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국가폭력 도구 전락… 판·검사 책임 물어야

박명림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이번 주제는 법인데, 지난번 편지에서 우리 사회에서 정치의 사법화를 염려하고, 법치가 인치로 역전되는 것을 비판하신 데 대해서는 저도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아니 공감하는 정도가 아니라 선생님의 비판이 너무 온건하다고 느낄 만큼 저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사법체계가 본질적으로 파탄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왜 그런지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그 개선을 위한 대책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공할 무렵 페르시아 궁중에 스파르타에서 망명해온 데마라토스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군대가 출병하기 전에 페르시아 왕이 이 스파르타인에게 물었습니다. “나의 군사들은 지휘관의 채찍이 두려워 전쟁터에서 없는 용기라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리스인들이 모두 그렇게 자유롭다면 어떻게 전쟁터에서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전투를 수행할 수 있소?” 이는 국가공동체가 오직 홀로주체의 폭력적 강제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전제군주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물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해 데마라토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리스인들에겐 왕이 없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법을 왕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이 법에 대해 품고 있는 외경심은 전하의 신하들이 전하를 두려워하는 것을 훨씬 능가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스파르타의 법이 전쟁터에서 등을 돌리고 도망치지 말라고 명하므로 스파르타인들은 아무리 많은 수의 적군 앞에서도 비겁하게 도망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법은 시민의 의지가 반영된 것일 때 정당성을 얻는다. 사진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난달 20일 무죄선고를 받고 풀려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 대법원 청사 로비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자크 루이 다비드의 1787년작 <소크라테스의 죽음>.

그의 예견대로 고작 300명의 스파르타 군대는 테르모필레의 협곡에서 수십만의 페르시아 군대를 맞아 마치 코르크 마개가 병을 막듯이 여러 날 동안 협곡을 지키다가 배후를 공격한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전멸했습니다. 훗날 그 자리에 어느 시인이 이런 시를 남겼다지요. ‘스파르타에 가거든 전해다오, 나그네여. 우리가 조국의 법을 지켜 여기 누워 있는 것을 그대가 보았노라고.’ 그리고 이천 몇백 년도 더 지난 뒤에 철학자 칸트는 데마라토스가 말했던 법에 대한 외경심을 아예 도덕의 본질로 격상시켰는데, 그에 따르면 도덕적 감정이란 곧 ‘법칙에 대한 존경심!’과 같은 것입니다.

저 이야기는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도 숭고한 감동을 불러일으키지만, 낭만적 도취는 금물이니, 우리는 깨어서 물어야 합니다. 과연 법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때로 스파르타인들처럼 목숨을 걸고서라도 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국가보안법도 법이니까 지켜야 하고, 야간집회금지법도 그저 법이니까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아마도 가장 적절한 대답은 소크라테스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터무니없는 죄목으로 사형판결을 받고 난 뒤에 친구 크리톤이 옥에 찾아와 수차례 탈옥을 권유했고, 실제로 그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일이니 반복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미련한 고집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적당히 탈옥해서 아테네의 사법살인을 막지 않고 끝내 법에 따라 죽는 것을 택했는지, 사람들은 그 이유를 잘 알지는 못합니다. 통속적인 전승에 따르면 악법도 법이므로 지켜야 한다고 소크라테스가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그런 맹목이란 철학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플라톤이 대화편 <크리톤>에서 전하는 것에 따르면, 소크라테스가 탈옥하지 않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딱 하나,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법에 동의하여 70 평생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당시 아테네에는 시민이 성인이 되어 아테네의 법과 정치체제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재산을 처분하여 가족과 함께 아테네를 떠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오직 자기가 제정한 법에만 복종하는 사람이 자유로운 시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일 뿐 현실에서 모든 시민이 제각기 자기 식으로 나라의 법을 제정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미 있는 법을 따를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경우 실정법은 언제라도 시민의 자유를 구속하는 외적 강제나 폭력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법을 때마다 새로이 제정하지 않고서도, 법이 시민의 자유로운 일반의지의 표현이 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테네인들은 법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에게 나라를 떠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국가가 모든 시민과 때마다 새로이 계약을 맺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런 다음 아테네는 모든 시민에게 나라를 떠날 권리를 보장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이 아테네를 떠나지 않으면 아테네의 법률과 정치체제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여, 그들에게 국법을 지킬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그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자기가 동의한 법절차에 따라 진행된 재판이 결과적으로 자기에게 불리하게 끝났다 해서 그에 불복하는 것은 자유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자가당착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내가 법에 동의하지 않을 때 법은 나의 주관적 의지를 억압하는 강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록 나 자신에게 제정한 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동의한다면, 그 법은 나의 주관적 의지가 객관화된 것과 같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법에 대해 내가 동의한다면, 그 법은 내가 만든 법과 마찬가지로 나의 의지의 보편적 표현인 것입니다. 법에 대한 외경이나 존경심은 바로 이런 자유로운 동의에 기초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타율적인 강제에 대한 노예적인 굴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의지의 일관성을 지키고 그런 자기를 존경하고 존중하는 일입니다. 적어도 이것이 인치(人治)도 덕치(德治)도 아닌 서양적 법치(法治)의 본래적인 의미입니다. 하지만 똑같이 법의 허울을 걸치고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제정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은 법이란 한갓 외적 강제의 체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누구도 그런 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기구로 전락한 국가는 제멋대로 법률을 만들고 그것을 민중에게 강요합니다. 모든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어김없이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일본이 우리에게 근대적인 법제도를 처음 도입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주장을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법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조선인의 자유로운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조선인을 노예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외적 강제의 체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역사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에 따르면 3·1운동의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가 경찰과 헌병에 의한 ‘합법적 매질’이었습니다. 당시 법에 의하면 곤장 90대 이하의 형벌은 재판 없이 경찰과 헌병의 재량에 의해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는 처음 대나무를 매로 사용하다 그게 잘 부러지니까 소의 음경에 납덩이를 매달아 매로 썼는데, 아랫도리를 벗기고 몇십대를 때리면 엉덩이 살이 물에 풀어진 종잇장처럼 흐물흐물해졌다 합니다. 그렇게 때려죽인 사람이 몇 천, 몇 만인지 셀 수도 없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조선민중의 분노가 3·1운동으로 폭발했을 때, 일제는 다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야만적인 폭력으로 조선인을 제압했습니다. 양심적인 외국인들이나 해외 동포들에 의해 학살과 고문의 실상이 외부 세계에 알려지고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자 일본당국이 대답했답니다. ‘일본 형법에서는 고문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므로 조선 땅에서 고문이 자행된다고 하는 말은 불순분자들의 악의적인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일본이 우리에게 선사한 근대적 법입니다. 이런 법, 참 편리하고 좋지 않습니까?

그 후 이 땅에서 법이란 늘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승만은 평화통일을 주장했다고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키고 박정희는 유신시대 공포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이른바 인혁당 관련자들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문 끝에 공산주의자들로 만들어 사형시켰는데, 고문에서 시작해 고문으로 끝난 전두환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김대중 정부의 경우에도 고문이 근절된 것은 아니었으며, 당연히 아직 우리는 이 땅에서 사법적 폭력이 근절되었다는 아무런 확실한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는 이명박 정부 들어 나라가 점점 더 폭력기구화되고 법이 그 도구가 되어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법은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시민을 지키기는커녕, 그 자신이 국가폭력의 도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땅의 지배계급은 제 마음대로 법을 만들고 제 마음대로 적용합니다. 재벌회장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고 죄를 고발한 노동자가 도리어 처벌받는 곳이 이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추상적인 담론으로는 이 현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법에 의한 국가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사법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도입해야 할 제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국가 권력을 대신해서 법을 집행하는 검사와 판사 그리고 경찰에게 그들의 법적 행위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사는 아무리 선의의 실수라도 의료사고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집니다. 그런데 왜 법조인은 자기의 공적 행위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미네르바가 최종적으로 무죄가 확정된다면 피해 당사자는 영장을 청구한 검사와 발부한 판사를 시민 법정에 소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정당성을 시민 배심원들 앞에서 설득할 수 없을 경우 그들을 권력을 남용한 죄로 처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법조 권력에 의한 권력남용과 반인륜적 범죄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앞에서도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다른 모든 관직은 추첨으로 뽑았으나 장군만은 선출했습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장군의 명령에 기꺼이 복종했습니다. 하지만 장군이 심각한 과오로 병사들을 위험에 빠뜨렸을 때, 그를 민회에 호출하여 가차 없이 탄핵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이제 법 앞의 평등이 무엇인지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 땅의 법조인들을 위해, 그들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법을 가르칠 때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상봉 전남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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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 사법, 권력엔 종속·시민엔 독립 외치는 ‘이중성’

김상봉 선생님 평안하신지요. 오늘은 법에 대해 말씀 나눌 차례이지만 제기하신 중요한 정치문제에 대해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한 사회에서 정치의 존재이유는 대화에 바탕을 둔 공준창출을 통해 갈등해소·가치배분·사회통합 역할의 수행에 있습니다. 정치의 근본역할은 대화·소통·타협을 통해 합의 가능한 공통가치의 창출과 배분인 것이지요. 자유·평등·복지·성장·인권·환경·교육 중 무엇을 ‘필수’가치, ‘핵심’가치, ‘주요’가치, ‘부차’가치로 추구할 것인가 역시 정치를 통해 결정됩니다. 그런데 정치와 정치 이외의 것의 결정적 차이는 정치에는 권력요소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적 인격적 만남을 통해 국가공동체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최선이지만 가치와 재화의 제한성은 권력을 정치의 필수요소로 불러들입니다. 이 점이 정치의 기본속성이지요. 우리가 정당을 결성하거나 투표에 참여하는 이유 역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을 제어하거나 자기와 동료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려는 정치행위입니다. 가치의 우선순위가 다를 때 일정한 배분 노력은 필수적이며, 거기에서 가치배분의 예술로서의 소통·대화·타협이 필요하게 됩니다.



한국 사법부와 검찰은 독립과 자유를 통한 공공가치 수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잊고 권력과 기득이익에 종속돼 정치화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흔들리는 검찰 깃발을 배경으로 한 대법원의 정의의 여신상과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 재판’ 개입에 항의하는 시민단체의 모습.

정치의 역할왜곡으로 인해 공준창출은커녕 사회갈등과 공동체 해체가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 한국현실입니다. 정치를 위한 정치, 권력을 위한 권력으로 인해 정치본연의 존재이유는 실종되었습니다. 정치는 인간적 가치실현을 위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목적으로 전도되면서 갈등증폭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정치가 공준창출기능을 상실하자 이율배반적 현상들이 함께 등장하고 있지요. 내적으로는 사익추구에 몰두해 부패와 향락에 쉬이 무너지며 외적으로는 다른 영역, 즉 기업·언론·사법·종교·시민단체의 역할이 급증합니다. 정치과소화이지요. 또 정반대로 가치배분·공준창출을 위한 한시 위임에 불과한 공직수임, 정부구성 권한을 마치 무한권력을 장악하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영역, 즉 언론·학교·종교·법률은 물론 민간기업인사에까지 개입합니다. 사적 영역의 자율성과 인간관계마저 파괴하는 정치과잉화로서 자율·독립·공화의 가치를 앞서 무너뜨리는 것이지요.

사회 공통가치 창출·배분의 정치
역할왜곡으로 이념대결·갈등조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폄하나 정치회피가 해답일 수 없는 것은, 공동체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치를 대체할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 역시 정치의 바른 역할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정당문제에 대해 저는 이중참여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즉 정부공직·정당결성·투표를 포함한 ‘제도에의 참여’는 물론 ‘제도 자체의 변경을 위한 참여’ 역시 중요합니다. 특히 현행 헌정구조와 대표체제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정당참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당체제와 헌정제도의 근본개혁이라는 점을 강조드리고 싶습니다. 대대의(代代議)제도로서의 공천제도 문제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정당체제의 근본문제는 추가하지 않을 수 없군요.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은 단 두 번의 여야정권교체를 거치는 동안 모두 8번의 여당을 갖는 반면, 대통령의 탈당으로 인해 네 정부 모두 여당-야당 없는 비정당 정부를 반복해왔습니다. 게다가 88년 이후 총선의 유효정당 수는 평균 3.7개에 이르러, 단순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는 양당제로 귀결된다는 정당이론조차 무화시키고 있습니다. 단임 헌정구조, 하향공천제, 지역정당체제가 결합한 극히 불안정하고 왜곡된 헌정체제·대의제도·정당체제이지요.

현행 헌정구조와 대표체계의 결합은 지역에 따라 경쟁의 의미는 물론 공동체 차원의 시민자격·참여·대표의 등가성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헌정체제개혁은 제외하더라도, 선거제도만이라도 변경할 경우 표의 등가성과 대표의 왜곡은 현저히 개선되어 정당체제의 민주화와 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를 도입하면 민주노동당은 17대 총선에서 10석이 아닌 40석을 획득, 상당히 유의미한 정당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헌정구조와 정당체제의 혁신이 보수세력으로 인해 불가능하였다고 하더라도 정치역량의 중요성은 여전히 남습니다. 한국의 자유-진보 정당들은, 자유-노동 연합이나 시민-민중 연합은 고사하고, 자유-진보 독자 공준창출이나 연합공준의 제시는커녕 각각 내부의 차이조차 극복 못하고 분열을 반복하면서 다시 합당(열린당+민주당)과 연합공천(민노당+진보신당)을 시도합니다. 이 분열을 볼 때 공준창출은 국가공동체 차원에서만 요구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선생님과 제가 정치 및 정당을 이해하는 데서는 몇몇 차이를 드러내었지만 저는 말씀드린 참여와 대의,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결합을 통해 ‘가능한 최선’의 공화국을 향한, 말씀하신 인간적 만남으로 형성되는 공동체를 향한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때에 민주성과 공공성의 실현을 위해 정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을 저는 법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사회에서 법만이라도, 공정과 형평을 위한 최소 준거라는 자기역할을 수행하였다면 우리 공동체가 오늘날 이 정도로 격조와 자기규율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습니다. 권력과 시장을 포함한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명한 키케로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자유롭기 위해 법에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지금 우리는 이른바 정치와 삶의 ‘사법화’ ‘법률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수도이전, 탄핵, 의원선거 당선 여부, 대선과정, 부패와 같은 공동체 문제는 물론 병역거부(의무), 호주제(가족관계), 종부세(세금)를 포함한 개인적 사회적 삶과 공동체의 거의 모든 문제들이 검찰·법원·헌재를 포함한 사법기구의 직접적 자장에 놓여 있습니다. 법문(法門)에 덜 갈수록 좋은 삶이요, 법이 적은 사회일수록 좋은 사회임을 고려할 때, 법원과 사법의 비중이 크고 넓어진 만큼 정의와 형평의 수호자로서의 본래의 존재이유와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법은 지금 합의된 어떤 승복기준과 일관성을 갖고 있나요? 본래부터 법적 판결은 최고 법원에서조차 자주 바뀔 만큼 최종적, 궁극적, 무오류적 결정은 전혀 아닙니다.

‘형평 최소준거’ 법이 자기역할 못해
개인·공동체 삶 모든 문제가 사법화


우리사회에서 법률은 진실의 존재 자체보다는 진실의 공개과정을 문제 삼고(법률가들은 피의사실을 공개해 법을 위반하면서도요), 범죄의 내용보다는 늘 범죄 주체와 권력의 거리 및 범죄내용 공개시점을 문제삼습니다. 어떻게 같은 행위에 대해 시점과 주체에 따라 이토록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까? 정권에 따라 진실이 다르다면 그것은 이미 권력의 논리이지 법률과 정의의 논리는 아니지요. 이 때문에 ‘사법의 정치화’는 진실·정의·진리의 수호자로서의 법률과 법원의 존재의의를 기득이익과 권력논리에 복무하게 합니다. 권력과 정의, 정치와 진실이 충돌할 때 법은 의당 후자에 서야 하나 한국에서는 늘 전자에 서왔습니다. 따라서 정치의 사법화와 형사화 못지않게 위험한 것은 법원·검찰·헌재를 포함한 사법의 정치화, 권력화입니다. 권력견제, 형평성, 인권유지의 보루인 사법이 권력논리를 따르면 3권분립은 기저에서부터 무너집니다.

또 사법은, 경제발전기여를 명분으로 기업총수에 대한 법률적용을 철회하는 데서 보듯 스스로 법률외적 요인-경제적 사회적 지위-을 의식하여 판결하고 있습니다. 법의 사사화이지요. 수백만원의 개인 절도사범과 수천만원의 정치자금 위반, 수백억원 기업총수의 위법은, 전혀 상이한 처벌과 면책 기준을 통해 검찰과 법원 스스로 법의 존재 이유를 파괴합니다. 또 사법독립을 말하나 지금의 독립은 지극히 이중적입니다. 자신들의 독립을 가능케 해준 시민(적 공준)으로부터는 독립되려하면서, 권력과 기득이익에는 종속되는, 즉 “시민으로부터의 독립, 권력에의 종속”, 이 이중특성이 한국사법의 특징입니다. 특히 권력과 기득이익에 대한 종속은, 대형로펌의 사례에서 보듯, 이익의 일치 수준까지 치닫고 있습니다.

법률외적인 경제·사회요인 의식
법원 스스로 법의 공공가치 파괴


누가 오늘의 사법독립을 가능케 하였나요? 권력인가요, 시민인가요? 인권을 포함한 인간적 문제에 관한 전향적 판결 역시 전체 사회의 민주화의 산물이었음은, 즉 사회의 민주화가 사법으로 흘러들어간 효과였음은 재론을 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사법의 독립성을 말할 단계가 되자 권력·시장·언론의 압력에 대해서는 알아서 배려하면서도 시민적 압력과 요구에 대해서는 떼법이라며 사법독립과 간섭배제, 자율을 외치고 있습니다. 고래로 법률은 권력과 기득이익에 대한 독립과 자율을 통한 공공가치 수호가 존재이유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한국사회에서 법의 지배는 시민과 민주주의로부터 독립된, 사법관료주의와 사법전문성에 기초한 법률가의 지배(rule of lawyer)로 전이하고 있습니다. ‘법의 지배’와 ‘법률가 지배’는 전혀 같지 않습니다. 이젠 ‘법률가 국가’(nation under lawyer)라는 언명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전혀 의식하지 못해왔으나 이 점은 민주주의냐 헌정주의냐, 다수결이냐 법치냐의 범주를 넘어 공화국 자체의 본질을 흔드는 문제입니다. 즉 ‘법률’이라는 원칙·제도에서 법률가라는 사람·인물로의 전이, 곧 ‘법치’에서 ‘인치’(rule of man)로의 역전이기 때문입니다. 통치자의 자의, 즉 인치를 견제하려 나온 원칙이 법치이나 사법의 역할증대와 함께 다시 인치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법률가의 지배가 갖는 근본위험이 있습니다.

통치자와 입법자는 물론 “법률가조차 법 위에 존재해선 안된다”는 것이 법치의 기저원칙입니다. 선출되지 않은 법률가의 해석·적용의 재량과 자유는 법률의 범위 내로 제한되어야 합니다. 즉 공동가치를 향한 집합행위로서의 입법적 지혜를 넘어서는 안됩니다. 시민대표이자 입법자로서 선출직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고, 시민공준=집합의지가 입법과정을 통해 비선출직인 법률가의 해석을 제약해야 하는 연원이 여기에 있습니다. ‘지배의 배제’ ‘간섭의 금지’ ‘자유의 확보’라는 민주공화국 구성의 최소 원리는, 법률가가 지배하는 인치 단계에서는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법률가이건 정치인이건 인치의 위험은 그만큼 큽니다. 이 때문에 저는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에서 카시우스가 브루투스에게 한 “나도 시저처럼 자유인으로 태어났소. 당신도 그렇고요”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인치로 인해 ‘자유의 위축’ ‘지배의 확대’를 초래하는 시저에 대한 저항의지의 표현이지요.

민주주의와 법은 보완·긴장관계
人治뿐 아니라 ‘법의 지배’도 제약을


법의 지배조차 민주주의의 원칙과 공존하거나 그에 제약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초기 헌정주의 확보단계를 지나면 민주주의와 법치는 상호보완적일 뿐만 아니라 늘 긴장된 관계를 보여왔습니다. 법치만능을 주창하는 사법통치사회(juristocracy)는 공화국의 발전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체주의·공산체제·군부독재 등 다양한 형태의 독재들은 법치를 통해 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유린해왔습니다. 즉 법치와 민주주의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사법이 정의와 자유, 공화국 공통가치의 수호자로 바로 서기 위해서라도 사회공준과 민주주의 원칙의 사법으로의 확산과 침투는 필수적입니다.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한 선생님의 지혜를 기다리며 여기서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박명림 연세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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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악셀 호네트


1949년 독일 에센에서 태어났다. 1996년 하버마스의 후임자로 프랑크푸르트대 철학과 교수가 되었고, 2001년부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산실인 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오늘날 독일의 진보적 사상을 말한다면 누구나 마르크스를 기원으로 지목한다. 이른바 헤겔 좌파적 전통을 계승한 마르크스의 인간해방 사상은 부단한 혁신을 거치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사회이론으로까지 이어지는데, 호네트는 1세대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2세대인 하버마스의 뒤를 이은 프랑크푸르트학파 3세대의 대표자로 일컬어진다. 1세대가 ‘계몽의 변증법 테제’를 통해, 그리고 2세대가 ‘의사소통행위이론’을 통해 현대사회를 비판했다면, 호네트는 이들의 지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인정이론’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비판이론을 발전시키고 있다. 국내에 번역된 저서로는 <인정투쟁> <물화> <정의의 타자>가 있다.

 

 

 


사회는 사회적 인정의 대상과 내용을 확장하려는 인정 투쟁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투쟁은 자신을 무시한 상대방을 파괴하려는 것도, 자신을 무시한 사회 자체를 철폐하려는 것도 아니며, 새로운 인정 질서를 형성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다.
 


 

» 악셀 호네트
 

악셀 호네트(사진)의 사회비판이론은 인정 행위의 도덕적 의미에서 출발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인정을 지속적으로 경험할 때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의식을 형성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긍정적 자기의식 아래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인간의 삶을 생물학적 생명 보존이 아니라, 자기의식에 기초한 자아실현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타인의 인정은 성공적 삶의 조건일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삶의 조건이 된다. 왜냐하면 타인이 나의 인격을 존중하거나, 나의 개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나 또한 자신에 대한 자신감, 자존심, 혹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만족스런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타인의 무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떨까. 사실 타인의 무시를 지속적으로 경험할 때 인간은 스스로를 무시하기 쉬우며, 이러한 부정적 자기의식 하에서는 적극적 자아실현은커녕 생존 자체에 대한 의지까지도 포기하기 쉽다. 과연 그 누구의 인정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와 삶의 가치를 확신할 수 있을까? 아무리 독불장군이라도, 지금은 아니지만 그 어디에선가 자신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면, 자신에게 향하는 수많은 손가락질과 고독을 감당해 낼 순 없을 것이다.

도덕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도리 같은 것인가. 왜 우리는 그것을 따라야 하나. 아마 그래야 인간 사이에 질서가 생기고 갈등도 해결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질서가 필요하고 갈등이 해결되어야 하는가. 이는 결국 타인의 훼손 행위로부터 개인의 삶을 보호하자는 것 아닌가. 인간의 자기의식이 타인과의 상호작용 관계에서 형성되며, 인간의 삶이 이를 실현하는 과정이라면 인간은 타인의 부정적 반응에 쉽게 상처받는다. 따라서 인정 행위란 개인의 성공적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이며, 반대로 타인을 무시하는 행위는 개인의 삶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부도덕하다.

이렇게 인정 행위의 도덕성을 전제한다면 이를 통한 사회 비판 역시 가능하다. 왜냐하면 누구를 인정하고 무시하며, 또한 어떤 존재로 인정하는가는 개개인의 임의적 기준에 따라 다양화되는 것이 아니라, 흡사 그 기준을 일반화할 수 있는 반복적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인정과 무시 행위를 통해 사회구성원들 간의 일상적 관계에 모세혈관처럼 파고드는 일종의 사회적 질서, 곧 사회적 인정질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인정질서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과연 인정을 통해 성공적 자아실현을 보장받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를 고찰해보면 모든 사람이 완전한 사회적 인정을 향유한다든지, 아니면 모든 사람이 사회적 무시 때문에 전적으로 자아실현의 기회를 상실하는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기의식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성장하기 때문에 지금은 비록 사회적 인정을 향유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자아정체성 요구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인정질서와 대립할 수밖에 없고, 또한 기존의 사회적 인정에서 배제된 사람들 역시 자아실현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존 사회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인정질서와 갈등하는 개인이 증가하고, 또한 이들의 갈등 경험이 일반화되고 집단화될 때 현존 사회는 사회적 인정의 대상과 내용을 확장하려는 인정 투쟁에 직면하게 된다. 곧 성공적 자아실현, 행복한 삶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저항과 집단적 투쟁이 가시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자신을 무시한 상대방을 파괴하려는 것도, 자신을 무시한 사회 자체를 철폐하려는 것도 아니며, 새로운 인정질서를 형성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다.

1987년 형식적 민주화가 달성된 이래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급격한 변동은 국민의 자기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새로운 인정 요구가 제기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급격한 이혼율 증가가 말해주듯 부부 관계에서 사랑이란 요소가 중요성을 더해가며, 이제 남성과 여성은 전통적 성역할의 담당자가 아니라, 자신을 그 누구와도 대체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치 엘리트의 권력 장악 수단으로 변질됨에 따라 이제 국민은 촛불집회에서 볼 수 있듯이 단지 선거 때 한 표 행사하는 ‘한 표 민주주의’를 넘어서 명실상부한 주권적 존재로서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 주체로 인정받길 원한다.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그로 인한 경제위기가 양극화 현상과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극대화시킴으로써 단지 사회복지의 확대만이 아니라, 정규직 고용 노동자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비정규직, 실업자 모두를 사회적 노동 주체로 인정하자는 요구가 강화되고 있다.

커밍아웃이란 유행어가 말해주듯 사회적 소수자들의 등장은 동질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이질성을 포용하는 새로운 사회적 유대 형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서로를 자아 형성의 주권자로 인정할 것을 함축한다. 또한 세계화가 확산됨에 따라 흡사 세계가 개인을 구성원으로 하는 하나의 통합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모든 인간이 세계 공동체 내에서 향유할 수 있는 보편적 권리가 쟁점이 된다. 이는 이제 인류의 자기의식이 서로를 세계시민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데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남녀 관계에서부터 정치·경제·문화·국제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회변동을 ‘인정’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오늘날 진보적 사회운동의 규범적 목표가 새로운 인정 요구에 맞추어 기존의 사회적 인정질서를 변혁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문성훈/서울여대 교수






 

» 문성훈/서울여대 교수
 
문성훈씨는 연세대 철학과와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독일로 유학해,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악셀 호네트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귀국한 후 인정이론을 체계화하고, 이를 통해 현대 사회 변동과 한국적 상황을 분석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현재 서울여대 현대철학 담당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현대철학의 모험>(공저), <하버마스가 들려주는 의사소통 이야기> <이성의 다양한 목소리>(공저)가 있고, <인정투쟁> <정의의 타자 >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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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정치는 국가형성을 위한 시민들의 ‘참된 만남’

박명림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그동안 선생님과 대화하면서 우리가 전체적으로 너무 입장이 비슷해 보여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았는데, 지난 두 번에 걸쳐 주신 글을 보고 선생님의 생각이 저와 다른 부분들이 좀 드러나는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오늘은 저도 정치에 대해 말씀드릴 차례인데, 선생님과 생각이 같고 다른 점을 드러내면서 말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민이 나랏일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저도 선생님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공적인 일과 무관한 사적인 일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같은 뜻에서 자유는 탈주가 아니라 형성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던 것이고, 거류민이 아닌 시민의 자유를 말했던 것입니다. 형성이란 당연히 나라를 형성하는 것이고, 시민의 자유는 이를 위해 국가권력에 참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국가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시민적 자유의 실현 안에서 가치를 가지는 것이며, 나아가 국가권력에 참여해야 하는 까닭도 국가가 고정된 전제가 아니라 열려 있는 형성의 과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이 국가의 중요성을 말하더라도, 국가가 개인보다 더 소중하다거나, 개인은 전체를 위해 무조건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의견이 현실정치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대중적이고 자발적인 정당운동이 필요하다.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본격화된 진보정당 운동은 민주노동당에 이어 진보신당을 탄생시켰다. 경쟁체제를 갖춘 진보정당의 향후 과제는 개방적이고 대중적인 활동을 통해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사진은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그런 점에서 저는 지난번 편지에서 선생께서 말씀하신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란 표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선생님의 선의를 존중함에도 그 표현은 국가주의자들에 의해 너무 쉽게 악용될 수 있고 또 악용되어 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떤 공동체도 개인에게 헌신을 요구할 권리는 없습니다. 공동체는 그 본질에서 보자면 사물적 실체가 아니라 오직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만 생성되는 서로주체로서, 너와 나의 행위를 통해 발생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만남이 있는 곳에서만 있는 것이요, 오직 참된 만남의 표현이자 실현에서만 참된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국가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실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만남이라는 본질에 기초한 현상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는 실체화된 만남 또는 사물화된 활동으로서, 만남을 통해서만 생겨나고 만남에 근거해서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국가가 시민에게 현실적으로 요구하거나 명령하는 것들은 결코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정당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나타난 현상의 바탕에 있는 시민들 상호간의 만남에 의해 지지되어야만 정당성을 갖습니다. 그럼에도 국가가 공동체의 이름으로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헌신을 요구할 때,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남에게서 강제로 얻어내려 한다는 점에서 강도나 도둑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시민이 국가에 참여해야 하는 까닭은 적극적으로는 국가를 스스로 형성하기 위해서지만, 소극적으로는 그처럼 시민들에게 주인 노릇 하려는 국가의 월권을 방지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아무튼 어떤 이유로든, 우리는 나랏일에 참여해야 하는데, 정치란 그런 참여를 뜻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저는 지난번 편지에서 선생께서 정치를 가치배분의 예술이라고 정의하신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가치배분 또는 재화의 합리적 배분이 정치라면, 정치는 재화를 관리하고 분배하는 일로서 사람과 사람의 일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물 사이의 일이 되고 맙니다. 만약 이처럼 정치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계산일 뿐이라면, 이상적인 정치를 위해 본질적으로 참여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나서 시끄럽게 토론을 한다고 해서, 더 정확하게 계산하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처럼 정치를 가치배분의 기술로 간주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계산은 복잡한 일이요, 귀찮은 일입니다. 그래서 정치가 계산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그것을 남이 대신 해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계산을 가장 잘 하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기계입니다. 그리하여 정치가 배분을 위한 계산이라면 가장 유능한 정치가는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일 것입니다.

정치는 그 본질에서 보자면 재화를 얻거나 배분하는 일도 아니고 권력을 행사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그저 표면의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근본에서 보자면 정치란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활동입니다. 그것은 개별적인 주체들이 만나 서로주체성을 형성하는 것을 뜻합니다. 정치에서 참여가 중요한 까닭은 이처럼 만남이 정치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남이 참여입니다. 이 만남의 총체가 나라인데, 국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만남의 총체인 나라가 구체적인 사회적 실체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이처럼 사회적 실체로 정립된다는 것은 시민들의 만남 속에서 생성되는 공동의 의지와 주체성이 추상적 의지에 머물지 않고 현실적 권력으로 정립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권력의 주체로서 국가는 이제 거꾸로 시민들의 삶을 규제하는 새로운 주체가 되는 것이지요. 정치의 모든 위험은 이 제3의 주체, 곧 국가라는 거대주체가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홀로주체로 퇴행하려는 경향성을 지닌다는 데 있습니다. 국가는 본질적으로 사물화되고 실체화된 서로주체성으로서 주체성과 사물성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국가는 시민들의 서로주체성의 표현이자 실현으로서 주권체이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주체성이 사물화된 것으로 일종의 기계와도 같은 국가기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기계가 홀로 굴러가는 법은 없으니 누군가는 그 기계를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생동하는 만남 속에서 국가권력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언제라도 찬탈자들의 손아귀에서 수탈과 착취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선생께서도 우리 정치의 사사화를 말씀하셨듯이, 이 땅에서 국가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치배분 기술로 간주한 정치는 사람과 사물의 기계적 계산일 뿐
시민의 참여가 중요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소수의 찬탈자들이 저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국가기구를 도구화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국가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옛 중국의 고복격앙가의 신화는 이제 버려야 합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선량한 임금이 있어 나라를 대신 다스려줄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일 뿐입니다. 시민들이 국가를 남의 손에 내버려두면 그것은 예외없이 시민을 노예적으로 억압하고 착취하는 폭력기구로 전락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시민의 자유는 오로지 적극적으로 국가 권력에 참여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국가권력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까? 넓은 의미의 정치적 참여가 문제라면, 한국인들처럼 능동적으로 정치에 참여해 온 사람들도 흔치 않습니다. 우리는 동학농민전쟁이나 광주항쟁에서처럼 폭정에 저항하여 무기를 들기도 했고, 3·1운동이나 4·19처럼 평화적 시위를 통해 민중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비단 그런 대규모 민중봉기가 아니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시민운동 그리고 환경 및 생명운동과 여성운동을 비롯하여 온갖 소수자 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정치참여에 속한다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량한 임금’의 옛 신화 버리고 정당정치 통한 국가권력에 참여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모든 것이 무언가 근본적인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열정적인 참여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긋남의 절정이 지난해 촛불항쟁이었습니다. 시민의 선량한 참여의 열기가 그렇게 오래 그렇게 평화적으로 분출되었음에도 변한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촛불을 드는 것 그 자체가 국가권력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시민들이 아무리 많이 모여, 아무리 오랫동안 촛불을 든다 하더라도 이 정부는 ‘명박산성’ 뒤에서 시민들이 제풀에 지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터득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전처럼 다시 화염병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는 일이라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정당을 통해 국가권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현대국가에서 정치가 원칙적으로 정당에 의한 대의정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풀뿌리정치도 중요하고, 대의정치의 한계가 다양한 직접민주주의적 실천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도 백번 지당한 말이지만 그것이 정당정치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정당은 개별자로서의 시민을 국가라는 보편자와 매개하는 도식과도 같아서, 현대국가에서 시민은 정당을 통해 국가권력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편에 서서 일하는 개방적 대중적 진보정당 키워야
생각하면 한국인들은 다른 모든 정치참여는 다 할 줄 알면서 지금까지 꼭 하나 대중적이고 자발적인 정당운동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현실정치의 모든 불행은 거기서 시작됩니다. 시민이 능동적으로 정당에 참여하지 않는 까닭에 정치꾼들과 지역토호들이 정당을 장악합니다. 정당은 타락하고 다시 시민들은 그런 정당에 등을 돌리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온 것입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한국 정치의 실패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런 낡은 정당들을 대신할 미래의 정당을 만들지 못한 데 있습니다. 독재 권력을 떠받치던 정당도 아니고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재벌을 편들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추진하는 정당도 아니며,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말로만 진보일 뿐 실제로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이비 진보정당도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일하는 개방적이고 대중적인 진보정당을 만들지 못한 것이 지금의 비극적 상황을 초래한 원인인 것입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또한 빠른 때입니다. 그동안 우리 역사 속에서 분출되었던 모든 진보적인 운동의 열정을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고 키워나가는 운동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지금 한국정치의 가장 절박한 현실적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대대적인 정당 가입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고견을 기다리며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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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에 연재되는 벼랑 끝에 선 여성에 관한 기사이다.


A학습지 교사 김혜서(45) 씨. 그는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권하기 싫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 일은 박봉에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일을 하면서 성취감도 느끼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이 일을 권하면 원망을 들을 가능성이 크다.

김 씨는 서른다섯 살에 학습지 교사를 시작해 올해 10년차다. 회사 내에선 선배보다 후배가 더 많은 중견 교사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일이 편해지기는커녕 더욱 힘에 부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몸도, 마음도 "골병 상태"다.

"무거운 학습지 들고 다니다 보면 어느새 골병"

"학습지 교사 오래하면 골병이 든다. 우선 빡빡한 방문 일정 때문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또 말은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몸이 나빠질 수밖에…."

김혜서 씨는 유아와 초등학생을 가르친다. 교재를 들고 다녀야 하는데, 유아 교재라고 무게를 만만하게 봐선 오산이다. 김 씨는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도 많고 교재도 두껍다"며 "한쪽 팔로는 들지도 못해 양손으로 들고 다녀야 한다"고 토로했다.

학습지 답안지를 들고 다녀야 하는 초등학생 교재 또한 무게가 나가긴 마찬가지다. 그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교재와 답안지를 들고 돌아다니다 보면 팔이 빠질 듯 아프다"며 팔을 토닥거렸다.

게다가 밤 10시까지 아이를 가르치다보면 다음날 아침엔 목이 아예 잠겨버린다. 그나마 점심때쯤이 되어서야 겨우 목이 풀린다. 그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목이 아파 남편과 아이와 말하기도 싫어진다"고 말했다.



▲ 국내 학습지 시장의 규모는 상당하다. 그러나 정작 교사들에 대한 처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기본급은 아예 없고, 월급은 100만 원도 안 돼

이렇게 일을 해도 김혜서 씨 손에 잡히는 돈은 한 달에 100만 원이 채 안 된다. 학습지 교사의 월급에는 기본급이 아예 없고 오로지 실적에 따른 수수료가 있다. 학생을 많이 맡을수록 월급을 많이 받는 셈이다. 그가 맡은 과목의 수는 100개가 안 된다. 여느 교사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10년간 일했지만 그의 수수료는 학습지비의 45%였다. 50% 이상 받는 교사도 있지만 스타급 교사들에 국한된다. 실적이 떨어지는 교사는 회사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는 "일도 힘든데 교육까지 받는 때는 죽을 것 같다"며 "교육 받는다고 실적이 올라가지도 않는데 결국 교사를 괴롭히기 위한 방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떨어지는 실적을 맞추기 위해 유아 학습지도 맡았다. 그동안 초등학생만 맡았지만 늘어나는 학원과 공부방이 초등학생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문제는 초등학생에 비해 유아 교육이 훨씬 힘들다는 점이다. 그는 "아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고나면 정말 진이 빠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

줄어드는 학습지 회원들…"회사 눈치 보기가 더 심해졌다"

그나마 경제 위기로 사정은 더 나빠졌다. 형편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에서 학습지를 끊는 학부모들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학습지 시장 전반적으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상황이다. '눈높이'로 유명한 대교는 2008년 영업 이익이 전년대비 27% 감소한 572억1000만원을 기록했다. 매출액 역시 전년에 비해 0.7% 줄어든 8410억9000만 원이고 당기순이익도 46.3% 감소한 258억2300만 원으로 집계됐다. 외국어 교재 출판업체 능률교육도 2008년 영업 이익이 전년대비 7.7% 감소한 43억6800만 원에 그쳤다.

회사는 이제 줄어든 회원 수를 충당하라고 닥달한다. 김 씨네 회사는 얼마 전 소규모 구조 조정을 단행해 몇몇 지국장을 해고했다. 신학기가 시작되면 가방이나 기타 학용품 등 아이들 사은품이 회사에서 지급됐지만 이번에는 전무했다. 그는 "매년 받아온 어머니들은 선물을 계속 바라기 때문에 별수 없이 사재를 털어 선물을 하고 있다"며 답답한 상황을 전했다.

학습지 교사를 소개해주면 회사가 일정 소개비를 지급했는데 이마저도 끊겼다. 경제 위기도 위기거니와 학습지 교사를 지원하는 20대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엔 교사를 구하기 위해 생활 정보지나 신문 하단에 광고도 실었는데 지금은 싣지 않아도 찾아오는 구직자가 많다.

넘쳐나는 교사들, 한정된 일거리

회사의 입장도 변했다. 교사들에게 공공연히 '잘하라'며 압력을 가한다. 김혜서 씨는 "일거리는 한정돼 있는데 교사는 많으니 일을 나눠주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말 잘 듣는 직원에게 우선 일을 배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어쩌겠나. 아니꼽지만 회사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특히 지국장과 팀장의 눈치를 보려면 숨이 턱턱 막힌다.

"팀장은 자기 말을 잘 듣는 교사에게 일을 몰아준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하다. 예를 들어 아파트 단지에서 학습지 홍보를 통해 들어온 수요를 팀장은 특정 교사에게 몰아준다. 나머지 교사들은 스스로 회원을 찾아야만 한다."

김 씨에 따르면 잘 나가는 교사의 월급은 300만 원이 넘는다. 그의 월급이 100만 원이 안 되니 간극이 200만 원이 넘는 셈이다.

월급을 결정짓는 수수료 계정이 이뤄질 때도 마찬가지다. 계정 자체가 무원칙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상사에게 잘 보이는 사람일수록 유리하다는 것. 김혜서 씨는 "회사에서 자주 쓴 소리를 하다 보니 수수료 비율이 갈수록 삭감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힘들어도 다른 일은 엄두가 안 난다"

일을 하다보면 속상한 일도 자주 생긴다. 특히 젊은 학부모가 자신에게 거리낌 없이 말 할때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자존심 때문에 집에 가서 남편에게 하소연도 하지 못한다. 그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기분을 알지 못한다"며 "다들 나를 두고 선생님이라고 하지만 선생님으로 대우는 거의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친구 만나는 것도 꺼려진다. 저녁 때 만나는 것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자신 스스로 자격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적은 돈이긴 하지만 지금 같은 경제 위기에 무시하지 못하는 액수다. 그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것은 10년 전 IMF가 터진 직후였다.

"1998년 처음 학습지를 시작했다. 그 전에는 방과 후 공부방을 만들어 가야금 레슨을 진행했다. 대학 때 가야금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남편보다 수입이 좋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IMF가 터지니 레슨 받던 아이들이 정말 모두 그만뒀다. 그 전엔 돈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레슨을 접을 수밖에 없는데다 남편 사업까지 IMF로 망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결국 그는 학습지 교사를 택했다. 가야금 레슨 때 아이들 공부를 봐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별로 힘들지 않고 낮에 약간만 하면 될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이 지났다. 처음 그가 일을 시작할 때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그만두겠다고 생각했지만, 벌써 아이는 훌쩍 커 중학교 3학년이 됐다.

그는 "다시 가야금 레슨을 하는 것에 대해 수시로 생각하지만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막막하다"며 "더군다나 다시 경제 위기 아닌가"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매일 매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다른 일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김 씨. 나이 마흔다섯, 그가 활짝 웃으며 일할 날은 언제일까.

/허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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