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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
니키 얼릭 지음, 정지현 옮김 / 생각정거장 / 2023년 8월
평점 :
내 친한 친구는 십여년전 40대 초반에 어버이날 부모님과 저녁식사자리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촌티(?)나는 외모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그녀석은 사망 일주일전 나를 찾아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고급 정장을 맞췄다고 환하게 웃던 기억이 난다. 영업직이라 고객에게 호감가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던 그 친구가 불과 일주일 후 자신이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수없다는 걸 알았을까? 소중한 두딸과 아내, 그리고 아들을 잃은 채 넋나간 어머님의 모습을 보며 빈소에서 눈물조차 흘릴 겨를이 없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너무나 많은 얘기들이 오갔을수 있다. 만일 우리가 죽는 날을 안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유한한 삶을 순응하고 이해하면 모르지만 우리는 아직 이 세상에서 해야할 일이 너무 많지 않을까?
“말해 보라 당신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이 소중한 삶으로 무엇을 할 계획인가?”
책 첫 부분에 등장하는 이 문구가 새삼 유한하며 한번뿐인 우리 인생의 소중함을 간과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어느날 모라와 같이 사는 니나는 현관 앞에 한 박스를 발견한다.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어떻게 할 까? 그야말로 판도라의 상자가 아닐 수 없다. 호기심에 열어 보기엔 당신의 수명이 언급되어 있으니 당연히 이상자를 열어 본 이후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니나를 비롯해 8명의 등장인물들의 선택은 그들을 파란만장한 세계로 안내한다. 자신의 수명을 알게되면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수명을 몰랐을땐 단순한 선택일지 몰라도 알게 된 후엔 하나하나 번뇌의 선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상자안에 끈의 길이에 따라 수명이 달라진다곤 하지만 죽음의 시기를 각자 안다면 앞으로의 우리 행동도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의도에서 작가의 주제 설정은 참신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저자의 의도는 마치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인생을 허비하기보다 자신의 운명을 인지함으로서 남은 나날을 어떻게 살아갈지 각자에게 성찰의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닐까? 불치병 환자에겐 너무나 짧은 기간이지만 이렇게 상자를 받은 이들에겐 그래도 조금이나마 더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재미로만, 흥미를 유발하는데만 생각할 소설은 아닐 것이다. 우리 각자가 부여받은 소명은 이 상자의 등장으로 오히려 더 명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꼭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