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지혜
이문영 엮음 / 정민미디어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김삿갓은 조선 후기를 풍미한 실존인물이며 경기도 양주에서 양반 가문 김안근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가 홍경래의 난에 연루돼 반역자로 몰려 가문이 풍비박산되는 고초를 겪은 난고 김병연을 지칭한다. 김병연은 강원도 영월과 관련이 깊다. 방랑하는 시인의 계기가 된 영월의 한 백일장에서 선천부사를 지낸 조부 김익순을 비난한 시로 장원을 한 것이 그의 인생행로를 바꿨기 때문이다. 이 일을 자책하며 방랑의 삶을 살아간 그는 풍자와 해학으로 권력과 기득권을 비판하고 어지러운 세태를 꼬집었다고 한다. 이는 후대가 단순히 그가 비판에 집중했음에 주목하기 보다 스스로 사회적, 물질적 욕망을 내려놓고 제3자적 입장에서 방랑하며 세상을 한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시각이 투명성을 담보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물욕에서 초월한 그는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고 살았을까?

 

<김삿갓의 지혜>는 방랑시인 김삿갓, 즉 김병연이 팔도를 유람하며 지었던 많은 시들을 통해 그의 언행을 바탕으로 유추해 낸 에피소드를 엮은 책이다. 이해할 만한 비유일지 모르나 19644월부터 20014월까지 무려 37년간 11,500회를 기록한 라디오 방송 김삿갓 북한 방랑기과 유사하다. 이 라디오 드라마는 김삿갓이라는 브랜드를 등장시켜 도덕적 흠결이 없으며 인간사를 탁월한 지혜와 품격 높은 풍자로 북한의 부조리한 정치, 문화, 사회와 연결지어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 청취자들에게 높은 만족감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라디오 드라마와 다소 다르지만 김삿갓의 시를 바탕으로 상상의 영역을 기반으로 있을 법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냈으므로 한편의 잘 짜여진 우화와 같다.

 

우리가 살아가며 한번쯤 의문을 품게 되는 인생, 처세, 성공, 행복, 정의 등 하나하나 소중한 명제들을 어떻게 김삿갓은 바라보고 있는지 그의 시와 이를 연결 지은 에피소드를 통해 접해 보면 성찰의 기쁨은 멀지 않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총선 압승의 잔칫집이었던 진보진영이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정으로 내홍에 휩싸일 듯 하다. 이 일의 실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그래서 일제의 잔혹한 만행하에 참혹한 고통속에 삶을 빼앗겨 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이 풀어져야 한다. 그리고 정당한 대우를 받으셔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그동안의 물욕에 빠져 자신의 신념을 혼탁함 속에 내동댕이 쳤다면 응당 반성과 진보의 이념에 맞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아직 진실은 저 멀리 있다. 하지만 최근의 설화는 결코 진보답지 않은 실망감을 준 측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삿갓의 지혜와 품격은 여전히 유효하고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사색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함을 느끼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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