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국가폭력 도구 전락… 판·검사 책임 물어야

박명림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이번 주제는 법인데, 지난번 편지에서 우리 사회에서 정치의 사법화를 염려하고, 법치가 인치로 역전되는 것을 비판하신 데 대해서는 저도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아니 공감하는 정도가 아니라 선생님의 비판이 너무 온건하다고 느낄 만큼 저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사법체계가 본질적으로 파탄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왜 그런지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그 개선을 위한 대책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공할 무렵 페르시아 궁중에 스파르타에서 망명해온 데마라토스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군대가 출병하기 전에 페르시아 왕이 이 스파르타인에게 물었습니다. “나의 군사들은 지휘관의 채찍이 두려워 전쟁터에서 없는 용기라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리스인들이 모두 그렇게 자유롭다면 어떻게 전쟁터에서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전투를 수행할 수 있소?” 이는 국가공동체가 오직 홀로주체의 폭력적 강제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 전제군주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물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해 데마라토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리스인들에겐 왕이 없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법을 왕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이 법에 대해 품고 있는 외경심은 전하의 신하들이 전하를 두려워하는 것을 훨씬 능가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스파르타의 법이 전쟁터에서 등을 돌리고 도망치지 말라고 명하므로 스파르타인들은 아무리 많은 수의 적군 앞에서도 비겁하게 도망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법은 시민의 의지가 반영된 것일 때 정당성을 얻는다. 사진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난달 20일 무죄선고를 받고 풀려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 대법원 청사 로비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자크 루이 다비드의 1787년작 <소크라테스의 죽음>.

그의 예견대로 고작 300명의 스파르타 군대는 테르모필레의 협곡에서 수십만의 페르시아 군대를 맞아 마치 코르크 마개가 병을 막듯이 여러 날 동안 협곡을 지키다가 배후를 공격한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전멸했습니다. 훗날 그 자리에 어느 시인이 이런 시를 남겼다지요. ‘스파르타에 가거든 전해다오, 나그네여. 우리가 조국의 법을 지켜 여기 누워 있는 것을 그대가 보았노라고.’ 그리고 이천 몇백 년도 더 지난 뒤에 철학자 칸트는 데마라토스가 말했던 법에 대한 외경심을 아예 도덕의 본질로 격상시켰는데, 그에 따르면 도덕적 감정이란 곧 ‘법칙에 대한 존경심!’과 같은 것입니다.

저 이야기는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도 숭고한 감동을 불러일으키지만, 낭만적 도취는 금물이니, 우리는 깨어서 물어야 합니다. 과연 법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때로 스파르타인들처럼 목숨을 걸고서라도 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국가보안법도 법이니까 지켜야 하고, 야간집회금지법도 그저 법이니까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아마도 가장 적절한 대답은 소크라테스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터무니없는 죄목으로 사형판결을 받고 난 뒤에 친구 크리톤이 옥에 찾아와 수차례 탈옥을 권유했고, 실제로 그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연히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일이니 반복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미련한 고집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적당히 탈옥해서 아테네의 사법살인을 막지 않고 끝내 법에 따라 죽는 것을 택했는지, 사람들은 그 이유를 잘 알지는 못합니다. 통속적인 전승에 따르면 악법도 법이므로 지켜야 한다고 소크라테스가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그런 맹목이란 철학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플라톤이 대화편 <크리톤>에서 전하는 것에 따르면, 소크라테스가 탈옥하지 않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딱 하나,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법에 동의하여 70 평생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당시 아테네에는 시민이 성인이 되어 아테네의 법과 정치체제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재산을 처분하여 가족과 함께 아테네를 떠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오직 자기가 제정한 법에만 복종하는 사람이 자유로운 시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일 뿐 현실에서 모든 시민이 제각기 자기 식으로 나라의 법을 제정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미 있는 법을 따를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경우 실정법은 언제라도 시민의 자유를 구속하는 외적 강제나 폭력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법을 때마다 새로이 제정하지 않고서도, 법이 시민의 자유로운 일반의지의 표현이 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테네인들은 법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에게 나라를 떠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국가가 모든 시민과 때마다 새로이 계약을 맺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런 다음 아테네는 모든 시민에게 나라를 떠날 권리를 보장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이 아테네를 떠나지 않으면 아테네의 법률과 정치체제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여, 그들에게 국법을 지킬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그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자기가 동의한 법절차에 따라 진행된 재판이 결과적으로 자기에게 불리하게 끝났다 해서 그에 불복하는 것은 자유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자가당착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내가 법에 동의하지 않을 때 법은 나의 주관적 의지를 억압하는 강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록 나 자신에게 제정한 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동의한다면, 그 법은 나의 주관적 의지가 객관화된 것과 같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법에 대해 내가 동의한다면, 그 법은 내가 만든 법과 마찬가지로 나의 의지의 보편적 표현인 것입니다. 법에 대한 외경이나 존경심은 바로 이런 자유로운 동의에 기초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타율적인 강제에 대한 노예적인 굴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의지의 일관성을 지키고 그런 자기를 존경하고 존중하는 일입니다. 적어도 이것이 인치(人治)도 덕치(德治)도 아닌 서양적 법치(法治)의 본래적인 의미입니다. 하지만 똑같이 법의 허울을 걸치고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제정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은 법이란 한갓 외적 강제의 체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누구도 그런 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기구로 전락한 국가는 제멋대로 법률을 만들고 그것을 민중에게 강요합니다. 모든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어김없이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일본이 우리에게 근대적인 법제도를 처음 도입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주장을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법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조선인의 자유로운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조선인을 노예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외적 강제의 체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역사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에 따르면 3·1운동의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가 경찰과 헌병에 의한 ‘합법적 매질’이었습니다. 당시 법에 의하면 곤장 90대 이하의 형벌은 재판 없이 경찰과 헌병의 재량에 의해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는 처음 대나무를 매로 사용하다 그게 잘 부러지니까 소의 음경에 납덩이를 매달아 매로 썼는데, 아랫도리를 벗기고 몇십대를 때리면 엉덩이 살이 물에 풀어진 종잇장처럼 흐물흐물해졌다 합니다. 그렇게 때려죽인 사람이 몇 천, 몇 만인지 셀 수도 없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조선민중의 분노가 3·1운동으로 폭발했을 때, 일제는 다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야만적인 폭력으로 조선인을 제압했습니다. 양심적인 외국인들이나 해외 동포들에 의해 학살과 고문의 실상이 외부 세계에 알려지고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자 일본당국이 대답했답니다. ‘일본 형법에서는 고문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므로 조선 땅에서 고문이 자행된다고 하는 말은 불순분자들의 악의적인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일본이 우리에게 선사한 근대적 법입니다. 이런 법, 참 편리하고 좋지 않습니까?

그 후 이 땅에서 법이란 늘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승만은 평화통일을 주장했다고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키고 박정희는 유신시대 공포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이른바 인혁당 관련자들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문 끝에 공산주의자들로 만들어 사형시켰는데, 고문에서 시작해 고문으로 끝난 전두환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김대중 정부의 경우에도 고문이 근절된 것은 아니었으며, 당연히 아직 우리는 이 땅에서 사법적 폭력이 근절되었다는 아무런 확실한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는 이명박 정부 들어 나라가 점점 더 폭력기구화되고 법이 그 도구가 되어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법은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시민을 지키기는커녕, 그 자신이 국가폭력의 도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땅의 지배계급은 제 마음대로 법을 만들고 제 마음대로 적용합니다. 재벌회장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고 죄를 고발한 노동자가 도리어 처벌받는 곳이 이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추상적인 담론으로는 이 현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법에 의한 국가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사법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도입해야 할 제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국가 권력을 대신해서 법을 집행하는 검사와 판사 그리고 경찰에게 그들의 법적 행위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사는 아무리 선의의 실수라도 의료사고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집니다. 그런데 왜 법조인은 자기의 공적 행위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미네르바가 최종적으로 무죄가 확정된다면 피해 당사자는 영장을 청구한 검사와 발부한 판사를 시민 법정에 소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정당성을 시민 배심원들 앞에서 설득할 수 없을 경우 그들을 권력을 남용한 죄로 처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법조 권력에 의한 권력남용과 반인륜적 범죄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앞에서도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다른 모든 관직은 추첨으로 뽑았으나 장군만은 선출했습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장군의 명령에 기꺼이 복종했습니다. 하지만 장군이 심각한 과오로 병사들을 위험에 빠뜨렸을 때, 그를 민회에 호출하여 가차 없이 탄핵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이제 법 앞의 평등이 무엇인지도,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 땅의 법조인들을 위해, 그들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법을 가르칠 때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상봉 전남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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