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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 일본의 사례, 1945-2012년 ㅣ 메디치 WEA 총서 1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양기호 옮김, 문정인 해제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4월
평점 :
동아시아, 특히 극동지역은 독특한 지정학적 관계로 얽혀있다. 경제면에서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중국과 아베노믹스로 대변되는 엔저 정책으로 안간힘을 쓰는 아직은 ‘썩어도 준치’인 과거 경제대국 일본,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선두주자이자 이젠 선진국 대열도 바라보는 대한민국과 이를 시기하는 또다른 개도국의 우등생 대만까지... 이들 국가들은 또한 엄청난 군사력을 보유함으로써 장차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버라이어티한 장(場)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런데 이 동아시아 국가들을 영향권 아래 놓고 대립하거나 때론 연합하면서 정세를 주도하는 국가는 바로 미국이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 후 현대의 동아시아 역사는 미국과의 관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냉전시대 공산주의와 대립의 최전선에서 정치적 이념적 안전판이자 첨병 역할을 해 온 우리나라와 일본은 미국의 ‘속국’이라고 표현해도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의존도가 컸었다.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는 미국이 어떻게 동아시아를 영향권 아래 두고 자신의 이익과 정치적 목적에 충실히 이용했는지를 미일 관계에서 풀어내는 책이다.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후 무조건 항복을 택한 일본은 연합군 사령관인 더글라스 맥아더의 GHQ(General Headquater)에 의해 통치를 받기 시작했다. GHQ의 초기 목적은 일본이 다시는 미국의 경쟁상대 내지는 군사적 위협이 될 수 없도록 농경사회, 심하게 표현하자면 석기시대의 사회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소련, 중공 등 공산주의의 팽창으로 인해 위협을 느끼면서 일본을 공산주의 팽창을 막는 전초기지로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일본의 주권을 표면적이나마 회복시켜줬고 경제 대국화에도 기여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랜 외교관 생활을 통해 미일간의 역학관계를 직접 체험했으며 많은 역사사료의 검증을 통해 당시 일본이 자주노선과 미국 추종세력간의 끊임없는 견제와 갈등 속에서 지금까지 이어졌음을 토로한다. 특히 전작 <일본의 영토분쟁: 독도·센가쿠·북방영토>에서 일본 우익이 세력 확장을 위해 영토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소신 있는 주장을 통해 일본내에서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저자는 이 책의 발간과 함께 아사히 신문 등에서 음모론에 불과한 책이라는 폄하를 받기도 했단다. 하지만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속에서 이 평가는 엄청난 반발을 일으켜 아사히 신문측에서 직접 지면을 통해 사과까지 할 정도로 이슈의 중심에 있었던 책이기도 하다.
어쨌든 자주노선과 미국 추종노선간의 대립은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부분 추종노선의 승리로 귀결되어졌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일본 국민들에게 전후 상처를 딛고 빠르게 경제대국화하고 자주적인 목소리를 견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요시다 수상이 실은 극렬한 미국 추종자였으나 정세판단을 잘못하여 실각했다는 점, A급 전범으로 수감되었던 기시 노부스케가 냉전으로 기사회생하면서 수상이 돼서 자주적인 입장을 견지했다가 안보투쟁의 결과 사임하게 된 사례는 일본 정치에 개입해 온 미국의 지난한 과거 중에 하나였음을 이 책은 뚜렷하게 각인시킨다.
이 책의 발행이 요즘 영토분쟁으로 일본과 갈등국면에 있는 우리나라와 중국등 국가들의 국민들에게 의미있는 것은 바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기조이다.(솔직히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정책과 같다)
“영국 등은 식민지에서 철수할 때 대부분 분쟁의 여지를 남겨두고 물러난다. 식민지가 단결하여 영국의 반대세력이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중략)
일본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일본에서 철수하면서 주변국과의 해결 불가능한 문제들을 남겨두었다. 러시아와는 북방영토 문제, 한국과는 독도문제,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문제가 그것이다. 그야말로 감탄할 일이 아닌가?“(본문중 187페이지)
현 영토분쟁의 씨앗 역시 미국이 뿌려 놨음은 북방영토의 소유권을 매개로 태평양전쟁 말기 소련의 참전을 유도했던 미국이 몇 년 후 오히려 일본으로 하여금 북방영토에 대한 반환요구를 주문했었다는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오키나와의 주일미군 기지를 후텐마 외로 이전할 것을 주장하거나 유사시에만 미군의 주둔을 용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역대 일본 수상들의 말로를 비추면서 현재까지 미일관계는 종속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저자는 담담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그려낸다.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는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일견 무리한 논지도 보인다. 그리고 영토분쟁에 대한 근원은 지적하지만 어떻게 이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견해는 외면한다. 부동산 버블의 붕괴로 악화되었던 일본 금융산업의 부실 원인을 미국으로 돌리는 아마추어적 경제관도 내비친다.
하지만 일본인에 의해 일본과 미국의 외교사와 동아시아 역학구도를 객관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가지는 중요성과 성과는 반드시 국내 독자들에게도 평가받아야 할 부분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