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마야 안젤루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마야 안젤루 라는 여자의 유년기 시절을 다룬 자전적 성장소설입니다.
어린시절의 이야기만으로도 책 한권이 나오네요.
너무나 여러가지 직업이 있어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도 힘든 여성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여성의 어린 시절을 소설적 느낌이 가미된 자서전으로 만난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었습니다.
빌 클린턴, 미셸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등 유명 인사들이 그녀의 추모 예배에 참가했고 그녀를 추억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인종차별이 얼마나 어리석인 짓인지 미국인들에게 증명해 보인 위대한 인물이었다고 말했는데요.
이 책을 보니 왜 그녀가 이렇게 다방면에서 많은 활동을 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소녀시절 그녀가 겪었던 일들은 뭐 다른 흑인소녀들도 마찬가지로 겪었겠지만 그녀는 다르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불합리함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죠.
[ 우리는 하녀이며 농부이며 잡역부이며 세탁부일 뿐 그 이상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고 주제넘은 일이었다.
바로 그 때 나는 가브리얼 프로서와 내트 터너가 침대에 누워 잠자는 백인 모두를 죽여버렸더라면,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해방령에 서명하기 전에 암살당했더라면, 해리엇 터브먼이 머리를 맞은 상처 때문에 그대로 죽었더라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산타 마리아 호를 타고 항해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더라면 차라리 좋았으리라 생각했다. ]
졸업식 날, 들뜨고 기쁜 날 마야는 뼈저리게 흑인의 한계를 느끼고 절망합니다.
그저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 아래에서, 백인 뒤치다꺼리나 하다가 죽고 말거라는 그 비참함.
누군가는 그런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지만 마야는 참기 어려워 했습니다.
여러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느껴지는 건, 마야는 장벽 같이 느껴지는 편견과 상황들을 그냥 받아들이기 보다는 분노하고 깨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백인 가정에서 주인이 자신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자 그릇을 깨 부수고 나온다든지
흑인 여성 최초로 전차 차장 일자리를 얻어내는 모습 등은
굴복한다는 것과 극복한다는 것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 같습니다.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마야에겐 참 여러가지 장난을 친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머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그녀를 존중해주고 책을 건네준 플라워즈 부인 덕에 조금씩 극복할 수 있었고
하필 마르고 큰 흑인의 몸으로 태어나서 소녀시절 '정상적인 여성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의혹' 에 시달리다가 덜컥 임신까지 해버리는 등 파란만장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래도 자신의 그런 일들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풀어냈다는 것은 이미 대단한 내공이 쌓였다는 것이고 세상 모든 일을 너그럽고 폭 넓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단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받은 느낌은 천성이 긍정적이고 단순해서 넘어간 게 아니라 끊임없는 의지의 결과인 것 같았습니다.
마야는 중간중간 우울함도 많이 느끼고 삶에서 지루함도 느꼈다는 둥 다소 위태로운 모습도 보였었는데 조금씩 조금씩 극복해나가는 노력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마야는 과연 다시 흑인 여성으로 태어나고 싶을까요?
요즘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
댓글을 보다보니 아마 백인이 걸렸으면 진작 대책이 나왔을텐데 흑인들이 걸린 거라 돈이 안 되서? 이 지경이 된 것일 수도 있다는 비아냥 섞인 글이 있어서
아직도 차별이 남아있는걸까 싶었습니다.
왜 아직도 하버드 대학에 재학 중인 흑인 학생이 차별 사례를 sns 에 올리는지-
겉모습 하나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인양 생각하고 판단하는 유치하고 수준 낮은 행동들이 얼른 없어졌으면 하는데...
그래도 어릴 때부터 이런 편견이 잘못 됐다고 교육 받는다면 미래엔 조금 더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참 세상에 못되고 못된 게 인간이기도 하지만
우린 마야 엔젤루 같은 사람들을 보며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 하다고... 이렇게 용감하게 한 번 살아보자고 느끼는거겠죠.
아, 참 이 책에서 또 좋았던 건 번역을 해주신 김욱동 님이 굉장히 자세히 해설을 덧붙여주셨다는 것인데요. 그녀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