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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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남자는 다 큰 아이라는 표현이 맞는다고 느낄 때가 있다. 누구보다 사회적인 존재가 되도록 강요(?)받고 있고 조직 속에서 생존을 위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정치적 존재들인 남자들한테 여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들임에는 사실일 것이다. 육체적으로 다 자랐다고 해도 불편하거나 부담스런 상황 하에서는 철저하게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일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우는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인정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아주 긴 변명>의 주인공 사치오도 그런 면이 강하다. 아내 없이는 지금의 위치(인기작가)에 오르지 못했을 거 같은데 말이다. 너무나도 당연히 아내의 보살핌과 희생을 요구하는 사치오는 정도 차이일 뿐 지금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유부남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 사치오에게 어느 날 큰 사건이 생긴다. 아내가 친구와 떠난 여행에서 사고로 두 여자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죽은 아내의 친구 남편과 아이들이 사치오의 공간에 함께 하는 일이 생긴다.

 

저자인 니시카와 미와는 항상 자신의 책을 영화화하는 작가 겸 감독으로 유명하단다. 소설가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유명감독 고레에다 히레카즈 감독 밑에서 사사하면서 영화감독까지 입봉하게 된 저자는 이 소설을 쓰게 된 게 후쿠시마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뜻하지 않은 이별을 경험하게 된 일본인들의 마음을 그리기 위해 이별 이후에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그려내게 되었다고 한다.

 

외도를 할 정도로 아내에 대해 눈꼽만큼의 애정도 없기에 장례식에서도 어떻게 슬픔을 보여야 할지 어색해 하던 사치오에게 아내와의 이별은 오히려 예상치 못한 내면의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나츠코의 죽음은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져 있고 자신감이 없었던 사치오의 치부를 알던 이가 사라짐으로서 안도했을 것일텐데 말이다. 하지만 사치오는 죽은 나츠코의 친구 남편과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주 긴 변명을 하기 시작한다. 상실은 상실했음을 깨달았을 때 이미 늦은 것이다. 사랑한다는 감정도 표현도 모두 때가 있음을 사치오는 아내의 죽음을 통한 이별로 얻게 된 것이다. 마초적 모습을 강요당하지 않더라도 남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면 안된다거나 내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익숙해 지는 것이 우리나라와 일본 등 유교문화권의 특성이 아닐까? 아내의 죽음과 자신의 내적 성장을 맞바꾼 이 상황은 슬프고 안타깝지만 아주 긴 변명이 필요할 것이다. 사치오는, 아니 남자들은 후회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 더 어울린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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