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봉 선생님의 글이다.
박명림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번 주신 글에서 선생께서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에 대해 소상히 설명을 해주셨으니 오늘 저는 ‘정부 수립 60주년,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였나’라는 물음을 통시적 관점에서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저는 1986년부터 92년까지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했는데,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이미지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가끔 TV뉴스에서 듣던 이 한 마디입니다.―‘남한에서 다시 소요사태!’(Wieder Unruhe in Sudkorea!)
3·1운동에서 촛불시위까지 수십년 간격으로 계속된 ‘소요사태’는 국가와 국민의 첨예한 갈등의 표출이란 점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근본 성격을 규정한다. 사진은 2006년 임금 인상 요구로 시작된 소요사태에서 멕시코의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자욱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어지러이 난무하는 돌과 화염병 그리고 쫓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느꼈던 분노와 슬픔과 부끄러움은 지금도 가슴의 흉터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 ‘소요’라는 낱말이 좋든 싫든 한국 역사의 근본 성격에 속하는 것임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엔 그땐 제가 아직 어렸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역사의 지속적 특징에 속하는 그 ‘소요’의 필연성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1811년 홍경래의 반란 이래 이 나라의 역사는 이미 왕조시대부터 민중봉기와 항쟁의 연속이었습니다. 반세기 뒤인 1862년 이른바 진주민란을 효시로 삼남지방을 뒤흔든 농민항쟁이 일어났고, 30여년 뒤인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망하고 의병전쟁도 잦아들었을 무렵 기적처럼 1919년 3·1운동이 있었고, 10년 뒤 광주학생운동은 이름과 달리 함석헌이 가르치던 평안북도 오산학교까지 번진 전국적 봉기였습니다. 해방 후 1948년 제주 4·3사건과 여순반란사건에 이어 1950년 비극적인 전쟁이 있었고, 공산당에 대한 증오에 기대어 천년을 갈 것 같았던 이승만 정권이 1960년 4·19혁명으로 무너졌습니다.
그렇게 얻어낸 민주주의는 이듬해 박정희의 군사반란으로 속절없이 사라지고 다시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세월이 흐르다가,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예고 없는 지진처럼 부마항쟁이 일어났고, 그 직접적인 결과로 박정희의 독재가 종말을 고했습니다. 반년 뒤 1980년 5월 부마항쟁에 응답하듯이 광주항쟁이 터졌고, 길고 고통스러운 투쟁 끝에 1987년 마침내 우리는 민주주의를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20여년 동안 이제 과거와 같은 대규모 민중봉기나 항쟁은 더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더니, 지난해 아무도 예상 못한 촛불항쟁이 백일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역사에 눈 밝은 사람이라면 이것이 오랜 고요 뒤에 찾아올 새로운 봉기의 전조라는 것을 모를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살펴보기만 해도 이 나라의 근·현대사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항쟁과 봉기의 연속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무엇이냐면 이 땅에 참된 공화국이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국가는 내부적으로는 전쟁상태에, 외부적으로는 식민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숩니다. 일제 식민통치나 한국전쟁은 한국사회의 그런 본질이 가장 첨예하게 표출된 경우입니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게 아니라도 내적 전쟁상태와 외적 식민상태가 한국사회의 상시적인 본질에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군사독재 이어서 자본의 독재로…이땅에 참된 공화국 한번도 없어
홉스에 따르면 국가는 전쟁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있습니다. 국가는 내부적으로 정의로운 계약을 통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상태를 종식시키고, 외부적으로는 타자의 침략전쟁으로부터 자신의 주권을 지킬 경우에만 존립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껍데기만 국가일 뿐, 그것은 외세의 괴뢰집단이 아니면 세도가들에 의해 장악된 폭력기구일 뿐입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보자면 바로 한국의 국가기구가 저 두 가지 최악의 경우를 뒤섞어 놓은 것입니다.
그 까닭은 이 땅에서는 국가가 가족을 지양한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전 편지에서 저는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국가를 가족공동체와 얼마나 엄격하게 구분했는지 말씀드렸습니다만, 굳이 서양만이 아니라도 가족공동체를 지양하지 못하는 사회에 참된 의미의 국가란 있을 수 없습니다. 가족은 자유로운 만남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내가 내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은 자유의 현실태일 수 없습니다. 참된 자유와 보다 더 큰 만남을 위해 우리는 가족을 벗어나 더 큰 전체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자기를 실현해야 합니다. 국가는 그처럼 보다 더 확장된 만남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인간이 창안한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혈연관계가 자동적으로 사람들을 묶어주는 가족과 달리 국가는 사람들이 공유된 뜻과 이상을 통해 결속할 때만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런 국가가 없습니다. 2000년 전의 성씨가 아직도 이어지는 이 나라에서 국가는 여전히 씨족연립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단 국가기구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회적 공동체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재벌이나 학벌에서 보듯 가족주의 또는 족벌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곳이 한국사회입니다. 차이라면 과거의 벌열가문이 지금은 ‘고소영’ ‘강부자’ 등으로 옷을 갈아입은 것뿐, 이 나라가 우리 모두의 나라가 아니라 소수 족벌의 나라인 것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결과 국가기구는 평소에는 소수의 집단에 의해 사적으로 장악되고, 위기에 처하면 모래성처럼 해체되어 버립니다. 모두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 국가가 민중의 비판과 저항에 직면하는 것은 정해진 순서인데, 국가기구가 비판하고 저항하는 민중을 서슴없이 적으로 간주해 공격할 때 전쟁상태를 종식시켜야 할 국가가 도리어 민중을 적으로 삼아 전쟁상태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폭력적 권력이 세운 남북한 모두 반대세력 폭력적 방식으로 제거
이런 상황을 엄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국가 내부의 전쟁상태와 정치적 상태를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갈등과 대립이 없는 국가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갈등과 대립이 원칙적으로 구성원들의 사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공적 선을 두고 발생하는 것일 때 대립의 당사자들은 서로를 선의의 경쟁자로서 존중할 수 있고, 대립조차 공공적 선을 위해 이바지하게 됩니다. 국가 내부의 갈등이 이렇게 발생하고 조정되는 한에서 그 국가는 정치적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대립이 순전히 사적인 이익의 충돌에서 발생하고, 그 결과 대립의 당사자들이 상대방을 자기의 이익을 침해하는 적으로 간주할 때 국가는 내부적으로 전쟁상태에 빠져들게 됩니다. 특히 한국사회처럼 국가기구가 특정집단에 의해 사사로이 장악된 곳에서는 국가기구와 민중 사이에 전쟁상태가 조성되며, 이것은 구체적인 계기가 주어지면 언제라도 현실적 충돌로 비화하게 됩니다. 홍경래의 반란에서부터 지난해 촛불항쟁까지 우리 역사 속의 모든 봉기와 항쟁은 무장투쟁이든 비무장항쟁이든 바로 그런 본질적 전쟁상태의 현실적 표출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국가기구가 대다수 민중을 적으로 대할 때, 국가가 아무리 물리적 폭력수단을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전체 민중을 이기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배세력이 민중의 지지 대신 외세에 의존하여 내부 권력을 유지하려 하면, 국가는 밖으로 외세의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 결과 민중의 삶은 이중의 수탈 아래 놓이게 되며, 그럴수록 민중과 국가기구 사이의 전쟁상태는 더 첨예해지는 것입니다.
국가가 시민을 ‘적’으로 안봤다면 용산 대참사 같은 일은 없었을 것
이런 사정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아무것도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생각하면 남한도, 북한도 처음부터 시민의 동의가 아니라 외세를 등에 업은 새로운 권력집단의 폭력에 의해 수립된 국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유롭고 평등한 만남을 거부하면서 국가공동체를 유지하려면 폭력과 강제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과 북 어디서나 현실 권력집단에 반대하는 세력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거되었습니다.
남에서는 김구나 여운형이, 북에서는 조만식 같은 분들이 암살되거나 살해되었고, 평범한 반대자들은 가차 없이 법과 공권력을 통해 처형되었습니다. 그 가장 비극적인 사례가 제주 4·3사건입니다.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봉기한 제주도의 남로당 무장대원을 토벌하겠다고 (이들의 숫자는 아무리 많게 잡아도 500명을 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3만명 이상의 민간인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차별 학살했으니, 이것이 전쟁상태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두 해 뒤에 터진 한국전쟁은 그런 본질적 전쟁상태의 확장이었을 뿐입니다.
소수족벌들에 좌지우지된 한국민중 비판·저항은 ‘예고된 순서’
그렇게 뿌리가 썩었는데 나라가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뒤 우리는 내내 참된 국가, 곧 공화국을 가져보지 못하고 군부독재 아래 살다가 지금은 자본의 독재를 견디고 있습니다. 독재자들이 시민을 동등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인데, 그것이 다시 이 땅에 첨예한 전쟁상태를 조성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지배의 종류를 나누면서 정치가가 시민을 지배하는 것은 동등한 사람들 사이의 지배라는 점에서 주인의 노예지배나 가부장의 가족지배와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간단히 말해 정치적 지배란 동등한 친구들 사이의 지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국가권력을 장악한 자들은 동료 시민을 친구로 보지 않는 것은 물론, 아예 사람으로도 보지 않습니다. 용산 철거민들이 사람으로 보였다면 시너통이 가득한 농성장을 무차별 공격할 수 있었겠습니까?
철거민뿐입니까? 이 나라의 권력자들은 자기들에게 반대하는 모두를 무조건 적으로 만듭니다.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육은 크게 다를 수 없으므로 어디서나 교육자들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데, 한국의 권력자들은 그런 교사들을 싸잡아 적으로 만듭니다. 평교사도 모자라 이제는 일제고사를 통해 교장들까지 줄을 세우겠다고 나섰으니 대다수 교장들이 반정부집단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저들의 탐욕과 미련함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일제고사다 언론법이다, 그렇게 부지런히 모두를 적으로 만들면서 그들은 한 줌의 지배세력으로 고립되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무르익으면 폭풍이 몰려오고 저들은 썩은 과일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듯 몰락할 것입니다. 겨울이 가고 봄입니다. 그렇듯 우리 역사에도 머지않아 봄이 올 것입니다.
우리의 일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조용히 그 때를 기다리며 새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겠지요. 식지 않는 분노를 삼키며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