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하다 - 조심하지 않는 바람에 마음이 온통 시로 얼룩졌다
진은영 지음, 손엔 사진 / 예담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돌이켜 보면 무심코 지나쳤거나 읽었지만 어떤 감흥도 받지 못했다가 우연히, 그야말로 운명처럼 얼떨결에 펼쳐 본 책장에서 재회한 글에서 격한 감정의 일렁임이나 뒤늦게 왜 처음 마주했을 땐 몰랐을까 하는 탄식을 자아내는 경우가 있다. 행운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만면에 진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 흔적들을 다시 뒤적이는 기쁨은 대게 시()가 주는 경우가 많았다.

숱한 은유와 비유의 사용으로 유약한 이미지로 비쳐졌던 시는 처음 접하기 시작한 학창시절이 질풍노도의 시기다 보니 남자라는 마초적 근성이 생성되고 강화되어가는 시기에 그야말로 창백하고 여리디 여린 소녀들이나 보는 장르문학으로 치부하고 책상 저편으로 밀어 놨던게 대부분이었는데...

30대에 다시금 접하면서 느낀 시들로 부터 왜 내가 그때 그런 편견에 휩싸여 감수성의 자람을 스스로 잘라냈는지 통탄했던 기억이 새삼스럽기만하다.

 

<시시하다>는 저자가 한국일보에 6년간 연재했던 92편의 국내외 다양한 시에 대한 품평회다.

돌이켜 보면 시집을 읽을 때 소설, 수필에 비해 적은 텍스트로 인해 빨리 읽지만 더 많이 느끼고 또 느끼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늦은 나이에 깨달았다. 숨막히고 반복되는 일상으로 빨려들어가는 아침 출근길, 지하철 속에서 이 책을 펴는 순간은 그야말로 자연인으로서 나 자신에 대한 위로이자 시의 아름다움, 감동에 대한 재확인의 연속이었다.

 

심보선 시인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세상엔 좋은 시가 참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좋은 시가 이토록 많은데 나는 그것을 왜 몰랐을까? 좋은 시는 비밀처럼 세상 곳곳에 숨어 있다....”고 언급했는데 그야말로 이 책을 덮은 순간 내 안의 뿌듯한 감정의 충만함을 그대로 표현해 준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92편의 시에 대한 저자의 품평, 좋다 나쁘다는 이분법적 가치판단은 시에 있어서 결코 잣대가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에 저자의 감상문은 또 하나의 시적 표현으로 독자에게 다가선다. 그야말로 또 다른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여백만큼이나 빼곡히 채워나갈 감상의 시간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설레여보는 것도 깊어가는 가을 좋은 추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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