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재료를 살 때 극한의 효율충이 된다. 가격을 가장 우선시하고, 그 외 먹고싶은 정도, 맛, 영양성분, 만족감 등 요소들의 오각형을 최대한 크게 채울 수 있는 것으로 고른다. 그래서 늘 사는 게 비슷비슷한데, 난 음식에 쉽게 질리지 않는 편이고 내가 해 먹으면 다 맛있기 때문에 전혀 불만이 없다.


하지만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용과!


한국도 그렇지만 호주도 용과가 비싸다. 하나에 대충 6-7달러 하는데

- 한국 돈으로 5-6천원 정도이며 이 돈으로는

- 오렌지 3.4kg

연어스테이크 한 덩어리

- 닭다리 1.5kg을 살 수 있다.


과일 한 알을 5천원 주고 사먹기ㅋㅋㅋㅋㅋ 라는 엄청난 사치를 하는데

또 이 용과가... 정말 드라마틱하게 5천원어치의 맛이냐? 오렌지 3.4키로보다 맛있느냐? 하면 또 아니다! 먹어봤다면 알겠지만 용과는 아주 밍밍한 과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용과를 사먹는 이유는

먹는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감각이 즐거운 유일한 과일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색채, 반으로 한 번에 부드럽게 썰리는 감각, 촉촉하고 매끈한 단면,

숟가락으로 떴을 때 너무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게 파고드는 느낌,

씹히는 감촉, 강하지 않아서 느리게 음미할 수 있는 맛

이 모든 과정이특별한 과일인 것이다!!


귤 오렌지 까먹는 거, 수박 써는 거, 사과 배 등등 먹기 전에 씻기,

심지어 내가 환장하게 좋아하는 망고도 먹고 나서 즙 뚝뚝 떨어진 거 닦아내는 거 다 노동이라고밖에 생각이 안드는데


용과는 이 모든 과정이 우아하고, 지저분하지 않고, 즐겁다.

먹는 데 전혀 노동이 필요없다.



그리고 tmi지만 본인은 강경 밍밍파로서

굳이 빵을 먹는다면 바게트, 치아바타 등 온갖 밍숭밍숭한 빵만 사먹으며

굳이 국물을 먹는다면 지리탕, 훠궈도 백탕

굳이 치킨을 먹는다면 굽네 오리지널만 겨우 먹을 수 있는(튀기고 양념 맛 센 치킨거의 못 먹음)

그런 입맛의 소유자로...

용과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것이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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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또 1등돼도 이렇게 살고싶다.

평일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한다.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대화가 통화는 사람들과 새롭고 흥미로운 사람들을 반반 정도의 비율로 만난다.

시끄러운 장소와 조용한 장소를 역시 반반 정도의 비율로 돌아다닌다.

주말에는 빨래와 집 청소를 하며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갈 수도 있구나 하며 놀란다.

음악은 스피커로 듣는다.

해를 쬐며 산책한다.

레몬차를 마신다.

내가 흥미롭다고 이야기한 책을 바로 사서 읽고 역시 흥미로워하는 친구와 책 얘기를 한다.

만족감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하하하.


#2

취향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이지 지루하다. 다수의 취향을 따라가는 그들의 일상은 내게는 너무 따분해서 전혀 흥미가 없다. 그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가는 상관없다. 매일이 똑같더라도 자신만의 세계가 명확한 사람들이 좋다. 그래서 모두가 유행하는 영화를 보고 유행하는 맛집을 가고 늘 똑같이 잔을 부딪히는 부메랑을 찍어 올리는 인스타그램은 내게 전혀 흥미가 없는 것이다.


#3

- 행복은 그저 순간일 뿐

- 행복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

- 살아야 하는 이유 같은 건 없다

- 인간관계도, 상황도 오고 가는 것이 당연하므로 허무함은 인생의 본질이다

- 따라서 허무함을 억지로 없애려는 행동(예를 들어 영원히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해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결혼 같은 것)을 하거나 허무함에 우울해할 필요가 없다. 그냥 인생이 그렇다는 걸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 빙수에 따뜻한 롱 블랙을 곁들이면 극락이다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이 사실들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확실히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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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먹는 행위에서 해방되고싶다.


먹는 거에 관심 없다고 하면 대부분 날 이상한 사람 취급하겠지.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먹는 게 인생에 있어서 상당히 큰 낙이더라고. 그래서 나도 사람 만날땐 평범한 척 한다. 그래야 분위기 안 망치고 얘기가 진행되니까.


하지만 먹는다는 것은 요리, 장보기, 메뉴선택, 유통기한 관리, 균형잡힌 영양섭취, 비윤리적인 식재료 소비로 인한 죄책감, 쓰레기 생산, 설거지 등 온갖 동원되는 노동이 너무  많고 시간낭비다.


먹는거에 집착하는 사람들 보는 것도 항상 싫다. 필요 이상으로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과식히기, (방송에서) 과하게 맛있어하는 리액션, 없던 식욕 자극하는 미디어, 아무거나 먹어보지 굳이굳이 한식만 찾기, 그럴 가치 없는 식당에서 한 시간 이상 웨이팅하기, 달고 맵고 짜고 자극적으로 만든 가공식품들 먹기, 동물착취, 비건인들 비꼬는 새끼들 등등. 먹는 게 인간들 사이에서 너무너무너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거 자체가 내 인생을 짜증나게 한다. 알약으로 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면 세상 맛있는거 다 포기하고 먹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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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이탈로 칼비노 전집 10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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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강하게 흥미를 끈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싶다. 소재가 아닌 소설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끌.린.다. ㅋㅋㅋㅋ 이제 평범한 소설은 지겨워진건가? 나 이제 문학 고인물 다 되가는건가? 그런 거 치고는 많이 읽지도 않았는데. 이 책을 시작으로 실험적인 소설들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 더.. 내놔...


가끔 나는 이미 있는 무엇, 그러니까 이미 누군가 했던 생각들, 이미 이루어진 대화들, 이미 일어난 사건들, 이미 가 본 장소와 환경 같은 것을 써야 할 책의 소재로 생각한다. (...) 책은 쓰이지 않은 세계를 쓴 보완물이 되어야 한다. 책의 소재는 책으로 쓰이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지만, 존재할 때는 바로 그 자체가 가진 불완전성으로 인한 부재의 느낌이 막연하게 전달되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


책은 현실을 반영한 허구. 쓰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존재했더라도 이와 같은 것은 아니었던 것.


이 책에는 소설이라고 치기에는 좀 그런... 음 뭐랄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굉장히 직접적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부분이 있다. 가령 위에 인용한 부분같은 것. 내가 쓰기 전에는 소설의 도입부만 반복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재는 존재하지 않았지!! 그런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조차도 몰랐을거야!! 이제 이 소설은 세상에 태어났고 이제 그 불완전성을 느끼고 있는가 독자들이여?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순전히 뇌피셜.


수많은 소설의 첫 장, 첫 문장은 순수한 상태에 있는데 이런 상태가 보여 주는 소설의 매력은 곧 계속되는 이야기 속에서 사라진다. (...) 그 모두(말이나 글의 첫머리)는 그것이 진행되는 내내, 시작의 잠재력, 아직은 목적 없는 기다림을 영원히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건 작가의 말인지 소설의 일부분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것도 의도된 걸까? 그냥 소설이고 나부랭이고 자기 생각 막 던져넣고 껄껄. 참 재밌어?ㅋㅋㅋ



그래서 소설의 도입부만 계속 이어지는 소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본다면...


책이 처음 시작될 때, 가장 집중력이 좋을 때, 중간에 어떤 연유로든 덮어버리더라도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이상 무조건 읽을 수밖에 없는 도입부의 설렘을 10번씩이나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진귀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도입부가 주는 설렘의 매력(위에서 인용한) 을 계속 느낄 수도 있었지.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이런 비유 좀 그런가? 뭔가... 절정에 다다르지 못하고 계속 그냥 간질거리기만 하는...


좀 돌려서 표현하자면. 연애 초반에 간질거리는 기분 정말 다시 느낄 수 없는 소중한 감정 맞는데 그것만 계속 반복되고 스킨십 진도 안 나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 의지랑은 상관없이, 슬슬 흥미로워지려는 순간에 강제로 중단당하고 계속 새로 출발당하는 혼돈의 소용돌이가 반복... 그래서 사실 이게 좀 힘들었나보다. 한 번에 읽진 못하고 몇 달에 걸쳐 읽었다.


이 책 언젠가 다시 한번 더 읽을 것 같다. 그 땐 좀 덜 혼란스럽기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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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물거품 안전가옥 쇼-트 8
김청귤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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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인 사랑은 내게 잘 와닿지 않는 개념이다. 연인 간의 영원을 약속하는 사랑도,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을 사랑하여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도, 그리고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하는 사랑도… 내가 사는 세상이든 가상의 세상이든 이런 게 존재한다는 걸 믿을 수 없다.


가끔 정말 잘 쓴 소설을 읽을 때면 이런 나라도 설득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사랑을 믿는 사람에게만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내겐 소설 속 모든 사랑들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가 되고 물거품이 되어버릴 때의 시각적 이미지, 그 둘이 닿을 때마다 바다의 짠내가 느껴지는 듯한 아름다운 감각적 표현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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