 결말을 초래할지 모릅니다.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선생님의 인문적 통찰을 기다리며 오늘의 편지를 맺습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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