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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를 지켜주었다
이재익 지음 / 도도서가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전에는 그 진가를 몰랐다가 후에 제대로 빠져들면서 더 소중함을 느끼는 분야가 있다.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한테는 시(詩)가 주는 감동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차별적 존재였다. 보통 우리는 시를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접하게된다. 이후 입시제도에 맞춰 공부를 하면서 시 역시 각종 문법과 시를 지은 시인의 당시 개인적 상황이나 시대적 변화를 찾아보며 이 시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은유적 표현의 실제 의미를 해석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입시에서 그런 방향으로 문제가 나오니까..
그러다 입시 압박에서 해방된 스물한살의 어느날, 따뜻한 봄날 속 도서관 서가 한켠에서 우연히 읽게된 시와 시집들은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여 주었고 타오르는 열정과 사랑의 감정을 어루만져주며 함께 어깨동무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소녀감성이라고 부끄러워 어디 말하기도 눈치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에 왜 이제야 내 마음이 움직였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20대를 수놓았던 시가 바쁜 직장생활에 적응하느라 다시 멀어지면서 굳어진 마음 마냥, 오래된 참고서적을 우연히 펼쳤을 때 페이지 한 켠이 부스러져 내리는 것처럼 다시 이별을 고했다.
<시가 나를 지켜주었다>는 그래서 나한테 다시 시를 찾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낭만의 기록이자 너무 오래 찾아주지 않아 이젠 빛바랜 나와 시와의 남다른 감정의 관한 작은 불씨를 다시 키워낸 책이다. 영미문학에서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이 책은 인간의 감정은 언어의 차이를 떠나 감성이라는 만국 공통어를 시로 풀어내는 면에서 공감은 당연한 귀결임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그래서 그들이 사용한 주옥 같은 언어는 굳어버린 나의 마음을 다시 격동시키며 또 그 당시의 시인의 일생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자양분이 된다. 소주 한잔 털어 넣으면서 읽어가는 바이런의 시와 해설은 50대의 나를 다시 20대로 시간이동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하기야 200여년 넘게 차이가 있는 시인의 시대와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여전히 시인의 시로 소통할 수 있는 이 마법 같은 모습은 팍팍한 삶과 일상 속에서도 내 가슴에서 마음을 꺼내줄 수밖에 없는 시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얼마나 행복한가? 시가 현실의 고통을 잊게해 주는 몰핀이 아니라 현실을 더욱 소중히 하고 굳어져 가는 마음을 한결 더 청춘으로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데 이 책이 그 마중물이 아닐까?
영미 시문학을 대표하는 16명의 시인 외에도 그들의 시를 소개하면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다른 작품이나 유사한 성격의 시 구절을 소개할 때마다 함축적 언어가 갖는 영향력과 힘을 다시금 절감하게 된다. 꼭 읽어 보시라. 청춘의 시절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면...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감성에서 찾고 싶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