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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평점 :
저는 의식을 가진 존재, 특히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존재들,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바다의 물고기든 하늘의 새든, 그리고 저를 포함한 모든 휴머노이드들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달마가 있고, 그 반대에는 선이 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의식이 있는 존재들이 이 우주에 태어날 수밖에 없고,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고통을 피할 수 없어요. 의식과 충분한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이 세상에 넘쳐나는 불필요한 고통들을 줄일 의무가 있어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난 이 말이 가장 와닿는다. 살면서 행복한 순간들이 있다고 해서 그게 생명이 태어나야 하는 이유가 될 순 없다. 그런데 나는 이미 태어나버렸으니 어쩌지? 태어났으니 어떻게든 살고 있긴 한데 짧은 생이나마 살아 본 결과 삶에서 행복이란 어쩌다 한 번씩 벌어지는 이벤트일 뿐, 꼭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지속적인 상태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순간이다. 오히려 지속적인 것은 고통이다. 삶과 고통은 분리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과거, 현재, 미래의 내 존재를 지울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당장 누르고 싶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미래에 큰 기대가 없다. 그럼에도 수명이 다할 때까지 나는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생명을 부여잡고 살아내야 하다니... 왜?
인간에게는 인권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게 있어서 그냥 죽어지지가 않아.
삶을 선물이라고, 단 한번만 주어지는 축복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겠지? 나도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이번 생엔 불가능할 것 같지만 제발 인도적으로 죽을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럼에도 꾸역꾸역 사는 이유는 1. 남은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기기 싫다는 마음 2.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죽는 방법들이 다들 끔찍해서.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다만 자기의 기력이 쇠잔해짐을 느끼고 그것에 조금씩 적응해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잠이 들듯 삶과 죽음의 경제를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종과는 달리 인간만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에, 죽음 이후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아마 이런 두려움이 사후세계와 종교를 만들어냈겠지? 이런 거 보면 인간은 강한 것 같으면서도 그 어떤 생명체보다 나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