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감정
원재훈 지음 / 박하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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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스러움이 별거 있을까? 비단 나이를 먹어간다는 생물학적 노화에 따른 중심부로부터 배제 뿐만 아니라 감성적 메마름으로 부터 시작되는 냉소적이고 계산적인 감정의 변화가 마치 쩍 벌어진 거북등 마냥 무언가 감정의 풍요를 느낄 여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체념하게 된다. 누구나 다 겪는 과정이라고. 사랑이라는 감성을 붙들기에는 세상이 너무 각박하고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 치열하기 때문에 아직 미래가 더 많은 젊은이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어느새 달라진 내 모습에 사랑은 더욱 언감생심일 것이다. 하얗게 내린 서릿발 같은 머리에 오랜 술, 담배로 인해 갈라지는 목소리, 늘어진 피부를 보며 점차 그 뒤에 내 순수했던 젊음과 사랑은 아득해져 갈 것이다. 그렇게 중년은 사랑이라는 연애감정과 매일 작별해 가고 있다.

 

솔직히 중년의 연애감정은 불륜이나 말초적 자극에 집착하는 변태적 성애로 비춰지는 것이 여전하다. 이미 누릴만큼 누렸는데 그 나이에 뭘 또 사랑을 갈구하냐고. 그러기에 사랑이 아니라 그건 욕망이자 더 나아가 쾌락에 다름없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이성을 바라보거나 우연히 옛 인연을 조우했을때 느끼는 두근 거림은 여전히 연애감정이 켜켜이 쌓인 먼지 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애감정>은 서문이라는 주인공이 아내를 잃은 후 하루를 버텨내기에 급급한 그에게 어느 날 황보나영이라는 후배 여자에게서 연락이 오면서 접어 두었던 80년대의 여자들을 떠올리며 연애감정을 되새겨 보는 소설이다. 서슬퍼런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던 대학생들에게 캠퍼스의 낭만과 이성과의 순수한 사랑은 기대해서는 안 될 사치였을 것이다. 경제적 여유마저 없던 시절, 시골 촌뜨기 부모들은 소를 팔고 논마지기를 내놓아 등록금을 마련하여 당시 청춘들에게 올인하였기에 더욱 사랑은 한가로운 소리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타까운 분위기 하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을 통해 연애감정을 느꼈고 서문의 회상을 통해 그 때의 여자들을 불러내며 소설은 이어 나간다.

 

저자는 주인공을 통해 당시의 다양한 연애감정을 풀어낸다. 황보나영이든, 소미누나든 어느 한 명의 여자와 교감하는 연애였다면 더 좋았을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감정이입할 여지가 더 적지 않았을까?

서문이 회상하는 여자들을 통해 우리 역시 과거로 돌아가 당시 사랑하고 헤어지며 또 미워하기도 했던 사랑의 존재를 떠올릴 것이다. 그녀는 황보나영일수도, 소미누나일수도 있고, 화가였던 서문의 아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개인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반짝반짝 빛났던 대학 1학년 시절이 떠오른다. 그리고 써클(동아리)실 문을 열며 수줍은 얼굴로 빼꼼히 들여다 보던, 내 가슴에 가장 큰 떨림을 안겨준 그 드라마틱한 순간을 함께 한 그녀가 궁금해졌다.

 

~! 독자의 감정이입과 몰입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이 문학의 주요 기능 중에 하나라면 이 책은 큰 혜택을 베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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