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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 그는 실생활을 통한 세상살이 경험보다도 부활절 밤의 경험이 인생에 있어서 더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소위 사회생활의 경험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네. 고통스러울 뿐이지 않나?
- 빵과 관련된 경험은 절실한 것일지는 모르지만 사실은 저열한 거지. 빵을 떠나고, 물을 떠난 고상한 경험을 해보지 않고서야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이 없지. - 모든 신성한 일이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빵과는 무관한 법이야. "
" 먹고 살기 위한 직업에는 성실하게 매달리기가 어렵다는 의미지. 먹고 사는 것이 목적이고 일하는 것이라면, 먹고 살기 쉽게 일하는 방법을 맞추어갈 것이 뻔하지 않겠나? 그러면 무슨 일을 하든 개의치 않고 그저 빵을 얻을 수만 있다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노동의 내용이나 방향 내지는 순서가 다른 것의 간섭을 받게 된다면 그러한 노동은 타락한 노동이라 할 수 있지."
-다이스케의 홀로 벚꽃길을 걷는 부활절의 밤은 상상만으로도 정말 멋졌다.
다이스케의 말이 다 맞는건 아니지만 한 번쯤은 돌이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가 영혼없는 기계처럼 돈을 벌고 있을 때 말이다. 정말 이 돈이 잘 벌리는 방법이라면 다른 것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면 ... 그건 저열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을 찾아 가까운 곳이라도 떠나보는 것이다.
우리는 돈을 통해 더 인간다워졌는지, 인간다움을 잃었는지조차 잊고 살 때가 많다.
이 대목을 읽을 때 문득 생각났던 건, 월요일 아침... 다들 학교가고 출근하는 시간대에 여행가는 기차안에 있던 내 모습이었다.
아침 일찍 피곤해보이는 그들의 모습과 , 그 시간에 여행을 가는 싱숭생숭했던 내 마음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런저런 내 추억 속 아름다운 시간들을 떠올려보다보니
그래 그런 시간들이 의미까지는 아니더라도 .. 내가 그 때 그 시간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면 놓쳤을 느낌들이라고 생각하니 줄줄이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 그는 자신의 육체에 온갖 추하고 더러운 색을 칠하고 난 뒤에 자신의 정신이 얼마나 타락할까 하고 생각하자 오싹 소름이 끼쳤다-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의 불성실과 극도로 영락한 사람의 성실함과는 결과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그는 성실성이든 열의든 간에 어떤 완성된 상태로서 자신의 내면에 간직돼 있는 것이 아니라
돌과 쇠가 부딪치면 불꽃이 튀듯이,
상대에 따라서 마찰이 잘 이루어질 때 당사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내재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신의 교환 작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나쁘면 성실성이나 열의가 생길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늘 느끼면서 살고 있는데 다이스케의 말이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다. 나와 케미? 가 맞는 어떤 것을 찾았을 땐 성실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게으름뱅이들의 자기위안인 뿐일걸까...
"어떤 일이든 성실하게" 가 인간에게 가능한 일일까?
#서구 문명의 압박을 받아서 그 무거운 짐에 눌려 신음하며 격렬한 생존 경쟁의 무대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남을 위해서 울 수 있는 사람을 다이스케는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었다.
#그는 신을 숭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한 매우 이성적이어서 신앙을 가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서로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신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었다. 서로가 의심할 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신은 비로소 존재의 권리를 갖는다고 해석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반대로 인간은 태어나서야 비로소 어떤 목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객관적으로 어떤 목적을 만들어서 그것을 인간에게 부여하는 것은 그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태어날 때 이미 빼앗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따라서 인간의 목적이란 태어난 본인 스스로가 만든 것이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라도 그것을 마음대로 만들 수는 없다. 자기의 존재 목적은 자기 존재의 과정을 통해 이미 천하에 발표한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 나는 왜 태어났을까,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원하든 원치 않았든 무시무시한 확률을 뚫고 고생해가며 태어났는데 ... 도대체 왜? 뭐 이렇게 시시한걸까- 하고.
차라리 이유가 미리 정해져 있는 게 편할 수도 있겠다 싶은 적도 있었지만 그의 말이 맞다.
그러므로 느껴지는 무한한 책임감과 두려움은 어쩔 수 없지만 어떤 것이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정말 매력적이지 않은가.
불의의 사고나 뜻밖의 일들 앞에 인간은 무력할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 팔자란 없다고?ㅋ 생각해보면 마음이 바빠진다.
#그는 행위의 결과로서 부를 열망했던 것일까 아니면 명예나 권세를 열망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활동이라는 의미에서의 행위 그 자체를 원하고 있었던 것일까.
-고전을 읽는 재미는 자연스럽게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하는 중요한 행위들에 내가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 솔직하게 묻고 답해 본 적이 별로 없던가.
세상에 살면서 돈과는 필연적으로 엮일 수밖에 없지만, 행위 그 자체를 원해서 하는 행위 또한 얼마나 하고 사는지.
언젠가부터 부쩍 너무 계산적이어서 나조차도 싫고 피곤해질 때가 많아서인지 쿡쿡 가슴이 찔리는 기분이었다.
#인간은 열성을 가지고 대할 필요가 있는, 고상하고 진지하며 순수한 동기나 행위를 곁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도 훨씬 월등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열등한 동기나 행위에 대해 열성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무분별하고 유치한 두뇌의 소유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열성이 있는 척해서 잘난 체하려 드는 사기꾼에 불과하다.
#몰래 옆방으로 가서 평소에 마시던 위스키를 컵으로 마시고 올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거리낌 없이 평소의 태도로 상대방에게 공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자기의 진심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기운이라는, 일종의 장벽을 쌓아서 그것의 엄호를 받고서야 비로소 대담해진다는 것은 비겁하고 잔혹하며 상대방을 모욕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 취중진담, 이라는 말보다 더 와닿았던 다이스케의 태도.
이건 정말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이 사람의 무서운 진심이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도 확신이 선다면 이럴 수 있을까.
이렇게 확실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내내 결혼을 압박받던 다이스케와 지금의 내 모습이 조금은 비슷해서 동질감 같은 걸 느끼며 읽고 있었는데...
늘 가지고 있던 내 신념과 태도를 바꿀만한 사람이 나에게도 나타날 것인지.
용기를 내야 할 때 제발 비겁하지 말길 스스로 바랐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를 뒷부분에 흐지부지 큰 흥미를 못 느끼며 읽은 기억이 있었는데 이 책은 끝까지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산시로- 그 후- 문 이렇게 세 편을 내리 읽어야 그 재미를 더욱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른 작품들도 틈나는대로 챙겨보고 [마음] 도.. 기대되고 고양이도 다시 읽어봐야 될 것 같고...
누군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고 싶다고 한다면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을 만큼 이 책은 나에게 아주 매력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