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죽을 권리가 있습니다 -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한 수업의 기록
나가오 가즈히로 지음, 김소연 옮김 / 심포지아 / 2017년 11월
평점 :
어릴 적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시던 할머니가 계곡에서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치시고 치매에 걸린 후 돌아가시기까지 무려 5년을 당신은 물론 대소변을 받아내시던 어머님의 고초는 40년전의 일인데도 눈에 선하다.
평소 고혈압이 있으시던 어머님은 십오년전 뇌졸중이 오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셨고 오랜 고통 속에서 신음하시다 돌아가셨다. 결혼 후 장모님의 급성 백혈병은 처는 물론 처형, 처남 등 처가 식구 모두에게 그야말로 기나 긴 고통을 안겨줬다. 투병 과정에서 보여준 장모님의 모습은 자식들로 하여금 굳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가망없는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은 물론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시는 장모님께 못할 짓을 한다는 자책감을 들게 했다.
지금 장인어른이 장모님의 뒤를 밟고 있다. 뇌사상태로 말이다. 뇌사에 빠지시기 전에 숱한 고통속에서 신음하시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왜 우리는 죽음의 순간을 앞두고 오랜 고통과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까? 태어날 때가 우리 의지가 아니라면 적어도 세상을 떠날 때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최소한의 모습을 남기고 가야하지 않을까? 고통과 좌절속에서 간병하는 가족마저 힘들게 하는 그 투병의 과정이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그런 물음 속에 있던 중 최근 접하게 된 책은 바로 <나는 죽을 권리가 있습니다>이다.
이 책은 '사람이 죽을때 왜 저렇게 괴로워해야하나?'라는 생각을 한 전문의인 저자의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의료 현장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갖게 된 의문은 의미 없는 연명 치료가 환자의 고통을 늘릴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기 환자들이 병원이 아닌 자택에서 존엄하고 의미 있게 마지막 시기를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재택의료라는 분야를 선택했다고 한다.
저자는 병원의사들이 생명의 고귀함을 통해 생명을 구하는데 집중한 것이 바로 연명치료로 인한 고통속의 환자들을 양산한다고 지적한다. 치료를 통해 전혀 증상이 나아지지 않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들에게 오히려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게 만드는 것이 뭐가 좋을까?라는 의문을 들게 하는 것이다.
안락사는 가망 없는 환자에게 본인의 의지로 결정해서 주사나 약을 투여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나 의료 기술로 회복이 불가능할 때 치료를 중단하고 고통을 줄이는 처방만 받으면서 죽을 때를 자연에 맡기는 존엄사는 환자의 인격과 삶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작된다고 한다. 너무나 서글프고 안타까울 수 있지만 난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영원히 살 것 같았던 현생에서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고통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후손들의 기억에 남기 위해서라도 이 책은 소중한 경험이 되어 줄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