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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이야기들은 같은 말이 반복되는가 싶다가도 묘한 변주가 있어서 다행히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왜 비슷하게 느껴졌나 했더니 그 시기에 자신이 느끼고 생각했던 걸 썼다고 하여, 이 작가는 글을 쓰는 순간 이 주제에 골몰했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글을 통해 자신을 탐구할 줄 아는 사람 같다.
<새 이야기>
모르는 일이 즐거웠다. 모르는 상태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에 대해 더 알고 싶다가도, 계속해서 모르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내가 탐구할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 언제까지나 남아 있었으면 했다. 그런 즐거운 상태가 유지되었으면 했다.
<꿈과 요리>
솔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므로. 특히 자기가 못 가진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므로 말이다. (...) 그래도 쟤가 나보다 낫다, 그래도 쟨 뭘 하잖아. 그런 식으로.
그 생각의 밑바닥이나 가장자리에 끄트머리가 살짝 들려 있는 아주 얇은 껍질을 살살 떼어내 보면 거기에는 부러움이 있었다. (...) 쟤가 보기에 나는 어떨까? (...) 그건 곧 자기 자신의 목소리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아등바등하나?
타인을 볼 때 나를 발견하게 된다. 특히 나의 결핍에 대하여.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의 껍질 아래엔 날 비추는 거울이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그 거울을 마주하기 두려워서 그저 표면에 드러난 감정이 전부라고 믿어버리는 것인지도.
타인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것들이란 대개는 별 것 아니다. 나는 늘 판단이 우선이었고, 마음 속으로 결론을 내린 후 그에게서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상대에 대해 첫 번째로 떠오르는 생각은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떠오르는 생각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첫 번째 생각을 들켰을 때는 늘 수치스러웠다.
<근육의 모양>
바쁜 게 아닐지도 몰라. 힘든 게 아니라... 힘들어도 이제 나랑 얘기할 필요가 없는 거겠지.
마음을 쉽게 놓지 못하는 사람과 언제나 관계를 끊는 쪽이었던 사람이 있다. 관계를 끊었던 흔적들이 근육으로 남게 된다는 말이 은영에게도 유효할까? 직장을 그만두고 필라테스 강사가 되어도, 몸이 그렇게 단단해져도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이상 마음을 붙이게 되고 그 끊어짐을 견뎌야 하는 쪽은 조금은 울 수밖에 없다.
<정체기>
혜인이랑은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았지. 소울메이트가 있다면 그런 관계였다고 생각해. 물론 은주도 좋은 사람이지만, 혜인이와 나누던 대화를 은주와 나누진 못할 거야. 명백해. (...) 다시 돌아간다면 이 선택은 하지 않을 것 같아. 혜인이와 나, 그리고 우리를 축복하던 오랜 친구들, 그 세계를 죽이고 나 홀로 다른 세계로 건너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내가 살해자 내지는 파괴자로 느껴져. 계속 혜인이를 만났더라면 살 수 있었을 그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시시각각 사무쳐. 마음이 맞는 그 느낌은 다시 느낄 수 없겠지. 그 사실이 이렇게 참담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어.
이것은 순간의 솔직한 마음. 선택은 나의 몫이지만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할 수는 없다. 미래의 나에게 이 변화가 필요할거라고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어도 진짜 그 상황이 되었을 땐 생각보다 참담할 수 있다… 사실 애인은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이 부분에서는 이 사실을 알아버린 은주도, 은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도 그 누구도 아닌 이 말을 내뱉는 애인의 심정이 되었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기에 인간이 후회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는 파괴자가 된 듯한 마음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