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의 가문
시바 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260여년에 가까운 에도막부를 연 일본 역사상 가장 추앙받는 인물이다.

일본 중부의 소국 미카와 출신인 도쿠가와는 어린 시절 주변 강대국의 인질로 잡혀가는 비운과 고통속에서 약자의 설움을 철저하게 겪는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봉토로 돌아오나 주변의 강자들, 스루가의 이마가와 요시모토, 전국을 거의 통일하게 되는 오다 노부나가, 가이의 호랑이라 불리우며 전신(戰神)으로 추앙받던 다케다 신겐 등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의 목숨 하나 건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점차 자신을 키워나가며 세력을 불리우고 영토를 확장하며 재정상태를 늘 풍족하게 운용하면서 결국 전국의 패자로 우뚝서게 된다. 그 과정을 유명한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패왕의 가문>에서 이에야스의 인물됨과 가신집단의 특징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시대를 조명하고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이유를 분석한다.

 

저자는 이에야스를 재능과 통찰력을 갖춘 지도자라고 평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이에야스는 주변의 강자들 속에서 생존하는데 급급할 뿐만 아니라 일방적인 복종으로 충성을 맹세하는 오다 노부나가나 다케다 신겐의 가신들과는 달리 거의 동등한 지위로 느껴질 만큼 강력한 가신들의 파워속에서 역학관계도 고민해야 하는 위치였다고 한다. 단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뭉쳐서 자신들의 생존을 꾀하지만 미카와 지역주민들의 충성도는 이해타산에 중점을 두는 타 지역 무사집단과 달리 강력한 충성심과 배타적인 보수성을 띠고 있었는데 이러한 지역적 특성이 이에야스라는 미카와를 대표하는 아이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온갖 역경을 이겨내는데 큰 일조를 했다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자신의 생존방식을 찾아낸 이에야스가 패자가 된 것은 어찌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천재도 아니고 강력한 카리스마도 가지지 못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통해 다케다 신겐에 대항하고 다케다 가문이 망한 후에는 그 지역 무사집단에 신망을 얻음으로서 고스란히 전력을 배가시키고 전법을 전수 받음으로서 한단계 성장하였으며 혼노지의 변을 통해 위기상황을 겪으면서도 온전히 고향 미카와로 탈출할 수 있었던데는 늘 관계에 충실했던 그의 성향이 충성심 강한 가신들의 보필과 조력자들의 노력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미카타가하라 전투의 엄청난 패배와 자신의 아내와 장남을 죽이면서까지 오다의 의심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런 고난이 이에야스를 인내와 때를 기다리는 정국분석의 시각을 길러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고마키 나카구테 전투에서의 승리로 오다를 계승한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간담을 서늘케 한 동인이었다고 한다. 또한 도요토미 히에요시의 지배하에서도 자신의 세력을 온존히 보존함으로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진을 통해 도요토미가를 멸망시키고 전국을 통일시킨 이면에는 평범했던 이에야스가 인내를 통해 길러 온 리더로서의 내공과 가신들간 협력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야망은 가지지 않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혼란과 냉엄한 약육강식의 시대에서 패자로 거듭난 도쿠가와 이에야스. <패왕의 가문>은 소설 대망을 읽어 보려다 삼국지와 달리 실패했던 내 자신에게 그 당시의 시대상황과 이에야스가 패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한권으로 이해하는데 충분한 도움이 되었다.

 

단 아쉬운 것은 이에야스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진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 그런 점을 감안해도 이 책이 가진 인간 이에야스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충분히 재미와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70년대 간행된 이 책이 시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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