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오는 김에 더 퍼온다. 이 연재를 신경쓰고 보지 않았다. 후회가 막급 

 

中國探究]<46> 중국 지식생산구조의 변화와 지식인의 사회적 위상

스타 지식인 위추위()의 '거짓 기부'  사건  

  

 

 

 

'국학대사'라 불리는 지셴린(季羨林)의 서거로 잠시 소강상태를 맞기는 했지만, 올해 상반기 중국 문화계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일은 아마도 위추위(余秋雨)의 '거짓 기부' 소동일 것이다. 위추위는 '가을비'라는 이름의 아우라가 말해주듯이, 중국 문화를 역사적 관점으로 해석해 대중적 수필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 왔다. 그는 최근 중국에서 대중 스타 지식인의 출현이라는 사회·문화 현상을 이끈 주요한 사례로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는 '위대사(余大師)'라는 별칭까지 얻었을 정도다. 중국 문화에 관한 그의 책이 여러 권 번역, 소개된 바 있어 우리에게도 낯선 작가는 아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작년 쓰촨성(四川省) 원촨현(汶川縣)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많은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하자, 학교 건물부실 공사 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 때 그가 학교를 다시 짓는 데 약 20만 위안(元)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기부 액수는 중국 작가들 중에서 으뜸을 차지할 만큼 큰 규모였고, 중국 사회는 그의 이런 선행에 다시 한 번 '감동'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올해 5월, <베이징문학(北京文學)>의 편집장 샤오샤린(蕭夏林)이 블로그에 "그의 기부는 거짓"이라는 요지의 글을 올리면서 의혹을 제기했다. 1주일 쯤 지난 뒤 위추위의 비서가 나서 '주주독서인(九久讀書人)'이라는 문화 기업을 통해 직접 기부했노라고 해명했다. '주주독서인'의 이사장 황위하이(黃育海)도 학교 세 곳에 도서관을 짓는 비용으로 기부했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그런 해명에도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6월 15일에는 역시 위추위 못지않은 대중 지식인인 이중톈(易中天)이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기부를 했다는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하라며" 몰아붙였다. 황위하이는 일언지하에 그의 요구를 거절했으나, 불과 사흘 뒤 기부 사건의 한 당사자였던 두장옌시(都江堰市) 교육국이 기부금으로 도서관을 지은 것은 아니며 "책을 기부한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샤오샤린이 다시 이에 대해 "거짓 증언"이라며 맹공을 퍼붓자 지난 6월 22일 위추위가 공개적으로 해명을 시도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해명은 자신은 "세계 토론대회 심사위원이라 논쟁에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느니 "고수는 함부로 손을 쓰지 않는 법"이라며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

이번 소동은 중국 사회의 지식 생산과 유통의 구조, 그리고 지식인의 사회적 위상이라는 다양한 쟁점들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사회주의 이후, 중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위상은 끝없이 추락했다. 물적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 농민, 병사만이 '인민'으로 호명되면서, 독립적 권위를 가지고 지식 생산에 기여해 왔던 지식인은 사회적 냉대를 받기 일쑤였다. 지금은 형편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대학교수나 의사 등과 같이 우리 사회에서 상위 계층에 속하는 이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별 볼일 없는 집단으로 분류되어 왔다. 사회주의 실험기 동안 중요한 지식은 주로 당과 정부의 테크노크라트들에 의해 기획되었고, 역시 당과 정부가 장악한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었다. 제도권 내부의 지식과 다른 관점이나 경향은 존재할 수 없었고, 설령 제도권 밖의 지식인들이라 해도 당과 정부의 지침을 철저히 따라야만 했다.

개혁 개방이 급속한 경제 성장을 불러오면서, 이런 상황에도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회가 다원화하면서 지식이 유통되는 통로인 학교나 연구소 같은 기구나 출판,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과 같은 미디어에 대한 관리, 감독에 여지가 생기게 되었고 그 틈을 타고 지식의 생산이 새롭게 구조화하기 시작했다. 세기의 전환과 더불어 지식 생산의 새로운 구조를 보여주기 시작한 데는 전통적인 제도와 기구로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는 대학이나, <독서(讀書)> 등과 같은 잡지의 역할이 컸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흥 미디어가 새로운 지식 생산의 주요한 진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단편적인 정보와 오락적 기능만을 담당하던 텔레비전이 이를 선도했다. 중국 국영 중앙방송10(CCTV10)이 2001년 "중국의 훌륭한 전통문화를 보급하자"는 취지로 기획한 '백가강단(百家講壇)'이라는 프로그램은 이중톈이나 위단(于丹) 등과 같은 수많은 스타 지식인을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 위추위도 여러 차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텔레비전은 중국 지식인들이 고루한 학문의 틀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대중과 접촉할 수 있는 유통의 경로를 제공함으로써 '지식의 대중화'와 '대중의 지식화'라는 목표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텔레비전 못지않게 인터넷 역시 큰 구실을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공방은 공식적인 당사자들의 해명을 제외하고는 주로 인터넷 블로그에서 진행되어 왔다. 인터넷 블로그는 중국 사회에서도 다양한 아젠다를 창출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공격을 가하는 쪽은 주로 인터넷 블로그를 이용하는데 반해, 방어를 하는 쪽은 공식 인터뷰강연의 기회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오프라인에서 여론의 반전을 꾀하는 수비자들이 온라인의 개방성과 신속성을 따라잡지 못하는 형국인 듯, 인터넷 여론은 위추위에게서 곱지 않은 시선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중국 내 지식 생산의 구조가 큰 변화를 맞이하면서 동시에 지식인의 사회적 위상도 급격하게 상승했고, 단지 '지식의 생산'만으로도 큰 경제적 수입을 가져올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위추위는 중국의 전업 작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인세 수입을 자랑한다. 그의 인세가 연 평균 140만 위안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지식인 역시 '바오파후(爆發戶: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인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그들의 부(富)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위추위는 지식인의 계층 이동이라는 댓가를 지불함으로써 '부의 사회적 환원'을 통해 자신의 문화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의혹을 제기한 측이 진실인지, 아니면 위추위의 기부가 진실인지는 여전히 분명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당사자들이 구성하는 '기부'의 라인이 그리 복잡하지 않은 데 비추어 위추위의 해명은 여전히 중국의 '인민'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유례없는 대재앙으로 기록됐던 쓰촨 대지진의 현장에서 중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은 그의 선행이 도덕적 조건을 갖췄느냐의 여부에 따라 스타 지식인은 다시 추락을 거듭할 수도 있다. 분명한 점은 중국 사회의 '개방'은 현재진행형이고 그에 따라 사회적 개방성 또한 시간이 갈수록 투명도를 더해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가 '대사'라는 칭호를 계속 보유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오늘날 중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추어 계층 이동의 꿈을 꾸고 있지만, 거기에서 대중성이 충분조건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지식인, 사회적 책임, 기부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번 소동을 곱씹어 보면, 우리 사회의 경험이 역시 증언하는 바와 같이, 오히려 강력한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할 때 참된 '계층 이동'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셴린의 죽음을 전 국민이 애도하며 그를 '국학대사'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점이 지금 그의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중국대중문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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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글 하나 퍼왔다.  

프레시안의 연재 기사  

 中國探究]<69>중국을 이해하는 21세기 최고의 키워드

 꿰이저(潛規則), 중국사회의 '숨겨진 규칙' 

 

 

 

 

 

올해 2월, 우쓰(吳思)가 쓴『첸궤이저(潛規則):중국 역사의 진실게임(수정판)』이 푸단(復旦)대학 출판부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은 이미 2001년 출판되어 중국 지식계를 뜨겁게 했었다. 특히 그 내용의 파격성 때문에 이듬해인 2002년 8월 중앙정부로부터 금서로 지정되어 출간을 금지당하기도 했었다.

우쓰는 중국에서 '첸꿰이저'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학자다. 그가 주장한 이 개념이 보편적으로 중국에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겨우 10여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중국을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쓰는 1957년 베이징출신으로 현재는 전직 관료출신 가운데 개혁성향의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출판하고 있는 잡지,『옌후앙춘추(炎黃春秋)』의 편집장으로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우쓰는 중국 사회의 만연한 '부패'의 원인문제에 대해 역사 속에서 그 규칙을 찾아낸 인물이다.

'첸꿰이저(hidden rules)'란 사회 각계각층에서 보이지 않고 명문화된 규정이 없지만 사람들로부터는 오히려 광범하게 인정받으면서 실제적인 역할을 하고 반드시 '준수' 해야 할 '숨겨진 규칙'을 의미한다. 우쓰는 유구한 중국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로서 '숨겨진 규칙(첸꿰이저:潛規則)'의 개념을 설명함으로써 독자들로부터 크게 호응을 받았다. 기존의 중국사회에서 이미 존재했던 각 분야에서의 '숨겨진 규칙'을 새삼 발견하였기에 독자들은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이 개념은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21세기 최고의 키워드'가 되었고, 우쓰에게 '첸궤이저 개념의 아버지'라는 칭호까지 부여하며 열광하게 되었다. 한국어 번역본(도희진역, 잠재규칙:5천년 중국, 숨겨진 부패의 역사, 황매, 2005)』)도 출판되었다. 필자는 한국어 번역자가 사용한 '잠재규칙'보다는 보통명사로서 '숨겨진 규칙'이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숨겨진 규칙'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중국 사회 각 분야에서의 이른바 '숨겨진 규칙'이란 무엇인가?

우쓰는 "우리의 공식적인 '규칙' 뒤편에는 숨겨진 또 다른 규칙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람들이 지켜야할 행동준칙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 준칙과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몇몇 역사 인물과 역사적 사건의 관찰을 통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들 집단의 행위를 지배하는 것이 실제로 그들이 겉으로 늘 이야기하고 존중하는 그런 원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 역사에서 말하는 인의도덕, 충군애민, 청렴결백 등 멋진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이들 집단의 행위를 진정으로 지배하는 행동규칙은 매우 현실적인 이해관계다. 인간의 행위는 이해관계의 계산에 따라 선택하기 때문에 그 결과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숨겨진 규칙'이다."

결국 우리 인간은 이해관계 때문에 옳고 정당함보다는 옳지 않아도 '이익'에 초점을 맞추어 행동하고, 그 결과 사회적인 '악행'도 하나의 규칙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숨겨진 규칙'이 중국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결국 불법적이고 범죄적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깨닳지 못하고 있다. 마치 "빨간불이라도 손잡고 건너면 무섭지 않다"라는 중국의 속담을 체현하는 것과 같다.

중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숨겨진 규칙' 현상을 자세하게 살펴보자.

첫째, 연예계의 '숨겨진 규칙'이다. 중국에서 '숨겨진 규칙'의 대표적인 분야로 연예계를 꼽을 수 있다. 이유는 '수요와 공급'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이른바 연예계의 '첸궤이저'는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터넷에서는 "연예계의 '숨겨진 규칙' 여성"이라는 타이틀로 끊임없이 보도되고, 여러 배우들의 실명과 사진이 인터넷에 등장하고 있다. 이를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다. 2007년 7월 4일, 장위(張鈺)라는 여배우가 중공기율검사위원회에 13명의 영화감독과 '성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고소한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다. 또한 금년 5월 8일자 <신조우칸(新周刊)>의 이궈칭(李國慶)이라는 저자가 "연예계의 '첸궤이저'의 폭로"라는 글에서 이에 관한 배우의 실명과 구체적인 유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연예계에서는 명성을 얻기 위해 연기 이외의 것을 요구하고, 따라서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식품업계의 '숨겨진 규칙'이다. <난팡왕(南方網)>의 보도에 따르면 금년 2월 18일 광저우에서 식중독 사건으로 70여명이 중독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원인을 보면 '주수육(注水肉:육류에 물을 주사하는 행위) 때문이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정협위원이자 중국육류식품연구센터의 주임 펑핑(馮平)은 "'육류에 물을 주사하는 행위'는 이미 보편적인 '숨겨진 규칙'이다"라고 폭로하였다. 주수육은 물에 공업색소와 방부제 등을 첨가해서 주사기로 주사해서 만든다. 이렇게 제조된 제품은 쉽게 부패되고, 세균으로 인해 사람들이 쉽게 병이 생길 수 있고, 육류의 영양분을 파괴함으로써 동물성 전염병을 전파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이미 보편적이고 이들 업종에서 '숨겨진 규칙'의 하나이다.

이들의 행위는 당연히 '이익'을 위해서이다. 쇠고기 분야는 더욱 심각하여 '물을 주사하지 않은 쇠고기는 거의 없을' 정도다. 이렇듯 조금 더 돈을 벌기 위해 '숨겨진 규칙'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중국축목축의학회이사 겸 운남농업대학 동물과기원원장 꺼장롱(葛長榮)의 발언)

금년 1월 12일, <충칭완빠오(重慶晩報)>에 따르면 이를테면 100킬로그램 중량의 돼지의 경우 물을 수십 킬로그램까지 주사하고, 500킬로그램의 소에는 105킬로그램까지 주사하여 무게를 늘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사된 육류는 주사하지 않은 고기보다 약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육류에 물을 주사하는 일은 이 업종의 오랜 기간의 '숨겨진 규칙'이다. <중화인민공화국동물방역법>에는 '주사육'과 관련된 규정이 없고 검역원도 '주사육'을 검역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돼지나 소가 도살장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주사를 하고, 유통시장으로 흘러가면 공상부문에서 감독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제도의 미비와 '이익'을 탐하는 이들 간의 끊임없는 숨박꼭질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셋째, 교육계도 예외가 아니다. 금년 8월 15일 <신징빠오(新京報)>의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의 중앙음악학원 70세인 박사지도교수가 대학원생과 육체관계를 맺고 10만위안을 뇌물을 받았다"고 보도하였다. 이 사건도 대표적인 교육계의 '숨겨진 규칙'이다. 흑룡강성 어느 대학 성인학원에서 300명의 학생들이 합격을 위해 학생마다 50위안씩 모금하여 교수에게 준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중국교육 역사상 최대의 충격사건으로 교육계의 '숨겨진 규칙'의 일단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넷째, 식당업계도 '숨겨진 규칙'이 범람하는 업종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수증을 발급해주지 않거나 가짜 영수증을 주는 등등의 행위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너무 보편적인 일이라 현재 충칭에서는 '숨겨진 규칙'을 없애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충칭소비자위원회>는 판매업, 음식점, 여관, 여행오락, 장식업, 물류업, 미용이용, 학원중개업과 농산품 판매 등에서 '숨겨진 규칙' 교정을 위해 언론매체와 함께 공개적으로 관련 사례를 수집하는 노력을 하고 있을 정도다.

다섯째, 스포츠계에도 '숨겨진 규칙'이 존재하고 있다. 최근 12월 3일자 한국의 <헤럴드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양쯔완바오(揚子晩報)는 '축구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농구계도 심각하게 오염이 됐다'면서 '조만간 축구계에 이어 농구계도 승부조작, 도박 등으로 크게 몸살을 앓을 것'이라는 경고하고 있다. 스포츠계에서 대표적인 '숨겨진 규칙' 사건은 꿍지엔핑(龔建平)사건이다. 2004년 7월 축구심판이었던 꿍지엔핑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는 승부 조작을 뇌물을 받았다가 수뢰죄로 10년형을 받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끝으로 중국 관료사회의 '숨겨진 규칙'으로 매관매직의 경우를 살펴보자. 예를 들면 2004년 8월 건국 이래 최대의 매관매직 사건인 '마더(馬德)사건'은 전형적인 '숨겨진 규칙'이다. 흑룡강성 쑤이화(綏化)시의 시위원회 서기였던 마더가 저지른 매관매직 사건은 전임 국토자원부 부장 텐펑산(田鳳山), 흑룡강성정협주석 한궤이즈(韓桂之) 등 고관과 쑤이화시의 관료 등 모두 265명이 연루된 사건이었다. 그들은 현장 직책은 30만위안, 현서기 자리는 50만위안을 받고 관직을 팔았다. 이는 마치 중국 속담에 '3년 동안 지부(知府)를 하면 10만냥의 설화은(雪花銀)'을 만질 수 있다는 것과 같다고 중국인들은 수근 거렸다. 이것이 바로 관료사회의 '숨겨진 규칙'이다. 이는 정부기관 끼리 부정부패의 내용을 상호 묵인해주는 관례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장기간 이런 상태가 유지되면 규범의식이 부족해지고, 제도의식도 희박하게 되어 준법과 위법의 경계가 모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숨겨진 규칙'이 존재하고 있다. 결국 '숨겨진 규칙'은 공개적이지 않고 투명하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규칙의 내용을 알 수도 없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어 명문으로 규정된 제도보다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따르고 있다. 왜냐하면 만약 '숨겨진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손해라는 의식과 현실적인 '살상력'도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숨겨진 규칙'을 만들고 어떠한 근거에서 이러한 규칙을 만드는 것일까? 이에 대해 우쓰는 "확실한 답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만들어지고 실행되는 것은 모두 '이익'과 '금전'이라는 두 단어와 함께 나타난다."고 밝히고 있다. '숨겨진 규칙'이 만들어지는 것은 누가 이익을 얻을 것인지와 이익을 얻는 집단이 누구인지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결국 '숨겨진 규칙'은 국가의 정당한 법률과 법규에 도전하고, 사회의 공정한 정의를 파괴하고, 공공의 가치기준에 심대한 혼돈을 가하고 있다. 특히 국민의 안전, 알권리, 선택권에 침해를 가하고 공정거래권 등 합법적인 권익과 사회에 위해를 가하는 규칙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결코 한 두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계층적이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이 규칙은 공개되지 않고 광범한 영역에 숨겨진 채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이 일반화된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인희 대진대 중국학과 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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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재구성 시사인 기사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진보, 개혁, 민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해온 이른바 ‘386 세대’ 중에서도 매우 희귀한 존재다. IMF 개혁 이후 ‘신자유주의 반대’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다른 진보적 인사들과 달리, 신자유주의로 불리던 앵글로색슨(미국과 영국) 계열 중도좌파들의 개혁 노선에 오히려 천착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김소장과 사회디자인연구소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해왔으며 최근엔 <노무현 이후>라는 단행본을 출간하기도 했다. 

김대호 소장은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GM 매각 이전의 대우자동차에 근무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001년 대우자동차 파업 당시엔 회사와 노동조합, 은행, 관료, 지식인 그룹 등의 문제점을 모두 날카롭게 드러낸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를 출간하기도 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시사IN이 김소장을 만난 이유는, 김소장의 내면에서 이런 현실 경험과 영미 중도좌파에 대한 지적 천착이 접합되어 어떤 ‘진보적 지평’을 열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나름대로의 치열한 고민 끝에 도달한 분석과 대안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정말 ‘가차 없었다.’ 심지어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노동조합까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이 같은 그의 주장엔 다소 무리한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논리 그 자체로 만만치 않은 개연성과 설득력을 가져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폭넓은 성찰과 토론을 기대한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영국 신노동당의 노선(107호 ‘영국 신노동당 신자유주의 투항인가 진보사상 혁신인가’ 참조)을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화, 지식정보화, 과학기술혁명으로 집약되는 문명사적 변화에 대한 이념적, 제도적, 정책적 응전이며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이라고 정리한다. 한마디로 지구화라는 새로운 조건 속에서 노동당 고유의 진보적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모색이었다는 이야기다.
신노동당 노선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의 설명을 빌어 영국 신노동당의 개혁 노선을 정리하자면, 우선 ‘지구화에 대한 적극적 수용’이다. 지구화로 인해 자본이 이 나라 저 나라로 자유롭게 이동하게 되면서 노동자 입장에서는 고용 안정성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중․선진국에서는 기존의 산업과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 신노동당은 자본의 이동을 차단하기보다 오히려 ‘유연한 노동시장’을 지구적 대세로 받아들이고 “사회민주주의자도 이를 막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할 수 있는 일로 영국 신노동당이 선택한 것이 바로 교육(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다. 자본의 이동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이런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 있는 개인’을 ‘공교육 강화’로 대량 양성하자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누구나 ‘능력 있는 개인’으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소득층 어린이들도 노력만 하면 부유층 어린이들에 못지않게 좋은 학교에 진학해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고소득층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무상교육, 학비지원, 아동발달계좌 등의 정책 패키지가 등장했다. 이는 시장의 역동성과 노동의 유연화를 받아들이는, 신노동당 버전의 ‘평등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호 소장 역시 이런 정책들을 “경쟁의 입구에서 그 출발선을 맞추겠다는 정신”이라고 부르며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그동안 한국 지식인들은 북유럽 사민주의를 전범으로 삼고 영국은 신자유주의로 격하해왔는데, 오히려 한국과 영국이야말로 사회적 베이스가 비슷하다.”

그런데 김대호 소장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영국 신노동당 모델의 역사적 배경과 한국의 현실을 재분석한 것이다. 그리고 영국 신노동당 노선은 한국 상황에서 작동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신노동당 노선은 ‘지구화’와 ‘시장의 확대’(과잉시장)로 인한 사회․경제적 폐해에 대응하기 위해 출현한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 나타나고 있는 각종 사회․경제적 폐해 중 상당수는 ‘시장의 과잉’(영국의 경우)이 아니라 “시장이 지나치게 작아서”(과소시장)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진보는 신기득권층이 되어버렸다” 
예컨대, 한국에서 부동산 소유자와 비소유자 간의 격차를 보라. 전자의 자산 소득은 때로 중산층 연봉의 몇 배를 가볍게 뛰어 넘는다. 이것이 시장 때문인가? 학식과 강의 능력이 비슷해도 전임교수의 소득은 시간강사의 10배에 이르기도 한다. 이것은 시장 때문인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 직원과 하청 직원 역시 전자의 소득이 후자의 두 배를 상회한다. 공공 부문 노동자의 고용 안정도는 민간 부문 노동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김대호 소장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일단 ‘승리’해서 부동산을 가지거나, 공공 부문(공기업, 관청)에 들어가거나, 대기업(=원청기업) 정규직이 되기만 하면 능력과 헌신에 관계없이 높은 임금과 고용 안정성이라는 ‘특혜’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 사회다. 그러나 이 경쟁에서 패배한 자들이나 실업자,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 세대 등은 이런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없다. 패자들은 승자들과의 격차를 도저히 줄일 수 없고, 그래서 양극화는 심화된다. 그러나 이는 시장이나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좋은 직장’의 노동자들과 외부 노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위적인 진입장벽의 탓이 더 크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특혜 구조’이다.

시장 때문에 이런 결과가 벌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국 신노동당식의 대처, 즉 공교육 체계로 ‘능력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고 김소장은 주장한다. 오히려 한국사회의 이 같은 특혜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 ‘능력의 격차’를 줄이면, 예컨대 공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하는 ‘능력 있는 자’들만 늘릴 뿐이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김대호 소장은 진보세력에게 비판의 창을 겨눈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전체 노동자 중 10%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10%는 대체로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 몰려 있다.

“(그동안 한국의 노동운동은) ‘단결하면 힘 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는 정신으로 (자기 기업 노동자만의)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전투적으로 추구해왔고, 그 결과 임금과 고용 안정성을 대폭 높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노동자는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다’는 ‘약자 의식’에 물들어 자신들이 공동체 전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자본의 처지와 동학에 대한 이해도도 낮다. 결과적으로 대기업과 공공 부문의 노동시장엔 높은 진입장벽이 세워졌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70~80%에 이르는 북유럽의 경우, 노동자 계급은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임금도 함께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고용 규모(특히 사회서비스 부문)가 한국보다 훨씬 크다고 김소장은 생각한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공기업은 좋은 직장일지는 몰라도 한국처럼 ‘선망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비정규직이나 청년 실업자, 중소기업 노동자 등은 아무리 노력하고 능력을 갖춰도 양질의 일자리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국내 일부 대기업 생산직의 경우 평균 연령이 40대이고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10년 후엔 50대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이 대변한다는 ‘민중’은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예전의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상층 노동자’라는 것이 김소장의 주장이다.


   
스웨덴 볼보자동차 노동자가 완성차를 수송 트럭에 적재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진보세력의 기본 전략은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총단결해서” 자본의 몫(잉여)을 사회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높이고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며, 부자증세를 통해 재정을 확충해서 후한 복지정책을 실시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김대호 소장은 이런 전략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좋은 일자리(1인당 GDP의 2배 이상과 고용안정을 보장하는)를 창출할 수 있는 대기업과 공공 부문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부문에서는 ‘과잉시장’이 아니라 ‘과소시장’이 문제이며 시장과 경쟁의 활성화로 폐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가 한국을 오른쪽으로 왜곡했다면, 민주화운동은 왼쪽으로 왜곡시켰다. 양극화는 지구화와 시장의 확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업과 노조의 담합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조직 노동자에겐 고용안정 등 기득권 유지가 핵심가치이다. 한편 실업자, 비정규직, 청년 세대 등에겐 제대로 된 경쟁 기회가 오히려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의 폐해만 강조하는) 진보세력은 이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의 병진

그래서 김대호 소장은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의 병진’을 주장한다. 과잉시장 부문엔 좌파적 개혁이 필요하다. 이 부문은 “적절한 규제, 감독, 약자보호 장치 없이 작동하는 폭력적이고 약탈적인 시장” 하에 실업자,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시간강사, 하청 중소기업, 무연고자, 청년 세대, 미래세대가 사는 세계이다. 대안은 “교육, 의료, 복지 등에서 사회 최소한(사회가 책임지는 최소한의 혜택)의 상향, 사회투자정책, 부동산과 일자리 등에서 공공 부문의 적극적 역할, 공공 부문의 고용, 임금 및 가격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개입,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경제-금융-노동 관련 세련된 규제” 등이다.

그러나 시장(경쟁)이 없어서, 폐해가 발생하는 과소시장 부문엔 우파적 대안, 즉 시장과 경쟁을 활성화시키는 개혁이 필요하다. 김대호 소장은 여기에 재벌이나 토건족, 부동산 투기꾼, 검찰 등의 권력기관을 비롯한 전통적인 보수세력 이외에 대기업 노동조합 등 진보세력의 일부까지 포함시킨다. 이에 필요한 개혁으로 그가 제시하는 것은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 엄단, 정․경․관․언․법 유착 차단, 기업지배구조 건전화, 직무 직능급과 고용 및 임금 유연성 도입, 철밥통 연성화. 관료와 이익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규제 철폐 등이다.

진보를 겨누는 세 손가락의 의미

지금까지 김대호 소장의 주장은 진보, 개혁, 민주를 자처하는 인사가 내놓은 것으로는 매우 파격적이다. 그중 일부는 이른바 우파 세력의 주장과 비슷하다고 공격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소장은 영국 신노동당의 기존 노선이 세계적인 금융 탈규제, 자국의 강력한 금융 헤게모니라는 상황에서 가능했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을까. 영국은 제조업에서 많은 일자리가 날아갔지만 ‘금융 종주국’이었기 때문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조건이 사라진 세계금융위기 이후 신노동당 모델이 작동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노동당의 현재 지지율은 바닥을 기고 있다.

또한 김소장의 말 대로 진보세력이 노동시장 유연화를 수용한다 해도 이른바 대기업 및 공공 부문의 ‘상층 노동자’와 비정규직, 실업자 등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을까. 노동 유연화가 오히려 대기업 및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물론 노동자 전체의 처지를 더욱 곤궁하게 만들 가능성은 없을까. 혹시 김대호 소장은 시장을 ‘과잉 신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김대호 소장의 주장이 진보세력에게 조금 충격적인 형태지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자유주의와 시장의 폭력이라는 추상적인 구호가 진보진영에게 ‘악의 실체’로 군림해왔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동안 진보세력은 시장의 충격을 방어하는 데 선수였다. 그러나 앞으로 진보세력은 시장의 폭력을 잘 막는 선수인 동시에 시장을 잘 다루는 선수이어야 한다. 시대와 현실을 통탄하면서 손가락질할 때 집게손가락은 상대를 향하지만 엄지는 하늘을,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신을 향한다. 지금은 정말로 자신을 향하고 있는 세 손가락의 의미를 깊이 새겨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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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의 기획 기사이다.  홍기빈의 글이다.

 "바보야! 자본주의는 똑같지 않아"

20세기 끝 무렵, 여러 선진국의 자본주의가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다양한 자본주의의 변종들’은 최근 10년간 정치경제학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토론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 발견은 ‘새롭지만 낡은’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라마다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벌써 1960년대부터 누누이 지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오래된 발견’이 최근에 다시 떠오르게 된 사정의 배후에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시대적 도전, 이에 대한 서구 온건 좌파들의 고민과 대응이라는 맥락이 깔려 있다. 이러한 사정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려면 ‘자본주의의 다양성’ 논의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원래 다양했다


자본주의가 각 나라에서 다양한 제도적 형태를 띤다는 것은 19세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에 입각한 시장자본주의는 모든 나라의 정치·경제 질서가 엇비슷하거나 엄격하게 획일적으로 통일된 모습이기를 요구했다. 당시의 국제 규범은 모든 국가의 정부가 자국 경제에 개입하지 않는 ‘자유주의적 입헌국가’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었다. 국가의 모든 재정은 의회의 의결을 거쳐야 했고, 이를 교란할 수 있는 ‘군주’의 전횡은 입헌주의에 의거해서 원칙적으로 차단되었다. 또한 각국이 자유무역과 엄격한 국제 금본위제를 수용하면서 보호관세든 재정 및 금융 정책이든 국가가 경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19세기에 한정된 현상이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을 연 미국 레이건 전 대통령(왼쪽)과 영국의 대처 전 총리(오른쪽).
이렇게 획일적인 정치·경제 시스템을 각국에 강요하는 19세기의 지구적 질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나라마다 복잡한 사회적·정치적 변동에 휘말리게 되면서 엄중한 도전에 처한다. 그리고 1930년대 이후에는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이라고 부른 대변동 속에서 무너지게 된다. 이에 따라 각국은 자기 나라의 실정과 사회적·정치적 조건에 맞는 형태의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구성된 브레튼우즈체제의 세계경제 질서는 이러한 일국적 자유를 적극 지지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실제로 1950~1960년대 초, 일본과 유럽 등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노사 관계, 은행 및 금융 체제, 산업 정책과 기업 지배 등은 나라마다 달랐다. 이를 관찰해서 기록한 최초의 학문적 업적은 숀필드의 <현대 자본주의>(1965)일 것이다. 숀필드는 유럽 6개 나라의 사례를 통해 국가가 경제계획이나 기업 통제 등 경제에 개입하는 방식이 보여주는 다양한 양상을 자세히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 찰스 린블럼은 고전적 저서인 <정치와 시장>(1977)에서 나라마다 자본주의 조절 및 운영 방식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과정을 이론화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국제 정치경제학계에서 ‘자본주의의 다양성’은 ‘확립된’ 사실로서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자본주의의 다양성’이 최근 다시 문제가 된 이유를 살펴보자. 그 주요한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도전이다.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가속화된 지구적 자본의 흐름과 이에 발맞춘 최소국가론(외부의 침범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치안·방범·국방 부문 이외의 사회·정치·경제 영역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상), 탈규제, 시장 자유화, 복지국가의 종언 등은 다양한 자본주의가 공존했던 세계경제 질서의 토대를 허물었다.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부인한 신자유주의

무엇보다 금융시장이 국제화되어 자본이 이 나라 저 나라를 마음껏 드나들게 되면서 ‘국가 관리하에 잘 규제되는 금융체제’란 옛이야기로 전락했다.

이렇게 지구화된 금융자본은 모든 나라의 금융이 오직 높은 수익성 하나만을 목표로 흐르게 강제했는데, 이에 따라 노사협의·사회복지·교육 등 제반 사회제도에 걸친 국가적 개입과 조절의 능력 또한 근본적으로 잠식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더해 1970년대 초, 이른바 ‘케인스주의 국가의 종언’이 선언된 이후 ‘시장 지상주의’가 전 세계적 차원에서 맹렬하게 확산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초에 이르면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새로운 합의가 나타난다.

“이제 자본주의의 다양성이란 없다. 가장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경제 제도인 시장의 자유를 극도로 허용하는 ‘우월한 자본주의’와 이를 억누르고 왜곡하는 ‘열등한 자본주의’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후자는 하루빨리 지금까지의 과오를 청산하고 자유시장을 성립시킬 수 있는 대규모의 제도적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를 정부와 국가가 추진하는 것은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각 국가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구화의 물결을 전폭적으로 끌어안도록 개방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이 지구화에 실린 시장의 자연적 힘이 해결해줄 것이다. 요컨대 지구화를 통해서 모든 나라가 ‘하나밖에 없는 최선의 모델(one-best way)’로 수렴하게 될 것이며 또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 ‘하나밖에 없는 최선의 모델’이란 영국이나 미국의 사회경제 시스템을 지칭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역사적으로 국가가 경제 영역에 강력히 개입해왔음에도 이런 과거를 은근슬쩍 지워버렸다. 국제 학계마저 미국이 태초부터 자유시장이 지배해온 교과서적 자본주의 국가였던 것처럼 간주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자본주의의 다양성이라는 주제가 ‘새롭게’ 발견된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배경엔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를 앞세워 마구 밀고 들어오는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 짙게 깔려 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모니터로 시황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뉴욕 펀드 매니저.
제도는 ‘잘라서 붙일’ 수 없다

‘자본주의 다양성’ 논의를 부활시킨 효시는 미셸 알베르의 저작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이다. 알베르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단기 성과에 매몰되어 오히려 사회적·경제적 효율성을 해친다면서 독일 ‘라인강 자본주의’(노동자·자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의 제도적 조절을 운영원리로 삼는 사회민주주의 경향의 경제 시스템)의 장점을 부각시켜 파문을 일으켰다.

이런 선구적 업적에 힘입어 ‘자본주의 다양성’이란 주제는 다시 무수한 학술 논문과 저서의 주제로 떠오르게 된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프랑스판 제도주의라 할 조절이론 학파의 브와이에 등이 있다. 이들은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의 기업지배구조·산업정책·금융시스템·노사관계 등 각각의 영역에서 얼마나 다양한 조절 방식이 여전히 존재하며 또 여전히 생명력과 효율성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데 골몰했다. 유럽 사회경제학자 홀과 소스키스는 <자본주의의 변종들>에서 각 나라의 경제 시스템을 ‘시장에 내맡겨진 경우’와 ‘국가 중심의 조정에 무게를 두는 경우’로 크게 나눈다. 또한 특정한 제도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경제의 다른 제도들과 보완하는 관계이므로, 특정한 제도 하나만을 가지고 효율성을 따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제도든 해당 국가의 전체 사회경제 시스템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후의 논객들은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더욱 공격적으로 개진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기 전의) 일본이나 다른 유럽 국가의 경우를 보면, 경제성장과 효율성 측면에서 ‘국가 중심의 조정에 무게를 두는 경우’가 ‘시장에 내맡겨진 경우’에 못지않으며 오히려 우월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지구화의 물결이 닥쳐온다고 해도 각국 자본주의의 다양성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심화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국의 ‘경쟁력 있는’ 제도에 더욱 의존하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이런 논리들은 경제성장과 ‘효율성 높이기’라는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시장근본주의엔 빠지지 않으려는, 서구의 온건 좌파들에게 중요한 정책적·이념적 영감이 되고 있다. 그리고 마치 미국식 자본주의야말로 금과옥조나 되는 양 폭력적으로 관철되는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더 많이 도입되는 것이 균형을 되찾는 면에서나 실질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점에 있어서나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다양성’ 논의에도 한계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결점은, 다양한 ‘자본주의의 변종’들이 나타나는 구체적인 사회적·역사적 과정에 대한 설명이 극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어떤 모델이 가지고 있는 여러 좋은 제도와 관행을 마치 ‘잘라와서 붙일(cut and paste)’ 수 있는 것과 같은 환상을 심을 수 있다. 특히 스웨덴·네덜란드 등 이른바 ‘좋은 모델’을 찾아 그 제도와 관행을 여과 없이 수입하는 데 급급한 편향이 곳곳에 보이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 점을 잘 음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더욱 급한 것은 아마도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고유한 축적 메커니즘과 그 역사적 발전 경로에 대한 해명이며, ‘자본주의 다양성’ 논의의 수입도 이러한 주체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면 훨씬 더 큰 생산력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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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21) 샹탈 무페 Chantal Mouffe


샹탈 무페는 벨기에 출신의 정치철학자로서 현재 영국의 웨스트민스터대 교수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무페의 관심사는 줄곧 마르크스를 반경제주의적이고 반본질주의적인 관점에서 읽어내는 것이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마르크스주의 계급정치학과 경제주의를 극복할 하나의 대안적 관점으로 보고, <그람시와 마르크스주의>(1979)라는 편역서를 냈다. 이후 동료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함께 저술한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을 통해 해체적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재해석해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논쟁을 촉발했다. 대표적 저작으로 급진적이고 다원주의적인 민주주의 기획을 제안한 <정치적인 것의 귀환>(1993), 민주주의의 역설적 성격이 바로 민주주의 실현의 원동력임을 강조한 <민주주의의 역설>(2000), 정치적인 것이 지닌 적대적 성격의 제거 불가능성을 인정해야만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정치적인 것에 대하여>(2005) 등이 있다.  

 

 

 

 

무페는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만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차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파괴하려 한다고 본다. 그에 대한 저항과 견제는 정치의 영역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게 무페의 통찰이다. 
 

1987년 견고해 보였던 독재체제가 민주화 투쟁과 더불어 후퇴하면서, 우리에게는 불완전하나마 민주화의 시대가 열렸다. 누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더 완벽한 제도의 확립을 요구했고, 누구는 현실 민주주의의 기만성을 이야기했다. 그 와중에 경제적 권력을 소유한 자들은 민주화에 편승해 소리 없이 자신의 기득권을 넓혀나갔고, 독재에 반대해 민주화를 외쳤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현실 자본의 운동에 굴복하여 보수화하거나 자기 한 몸 건사하기에도 급급한 처지가 됐다.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거대한 트라우마를 안겨줬다. 투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에 자본의 자유를 앞세운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평등과 정치적 민주화의 요구에 대해 현실과 동떨어진 시대착오적인 담론으로 낙인찍었던 것이다. “그 모든 가치에 앞서 ‘생존의 요구’를 먼저 충족하라.”

한국인들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라는 이름의 민주화 정부를 경험했고, 불완전했든 기만적이었든 민주화의 시대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양극화는 한층 심각해졌으며,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은 오히려 허약해진 것처럼 보인다. 민주화의 성과 위에서 실용주의를 펼쳐나가길 바랐던 국민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정부는 합의와 다수결, 공정성, 도덕성 등의 가치를 난도질하면서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샹탈 무페의 충고는 의미심장하다. “민주주의의 절차적 형태를 수립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민주적 시민성, 민주적 정서를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 같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은 특히 그렇다.”(2009년 9월 4일, <한겨레>) 여기서 말하는 시민성이 법을 준수하고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오히려 정치적 장에서 갈등과 적대는 불가피하며, 그것들의 표출을 통해서만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있다고 무페는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의 규칙조차 부정하는 극단적 형태의 근본주의나 파시즘이 발흥하거나, 강화·보호되어야 할 법과 제도, 인권은 위협당한다. 그 형식이 촛불집회든 공개청원이든 토론이든 적대적 투쟁이든, 집단들 사이의 갈등과 긴장 관계 속에서 민주주의는 자리잡고 꽃피운다. 이것이 무페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역설이고 급진민주주의 이론의 출발점이다.

이해관계가 상이한 계급·계층, 집단들이 존재하는 사회에 갈등과 적대는 필연적이다.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그들’과 ‘우리’의 관계가 ‘적’과 ‘친구’의 관계로 전환될 때 정치적 적대는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무페는 카를 슈미트의 통찰을 따라 이것을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이라 부르며, 우리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을 구성하는 제거 불가능한 차원으로 본다. 무페는 합리적 합의를 통해 적대를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 진영이 오히려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물들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민주주의는 한편으로는 “법치, 인권의 보장 및 개인적 자유의 존중 등의 가치로 구성되는 자유주의 전통”과 다른 한편으로는 “평등, 통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시, 인민주권 등의 사상으로 구성되는 민주주의 전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페에 따르면 이 두 전통 사이에는 필연적 연관 없이 우연적이고 역사적인 접합만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이념인 자유와 평등은 이렇게 역설적으로 접합되어 구성적인 긴장관계를 형성한다는 얘기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가 투쟁을 통해서만 발전되어온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현실 권력은 항상 이 둘 사이 갈등의 일시적인 안정화의 형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무페는 경제적 합리성의 논리로 정치를 대체하려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사실상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논리와 거의 유사하게, 정치란 정치꾼들이 하는 것이며 거의 사기에 가깝거나 비효율적이며, 그런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시간에 경제를 살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알고 보면 그것 역시 정치적 논리이다. 물론 현실 정치인들의 부정적인 모습 때문에 그런 인식이 증폭된 면도 있지만 말이다.

무페는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주의만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차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파괴하려 한다고 본다. 경제적 기득권층은 더 많은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 이미 장악한 법과 정치의 영역을 더 많이 장악하려 하면서도, 정작 남들에게는 정치논리 배격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저항과 견제는 정치의 영역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게 무페의 통찰이다. 모든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페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관, 이미 주어졌다고 가정된 진리나 보편성 등에 대해서는 비판하지만, 자유와 평등의 이상 추구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이상이 인종적·경제적·성적 문제 등을 둘러싼 서로 다른 민주적 투쟁들의 접합을 통해 실현돼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무페는 기존의 자유주의자나 전통적인 계급투쟁론자와도 다른 급진민주주의자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그 완전한 실현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추구돼야 할 공동선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이성을 가동해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려는 하버마스나 롤스와는 달리 데리다나 라캉, 푸코 등과 더불어 탈근대론자에 속한다. 또 사회의 다원성과 다원주의가 반드시 인정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원성의 추구에는 아무런 한계도 없다고 생각하는 절대적 다원주의나 합법적 차원에만 머무는 다원주의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도덕적 가치와는 다르겠지만, 우리에게는 추구해야 할 정치적 선, 곧 ‘만인을 위한 자유와 평등’이 엄연히 존재하며, 또 이는 합법적 틀 내에서만 추구될 수는 없다는 게 무페의 생각이다.

무페는 사회주의 전통에서 중요시해왔던 경제적 평등의 이상을 민주주의 안에 들여올 것을 제안하고 그것을 민주사회주의라고 부른다. 민주사회주의는 경제결정론이나 단일한 선험적 주체를 거부한다. 이 점에서 기존의 사회민주주의나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며, 사적 소유를 옹호·강화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도 적대적이다.

확대되는 신자유주의의 전선에 맞서 무페는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접합을 우리의 과제로 제시한다. 지난해 가을 세계를 엄습한 경제위기는 경제와 정치는 따로 가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경제 문제 해결조차도 정치 문제임을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위기의 근원을 해결하지 않으면 위기는 언제든 다시 온다는 점이다. 무페는 위기의 해결을 요구할 권리, 해결할 의무는 모든 인류에게 주어져 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발전시켜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는 얘기다. 민주적 제도 및 법의 보존, 불평등 해결과 경제 발전 등 거저 얻어지는 일은 없다. 그러나 침묵을 지킬수록, 개인적 노력에만 머물수록 삶은 더 힘들어진다. 무페가 말하고자 하는 최소치는 바로 여기까지다.

이보경/성신여대 강사



 




 

» 이보경/성신여대 강사
 
이보경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세종대 강사를 지냈다. 앤서니 웨스턴의 <논증의 기술>(2004)과 샹탈 무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2007)을 번역했다. 현재 성신여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데리다의 정치 철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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