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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
윌리엄 골딩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11월
평점 :
등장인물들이 아이들이라 다소 동화적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 읽고 나서 어른의 축소판이자 인간이 만든 사회가 얼마나 야만성에 잠식되어 추악해져 갈 수 있는지를 신랄하게 보여주는 소설이 <파리대왕>이다.
미래의 어느 날 핵전쟁을 피해 모처로 떠나던 영국 소년들이 탄 비행기가 무인도로 추락하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소년들이 차츰 무리를 형성해 협력하면서 야생에 삶을 이어가다가 점차 갈등과 경쟁으로 싸움에 이르고 소수 무리는 다수에게 위협 받으며 죽음에 다다르는 등 무인도라는 갇혀진 작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야만성을 순수한 이미지로 비춰지는 소년들의 이양과 대척점을 이뤄 독자들에게 더욱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비록 무인도처럼 갇힌 세상은 아니지만 현대인들의 모습도 성인이냐 아니면 소년이냐 따질 것이 아니라 작은 사회를 형성하면서 나타나는 폭력성은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그 폭력성이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비교적 잘 통제되어 나타나지 않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 존재(추락한 비행기와 조종사의 시신) 외부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히스테리로 커져가면서 오로지 생존이냐 죽음이냐로 귀결되자 힘을 가진 자만이 유일한 가치가 되어 상실하는 인간성은 착잡하기 이를데 없다. 윌리엄 골딩은 이 소설을 통해 생존만이 최종 목표가 되는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도래하면 인간에게는 오로지 각자도생의 삭막한 현실만이 남게 됨을 설명한다.
이 소설이 왜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유럽 중고교 교과서로 실렸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은 바로 우리에게 인간성을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며 또 힘겨운 것인지 인식하게 한다. 어떤 찬사도 부족할 만한, 아니 이미 받은 찬사만으로도 역사에 남을 소산이므로 굳이 더 많은 찬사가 불필요한 소설이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