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이탈로 칼비노 전집 10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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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강하게 흥미를 끈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싶다. 소재가 아닌 소설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끌.린.다. ㅋㅋㅋㅋ 이제 평범한 소설은 지겨워진건가? 나 이제 문학 고인물 다 되가는건가? 그런 거 치고는 많이 읽지도 않았는데. 이 책을 시작으로 실험적인 소설들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 더.. 내놔...


가끔 나는 이미 있는 무엇, 그러니까 이미 누군가 했던 생각들, 이미 이루어진 대화들, 이미 일어난 사건들, 이미 가 본 장소와 환경 같은 것을 써야 할 책의 소재로 생각한다. (...) 책은 쓰이지 않은 세계를 쓴 보완물이 되어야 한다. 책의 소재는 책으로 쓰이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지만, 존재할 때는 바로 그 자체가 가진 불완전성으로 인한 부재의 느낌이 막연하게 전달되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


책은 현실을 반영한 허구. 쓰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존재했더라도 이와 같은 것은 아니었던 것.


이 책에는 소설이라고 치기에는 좀 그런... 음 뭐랄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굉장히 직접적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부분이 있다. 가령 위에 인용한 부분같은 것. 내가 쓰기 전에는 소설의 도입부만 반복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재는 존재하지 않았지!! 그런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조차도 몰랐을거야!! 이제 이 소설은 세상에 태어났고 이제 그 불완전성을 느끼고 있는가 독자들이여?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순전히 뇌피셜.


수많은 소설의 첫 장, 첫 문장은 순수한 상태에 있는데 이런 상태가 보여 주는 소설의 매력은 곧 계속되는 이야기 속에서 사라진다. (...) 그 모두(말이나 글의 첫머리)는 그것이 진행되는 내내, 시작의 잠재력, 아직은 목적 없는 기다림을 영원히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건 작가의 말인지 소설의 일부분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것도 의도된 걸까? 그냥 소설이고 나부랭이고 자기 생각 막 던져넣고 껄껄. 참 재밌어?ㅋㅋㅋ



그래서 소설의 도입부만 계속 이어지는 소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본다면...


책이 처음 시작될 때, 가장 집중력이 좋을 때, 중간에 어떤 연유로든 덮어버리더라도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이상 무조건 읽을 수밖에 없는 도입부의 설렘을 10번씩이나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진귀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도입부가 주는 설렘의 매력(위에서 인용한) 을 계속 느낄 수도 있었지.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이런 비유 좀 그런가? 뭔가... 절정에 다다르지 못하고 계속 그냥 간질거리기만 하는...


좀 돌려서 표현하자면. 연애 초반에 간질거리는 기분 정말 다시 느낄 수 없는 소중한 감정 맞는데 그것만 계속 반복되고 스킨십 진도 안 나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 의지랑은 상관없이, 슬슬 흥미로워지려는 순간에 강제로 중단당하고 계속 새로 출발당하는 혼돈의 소용돌이가 반복... 그래서 사실 이게 좀 힘들었나보다. 한 번에 읽진 못하고 몇 달에 걸쳐 읽었다.


이 책 언젠가 다시 한번 더 읽을 것 같다. 그 땐 좀 덜 혼란스럽기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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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물거품 안전가옥 쇼-트 8
김청귤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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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인 사랑은 내게 잘 와닿지 않는 개념이다. 연인 간의 영원을 약속하는 사랑도,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을 사랑하여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도, 그리고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하는 사랑도… 내가 사는 세상이든 가상의 세상이든 이런 게 존재한다는 걸 믿을 수 없다.


가끔 정말 잘 쓴 소설을 읽을 때면 이런 나라도 설득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사랑을 믿는 사람에게만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내겐 소설 속 모든 사랑들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가 되고 물거품이 되어버릴 때의 시각적 이미지, 그 둘이 닿을 때마다 바다의 짠내가 느껴지는 듯한 아름다운 감각적 표현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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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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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이 성별도, 나이도 아닌 철저히 능력제로 결정되는 가족 너무 재밌다. 무능한 가장들은 자신을 한번 돌아보고 가장의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이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라 이말이다. 옛날부터 그래왔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럽게 가장 자리가 세습되는 건 요즘 시대에 너무 고루하거든!!!


게 가치를 측정하기 힘든 가사노동, 특히 집밥의 가치를 유쾌하게 묘사하고 그에 대한 물질적 대가를 충분히 지급하는 장면을 통해 독자들이 그 가치를 감정적으로도, 정량적으로도 인식할 수 있게 한 부분이 영리하다고 느껴졌다. 작가는 무조건적으로 과거의 가족 형태를 후진 것으로 묘사하지도, 윗세대를 고루한 것으로 묘사하지도 않는다. 그 시대의 한계를 숨기지 않고 보여주지만 조부모 세대가 지닌 가치 또한 서예 에피소드나 메주 만들기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주고, 서툴지만 변화를 받아들이는 복희씨를 통해 변화의 가능성 또한 보여준다.


제가 직접 하기엔 너무 사소한 고민이군요. 그 정도는 웅이님께서 알아서 비교하고 결정하신 뒤 제 카드로 결제하시기 바랍니다. (...) 저는 이제부터 한 시간 동안 낮잠을 잘 것입니다. 인터뷰 십오 분 전에 깨워주시기를 바랍니다.


진심 내 인생에 이런 직원들 있으면 좋겠다… 온갖 잡다한 것들 나 대신 결정해주고 처리해주고. 나는 나를 위한 일만 하고 싶다!! 그러려면 월급을 줄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있어야겠지?ㅋㅋㅋㅋ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집밥을 만드는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고용하여 하며 김치 보너스, 된장 보너스를 지불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노동의 가치에 정당한 대가를!!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 엄마도 늙기 시작하고 언젠가는 돌아가실 것이므로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인생에서 잠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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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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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은 같은 말이 반복되는가 싶다가도 묘한 변주가 있어서 다행히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왜 비슷하게 느껴졌나 했더니 그 시기에 자신이 느끼고 생각했던 걸 썼다고 하여, 이 작가는 글을 쓰는 순간 이 주제에 골몰했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글을 통해 자신을 탐구할 줄 아는 사람 같다.



<새 이야기>


모르는 일이 즐거웠다. 모르는 상태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에 대해 더 알고 싶다가도, 계속해서 모르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내가 탐구할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 언제까지나 남아 있었으면 했다. 그런 즐거운 상태가 유지되었으면 했다.



<꿈과 요리>


솔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므로. 특히 자기가 못 가진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므로 말이다. (...) 그래도 쟤가 나보다 낫다, 그래도 쟨 뭘 하잖아. 그런 식으로.


그 생각의 밑바닥이나 가장자리에 끄트머리가 살짝 들려 있는 아주 얇은 껍질을 살살 떼어내 보면 거기에는 부러움이 있었다. (...) 쟤가 보기에 나는 어떨까? (...) 그건 곧 자기 자신의 목소리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아등바등하나?


타인을 볼 때 나를 발견하게 된다. 특히 나의 결핍에 대하여.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의 껍질 아래엔 날 비추는 거울이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그 거울을 마주하기 두려워서 그저 표면에 드러난 감정이 전부라고 믿어버리는 것인지도.


타인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것들이란 대개는 별 것 아니다. 나는 늘 판단이 우선이었고, 마음 속으로 결론을 내린 후 그에게서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상대에 대해 첫 번째로 떠오르는 생각은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떠오르는 생각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첫 번째 생각을 들켰을 때는 늘 수치스러웠다.



<근육의 모양>


바쁜 게 아닐지도 몰라. 힘든 게 아니라... 힘들어도 이제 나랑 얘기할 필요가 없는 거겠지.


마음을 쉽게 놓지 못하는 사람과 언제나 관계를 끊는 쪽이었던 사람이 있다. 관계를 끊었던 흔적들이 근육으로 남게 된다는 말이 은영에게도 유효할까? 직장을 그만두고 필라테스 강사가 되어도, 몸이 그렇게 단단해져도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이상 마음을 붙이게 되고 그 끊어짐을 견뎌야 하는 쪽은 조금은 울 수밖에 없다.



<정체기>


혜인이랑은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았지. 소울메이트가 있다면 그런 관계였다고 생각해. 물론 은주도 좋은 사람이지만, 혜인이와 나누던 대화를 은주와 나누진 못할 거야. 명백해. (...) 다시 돌아간다면 이 선택은 하지 않을 것 같아. 혜인이와 나, 그리고 우리를 축복하던 오랜 친구들, 그 세계를 죽이고 나 홀로 다른 세계로 건너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내가 살해자 내지는 파괴자로 느껴져. 계속 혜인이를 만났더라면 살 수 있었을 그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시시각각 사무쳐. 마음이 맞는 그 느낌은 다시 느낄 수 없겠지. 그 사실이 이렇게 참담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어.


이것은 순간의 솔직한 마음. 선택은 나의 몫이지만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할 수는 없다. 미래의 나에게 이 변화가 필요할거라고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어도 진짜 그 상황이 되었을 땐 생각보다 참담할 수 있다… 사실 애인은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이 부분에서는 이 사실을 알아버린 은주도, 은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도 그 누구도 아닌 이 말을 내뱉는 애인의 심정이 되었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기에 인간이 후회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는 파괴자가 된 듯한 마음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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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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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자리에서 그저 할 일을 매일같이,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 쓴 글에는 항상 울림이 있다. 이 책 또한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저자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책이다!! 나는 사실 저자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도. 이 분은 박사, 교수,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이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요즘 언어로는 인플루언서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겠다. 즉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계의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느낄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책을 읽는 내내 다양한 주제 속에서 그가 하루하루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다양한 일들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간다는 게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예술적인 문장, 영감으로 가득찬 산문은 물론 멋지고 아름답고 가치있지만 읽고 나서 저자와 나 사이의 거리를 인지하게 되는 반면... 이 책은 그와는 반대로 읽으면 읽을수록 거리가 좁혀지는 기분이 들어 읽는 내내 즐거웠다.


물론 연구자로서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맞벌이 워킹맘으로서, 개인으로서의 고민과 역할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러니 연구실에 홀로 남아 연구에 집중하는 밤은 정말이지 근사하다. 누군가로부터 전화도 걸려오지 않고, 누군가 찾아오지도 않으며,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일을 잊어도 되는 밤. 한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한 가지 주제에 오롯이 집중해 화장실 가는 것도 잊는 그런 밤.



연구하는 직업 뿐 아니라 그 어떤 직업이라도, 이렇게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혼자 남아 일에 몰두하는 순간을 근사하다고 느끼는 것이 근사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 개인적인 친분을 쌓을 수 없다면, 그 사람이 남긴 글의 형태로라도.


어떤 일이든 힘든 면이 있지만(이 글의 연구실에서 밤을 새야 하는 상황처럼) 그것을 근사하다고 여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천문학자가 <코스모스>를 완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뭐 상관 없는 거 아닌가? (...) 그러니 이제 막 첫번째 조각을 집어들었는데 누가 와서 여러 조각을 촤라락 맞춰주고 가면 내심 화가 나는 법이다. 나는 이 책을 두고두고 조금씩 읽을 것이다.



이런 진솔함이 좋다. 남의 감동이 나의 감동이 되지 않는다는 부분이 흥미롭다. 저명한 우주학자의 글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저작에 감동하고, 심지어 같은 우주를 연구하고 있는데도! 조언도 감동도 내가 필요한 순간에 내가 구할 일이다. 그 어떤 것도 마찬가지.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등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자연과학 전공자로서 그저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문장이다. 때때로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인류라고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바뀔지 생각해보곤 한다. 아마 많은 결정들이 폐기되고, 수정되겠지. 절대 할 수 없는 행동들이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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