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계곡 - 눈을 감고 길을 걷는 당신에게
유병률 지음 / 알투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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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있는 윌래밋 밸리는 19세기 중반까지 칼라푸야라는 원주민 부족이 살던 축복받은 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칼라푸야 부족은 비옥한 토양의 혜택을 포기할 수 없어 질병과 죽음이 계속 이어지는데도 그곳을 떠나지 못했고 결국 ‘아무도 떠나지 못했기에 누구도 떠나지 못한’ 채 계곡에 갇혀 있다가, 결국 백인들의 침입으로 그들의 오랜 역사도 막을 내려 버렸다. 축복의 땅이었고 축복(?)이라는 독에 갇혀 결국 ‘죽음의 계곡(The Vally of Death)’이 된 이 비극적 역사를 통해 이 책의 저자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떠올린다.


<죽음의 계곡>은 오랫동안 언론기자로 경제분야 취재를 계속해 온 저자가 과거 칼라푸야 부족이 겪은 죽음의 계곡은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계곡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허우적거리게 되었는지를 경제사를 근거로 추적한 책이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도 나오는 법... 저자는 왜 이런 상황에 갇히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면 칼라푸야 족처럼 우리도 결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방편으로 경제사(經濟史)를 꼽았다.


이 책은 J.P 모건과 록펠러 등이 거대한 부를 형성하던 초기 ‘야만의 시대’와 큰 부자는 별로 없지만 다수의 미국인이 잘살게 된 ‘타협의 시대’을 살펴본다. 이후 정치가 울타리를 허물고 각자가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해체의 시대’에 접어든다. 사람들은 ‘시장에 정치적 사회적 보호막이 없다면 인간의 노동과 자연과 돈을 모두 황폐하게 만들어버릴’ 악마의 손아귀에서 질식해 가면서도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자기계발에만 열을 올린다. 시스템의 부재를 교묘하게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버리는 신자유주의는 바로 죽음의 계곡이 아닐까?.


저자는 죽음의 계곡을 탈출할 실마리를 우리나라 동해에 살았던 귀신고래에서 찾는다. 작은 따개비들을 몸에 붙이고 새끼고래를 등에 업고 살아간다. 생태계를 독점한 사나운 범고래와 달리, 약한 존재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해주는 귀신고래가 만든 공존과 상생의 길이 바로 탈출의 희망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볼 땐 희망의 싹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귀신고래의 역할을 해야 할 대기업들이 작은 따개비(중소기업)들을 붙이고 새끼고래(국민)를 등에 업고 살아가기 보다(동반성장)는 눈앞에 이익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따개비들이 없어지고 새끼고래가 사라지면 귀신고래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변해야 한다. 그 변화는 바로 지금의 상황에 눈과 귀를 막고 혼자 살아남기 위해 죽음의 계곡이 만든 질서 속에 자신을 밀어넣는 것을 거부하는데서 시작될 것임을 저자는 독자들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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