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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노래실은 꽃마차’는 장노년층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국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작가는 지방에서 상경하여 혼자 생활하는 공진솔. 여느 방송국의 모습과 다를 바 없고 여성 방송작가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그녀에게 어느 날 작지만 흔치 않은 변화가 찾아온다. 젊은 총각 피디 이건이 프로를 맡기 시작한 것이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이렇게 공진솔과 이건의 만남으로 시작하고 사랑으로 발전하며 원치 않았던 우연한 사건으로 갈등을 겪다가 다시 해피엔딩으로 끝마치는 소설이다. 어찌 보면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형식을 띠는 로맨스 소설이건만 이 책은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었고 발간 10주년을 맞이하여 재출간하였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영화 건축학개론 같은 첫사랑의 풋풋함과 놓쳐버린 사랑에 목놓아 우는 아픔을 절절히 표현해 내지는 않는다.
이건과 공진솔의 사랑은 그렇다고 콘크리트 빌딩 숲속의 공허함처럼 치명적 매력으로 빠져들거나 서로를 할퀴고 마는 격한 사랑의 후유증도 보여 주지 않는다. 독자들을 확 끌어 당길만한 소재나 캐릭터가 아닌, 솔직히 말해서 카라멜마키아또를 마시는 기분 보다는 밋밋한 보리차를 후후 불어 마시는 듯한 느낌이다.
제부도에서의 에피소드 등 유치한 설정(? 물론 여성 시각에서는 하나하나 충분히 그럴만한 상황 설정과 대사들이지만)과 이건이 가진 어장 관리 캐릭터(? 진솔을 사랑에 빠지게 했으면서도 결코 자신도 사랑에 빠졌단 것을 보여주지 않으니 어장 관리 아니겠는가)가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의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지만 그보다 20대의 사랑을 두 세차례 겪고난, 그래서 사랑이 주는 변화에 내성이 생겼고 사랑이 깨졌을 때 찾아오는 치졸함에 대해 어느 정도 질려 버린 경험도 가진 두 남녀가 서로에게 다가서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냈다는 점이 독자들에게 어필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이건과 진솔의 러브라인과 함께 조연이면서 둘의 사랑을 확인하게 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선우와 애리를 등장시킨다. 진솔과 애리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애리는 첫사랑인 선우와 10년 넘게 사귀면서 영원히 함께할 꿈을 갖고 있는 훅~불면 날아갈 듯 갸날프면서도 같은 여자인 진솔의 눈에 띨 정도로 미모를 갖춘 여인이다. 진솔과 애리 두 여성 캐릭터에 비해 이건과 선우는 진솔과 애리라는 안식처를 찾았으면서도 안주하지 못해 잡아줘야 하는 인물들이다.
세월이 변했어도 여성의 입장에서는 자신한테 헌신하는 남자보다는 자신에게 미안함은커녕 요구하는 것이 더 익숙해진 남자들에게 끌리나 보다.
이건과 선우같은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기다리는 여성 독자들에게 건승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