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쉬 - 성장과 불황의 두 얼굴
로저 로웬스타인 지음, 이주형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미국 경제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고꾸라지기 시작할 즈음, 금융권에서 일하던 친구와 술자리에서 나눴던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IMF이후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점령군인양 들어올 때 말야...회사 막내인 나는 그들이 갖고 있는 경영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선진금융기법일까 궁금함을 넘어서 심지어 경외감까지 갖고 있었어...그런데 내가 무식해서인지 모르지만 막상 대하고 보니 당황스럽더라...선진금융기법이란게 이자놀이에 따른 소매금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싶어서 말야..내가 아직 잘 몰라서이겠지? 근데 그럴까??....“

 

말끝을 흐리는 친구의 말을 당시 귀담아 듣지 않았지만 그 이후 국제적인 투자은행이자 증권회사이기도 한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베어스턴스의 매각을 통해 드러난 그들의 추잡하고 탐욕스러운 이면에 그들 역시 물욕에 어두워 자신이 쌓아 올렸던 성과를 하루아침에 모래성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크래쉬>는 밀레니엄에 들어서는 2000년을 전후하여 미국 실리콘 밸리의 닷컴 기업들의 폭발적 성장에 맞물려 광풍에 가까웠던 주가상승이 짧았던 전성기를 끝으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버블이 터지고 수많은 기업들이 나락에 떨어졌던 미국 IT산업과 증권가에 대한 역사이며 이와 동시에 십여년 후에 벌어지는 거품의 재현을 보면서 끝없는 달러 공급을 통해 양적완화 시도로 경제가 잠시나마 회복세를 보이자 국민의 혈세로 조달한 공적자금을 금융회사 직원들의 보너스 잔치에 사용하려 꼼수를 쓰고 새로운 파생상품을 통해 위험을 전가시키는 등 과거의 잘못을 아직도 반성하지 않았음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실물경제가 아닌 금융산업의 거래와 투자는 신기루였음을 깨닫게 한다. IT산업이 한창 성장가도를 질주할 무렵, ‘손에 잡히지 않는 것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신조를 가진 증권투자의 신() 워렌 버핏은 IT주에 관심을 갖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이력에 흠집이 날만큼의 낮은 수익률에 그쳤으며 한때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조롱은 얼마가지 않아 투자의 구루로서 혜안으로 탈바꿈하며 존경의 징표가 되었고 IT산업은 몰락의 길을 갔다고 저자는 되돌아 본다.

 

또한 자금이 부족한 매수기업이 매수대상의 자산과 수익을 담보로 금융기관으로 자금을 차입하여 매수합병을 하는 LBO(차입매수, Leveraged Buyout)CEO에 대해서는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을 부여함으로서 기업의 재무건전성에 부실이 야기되고 CEO들은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보다는 단기적인 실적에 집착함으로서 자신의 임기동안 스톡옵션을 통한 배당의 증가와 주식투기를 일삼는 세력들의 입맛에 맞는 경영방침을 주주가치의 극대화란 허울 좋은 표현 속에 숨겨놓았으며 이 과정에서 기업의 도덕적 의무는 무시되었다고 지적한다.

 

결국 이러한 주주가치의 신조가 단기간의 주가 변동에 따른 차익을 추구함으로서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 필요한 내부 유보금 등의 사용처를 배당으로 소진시켜 버리게 만들고 경영진은 주가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됨에 따라 무리한 단기적 처방에 집착하게 되었으며 회계기관은 이러한 난맥상을 정확하게 짚어 바로 잡을 기능을 포기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실물경제를 위한 대출금이 컴퓨터 상의 프로그램에나 나타나는 파생상품 속에 다 몰빵(?)해 버렸던 것이다.

 

금융시장의 붕괴와 전세계 경제의 위기를 자초한 원인을 진단하고 내놓은 수습책이 작금의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규정과 범법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법제도의 정비는 잘되어 있지만 금융문화를 개혁하려는 노력은 아직 부족하다고 언급한다.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거짓말이 용인되고 통용되는 문화 속에서는 정보 공시를 신뢰할 수 없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문화의 위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함을 저자는 이 책 말미에 우리들에게 회자시킨다.

 

자신의 이익과 탐욕을 위해서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괜찮다는 도덕감의 결여와 집단 감염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또다른 시장의 붕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이 책의 주제는 무더운 여름 그 어떤 납량특집 보다 더 우리의 등덜미를 서늘하게 만들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