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또 일주일이나 지나서 일요일 저녁이 되었다.  

삼실에서 계속 별 아닌 일을 작업하면서,, 정말 하찮은 일이지만, 내가 잘 못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내가  잘 못하는 일. 분야이니까 이렇게 죽으라고 짜증이 나겠지. 실수도 없이 시원시원 정확하게 암튼 일단락 되었다. 담주면 발령이다. 어디 하나 가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환영. 여기보다 낫지는 않을까하는...다시 공부도 좀 하고 공부할 시간을 좀 갖고 해야 겠다.   

월요일에는 길에서 '니체'강의를 들었다. 오랜만에 강의 들으니까  어쩜 그 이야기들이 내이야기 같은지... 나를 반추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있었다.  

원한의 생리학 

니체는 자신을 " 운명"이라고 불렀다.  왜냐면 전 인류사에 니체같은 혁명적인 철학자는 없다고 생각했으며, 수천년동안의 기독교의 프레임에 갇혀있던 인류에게 그 프레임을 찢은 혁명적인 철학사상을 내놓은 사건중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 사건을 만든 니체는 인류에게 새로운 사명을 제시한다. 자기존재의 전체를 거는 새로운 사명이란 ; 비도덕주의, 반기독, 위버멘쉬 등 새로운 사유를 제시한다. 니체는 인간자체를 병으로 보았다. 온 인류가 한 방향을 보고 있는데 자신은 거기에 벗어나서  진정한 병이 무엇인지 본다고 했을 때 니체는 어찌 이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니체는 실제로 수많은 병을 가지고 있었다. 프루스트도 지병을 평생 살아갔다. 자신의 건강이 혹독할 수록 그 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것이다. 아니면 그럴 수록 몽롱한 정신에 힘입어 새로운 생각이 뚫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암튼 니체는 생명력의 가장 낮은 지점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2를 썼다고 한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 강한 의지는 훌륭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결론.  역설적이지만 아프더라도 건강해야된다, 아프더라고 정신을 혼미하게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픈 자신을 위해 건강을 해치고 혼미한 머리로 날카로운 나의 가시들을 뭉개던 나는 나약함의 소치라는 생각이든다.  어떤 경우라도 정신을 맑게 유지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멍텅하고 순간에 반짝임만 있으니, 죽은 눈을 생기있게, 오늘 니체의 교훈이기도 한다.)  

니체는  건강과 병의 이분법이 아니라 건강과 병의 거리를 함께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그래서 니체는 직관이 무지 하게 발달된 사람인거 같다. 그는 냄새로 인간이나 책을 판단했다고 한다. 만약 이웃을 사랑한다는 누군가는 그는 자신에 대한 사랑의 결핍에서 나온 대리만족이 아니냐로 힐난 것이다  이러한 니체의 "촉"은 진짜 문제와 가짜문제를 판별하는 능력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도대체 왜 나는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결코 문젯거리가 아닌 것에 대해 숙한 적이 없으며, 나는 내 자신을 허비하지 않았다. " 그렇다면 가짜 문제들이 무엇인가,, '신, 영혼불명, 구원, 피안과 같은 문제들이 바로 가짜들이다! (얼마나 명쾌한지,, 지금 내 머리속에는 이제 신은 영혼 등은 이러한 단어는 없지만, 사소한 것들은 문제 아닌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대부분이 해야할 일이 많은데 몸은 움직이기 싫다와 타자의 속내가 무언일까라는 궁금이다. 이것은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데, 왜냐면 그 문제는 생각하는 동시에 또 문제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에다. 내가 내속도 모르는데,, 움직이지 않은데 어떻게 문제가 해결이 되겠는가. 아예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지 말고, 순간순간 해야되는 것을 하면 된다. 해야될것을 한다고 그런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시간과 같아서 내가 잡으려고 하면 또 그것은 멀리 걷고 있을 것이다.) 

그저 니체 말대로  나의 능력과 에너지가 불필요한 곳에 허비되도록 놔두지 않는것, 그리하여 축적된 에너지로 하여금 나의 고양과 우월함을 낳을 수 있도록 사소한 일상적 삶을 챙겨가는 것. 

니체와 인간 

니체는 고귀한 인간, 주인, 귀족이라고 불리우는 절대적 강자와 천민,하인이라고 불리는 약자를 나눈다. 존재자체가 귀한 고귀해서 전자는 타자를 깍아내리지 않아도 온전하지만, 약자들은 자신들의 나약함을 상대방의 악함으로 규정하여 자신을 선하게 만든다.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평가하는 인간들은 노예적 인간이라고 보는것이다.  타자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과 타자의 시선 안에 갇혀있는 다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좀 헷갈리는 것 같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를 찾고 수많은 자아의 집합체라고 정의하는 현대적 자아와 대치되는 점도 있고 해서 그런지, 이 부분에 질문이 많았던 것 같다. 이것은 결이 다른 문제라고 보면 될거 같다. 자신의 존귀함을 타인의 의견에 좌지우지 하지 않는 독립적인 정신을 가진 인간을 니체는 말한 것이 아니였을까. 그런 인간이라면 남과 함께 해야 하는 삶에 대해서도 품을 수 있다는... 정체성 보다  더 깊은 영역... 과연 어떤 것일까.   

니체는 선과 악이라는 도덕의 세계를 넘어서 좋음과 나쁨의 윤리학으로 전화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긍정하는 자는 자는 타자를 열등함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상대를 악으로 부정해야만 자신을 선함으로 만들 수 있는 노예적 도덕가치를 넘어야 한다.  

어떤 행동을 하려다가도 금방 다른 기억이 부상하고, 거기에 대해 다른 지식이 떠오르고, 이렇게 기억이 지배할 때 행위가 불가능해진다, 망각능력은 바로 무의식적인 능력이지만, 이렇게 어떤 행위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적극적이 조형적인 능력이다. 니체는 " 망각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했다. (나에게도 적극적 망각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를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동의 자유를 막는 것들에 대한 망각이다)  

"영향을 받아서 창조적으로 되돌려 줄 수 없는데도 작극에 대한 흥분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영향받는 것 자체가 자신을 무능력한 존재로 만드는 일 이외에 무엇이 되겠는가. 다시 말해 그는 왜부의 자극에 대해 자신의 우월에의 의지를 꺽어버리는 것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기억을 끝내지 못하는 소화" 이것이 원한의 생리학이다".  

나의 나약함이 부끄러워서 존재 자체를 긍정할 수 없어서 자꾸 노예적 가치로 만드는 것에 대해 나에게 질문해본다. 나의 나약함은 타자의 강함. 타자의 악에서 비롯된 것인가? 나의 본성이 노예인가. 왜 본성상의 차이를 긍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는가. 나약함은 나의 일부라는 것. 그것 자체로 존재를 무력하게 만들지 말자는 말을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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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에 초조함이란...월요일에 오는 것에 대한 공포. 집에서 나가고 싶다는 욕망. 해야할일을 하지못한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 이런 오만가지 불유쾌한 감정때문에 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시간을 죽 때린다. 움직이는 것들을 부러워하면서, 나는 레오니고모같이 침대밖을 나오지 않으면서 계속 시선을 외부로 향햐고 온갖 것들의 쓰레기 같은 정보를 인터넷에서 수집하고,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들을 서치하면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고도 아직 무엇을 할 마음이 잡히지 않아서 이렇게 잡문을 끄적이고,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자신을 대면하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럽다. 아주 지겹다는 말이 맞다. 지겨워서 돌아보기 싫다. 한대 쥐어박고 싶다. 도대체 나라는 입체는 조화롭지 못하다. 언어들은 외부공기와 만나면서 불시착해버리고, 허공에 흩어지는 소리만 남아있을 뿐 나의 내장은 소심하게 오그라들기만 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말라고 매순간 조언을 하는 타자는 나이다. 그런 조언 따위는 필요없다며, 윤리와 도덕, 양심 같은 것들을 자유의 이름 아래 잘게 찢어버린다. 그러고는 후회한다. 내가 놓친 것을 대하여,, 놓아버린 것들에 대하여,, 이렇게 무기력하게 산지 한 6개월 된거 같다. 저열한 인간과 가까이 하다보니, 아주 바닥에 뭉개져 산다. 이제 고만 하고, 연민 같은 거 원래 없지만, 또 버리자. 그저 움직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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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수 원래 좋아하니까,, 책 나오자 마자 샀다. 그리고 나꼼수도 듣고 있다. 그동안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분노감이 일었다..구체적인 정황들이 들어오자,, 막연한 반감이 분노로,, ,무지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따져볼 생각을 못했는지. 우리의 눈과 귀를 막는 메이저 언론들의 비겁함도 너무 싫다. 주로 라디오를 통해 정보를 입수하는 우리 남편은 보수다.. 정치 얘기만 나오면 너무나 답답하다. 나 역시 아닌 것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말은 또 꼬여,,, 그들이 근거없이 만든 논리에 막혀 결국에는 왜 나는 나의 남편하나 설득하지 못하는 바보냐,, 자괴감이 생기고, 독서가 아니라 공부를 하자.. 뭐 이런생각 까지 든다.  닥치고 공부!   나꼼수라도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왠지 설득하기 귀찮다... 그러면 또 지는건데.  암튼 닥치고 정치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리뷰 다시 쓰자.

복잡한 정치지형이 이제 좀 눈에 들어온다. 현실정치에 관심은 있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제대로 구분이 안가던 나인데,, 그동안 읽어왔던 정치경제 도서들이 시너지를 일으켜 정치적 라식을 한거 같다. ㅎㅎㅎ 오늘은 출근하면서 6회를 다운받아서 들었다. 오늘은 정봉주의원이 대학등록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지금 우리대학은 적립금만 가지고도 8년정도 견딜 수 있는 정도라 한다. 말도 안되게 대학등록금이 비싼 것은 말도 못해, 대학 대출금의 이자는 집담보대출 보다 비싸다. 대출로 대학을 다녔던 나역시, 질적으로 대학교육이 많이 떨어지는 현실에.. 아트엔스터디에 5만원만 내면 훨씬 질높은 교육을 받는다. 그런 대학수업 1강에 십여만원이라고 하니 기막힌 노릇이다. 교육계 역시 샹이다..  이런 나라에서 우리 아들은 대학까지 보내야된다고 생각하면 한숨이 먼저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을 텐데,, 어딘가 다른 삶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이들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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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내려 비가축축, 하늘에서 비가 내려, 비가내려 비가축축, 하늘에서 구멍이라도 난걸까?  

술에 취해 니방으로 기어들어가지 않기 참 잘했어. 분위기 취해 니 입술에 키스하지 않길 참 잘했어어어어 참잘했어어어.... 

이자람에 '비가축축'이라는 노래다. 비가 오면 이 노래가 깜찍하게 생각난다...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집은 눅눅하고, 새 집에 대한 열망, 새직장에 대한 열망, 내 거죽에 대한 절망,,, 등등 몹시도 짜증나는 2011년이다. 더욱이 공부도 안하다 보니까 정말 바보 또라이 멍청이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만나고 다는 사람들도 이제 다 지겹다... 새집, 새사람이 필요해! 라고 나늘 떠들고 있으나, 그것들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어느정도 변하고 싶다.. 이 생활(불평, 불만, 술먹고 노는 일, 게으른  작태, 뚱뚱한 몸)을 내가 접어야 오는 것이다.  

비가오면 술생각나고, 술먹으면 후회하고, 지겹다. 이정도 지겨우면 그만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버린다.. 내 에너지를 나를 미워하는데 쓰고 있다. 지겹다 하면서,  

비위맞추고, 자존심 버리고, 상황만을 모면해 나가는 지금이 너무 싫지만, 달리 대안이 없다. 어떡해야 할지 도무지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들과 멀어진 관계, 나 때문이다. 시간을 같이 안보내니 엄마 밉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쇼파에 누워 잠을 자거나, TV를 보지말자. 다시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쓸데없는 낭비를 하지말자. 새벽에 요가를 매일 나가야겠다. 피곤해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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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좋아하는 저자 2명 강신주, 우석훈의 4인4색 좌담이 있었다. 마침 우리집앞 여성플라자에서 하는 거라 냉큼 신청한대로 당첨. 아이가 혼자 집에 남아있는게 맘에 걸렸지만, 이제 6학년 이니까, 흠. 잘 있을 수 있을거야 하면서, 옆집언니와 함께 갔다. 언닌 이런 강의가 처음인듯. 나도 강의만 들었지. 이런 자리는 처음이였다. 그리고 우석훈 선생님도 처음. 후와! 근데 우석훈 선생님 등장하자마자 노래 2곡 날리시고,,, 너무나 소탈한 옆집 오빠같은 분위기여서 좀 놀랬다. 이 자유로운 영혼 어쩔.. ㅋ 변호사 한분은 뭐 너무나 순수(?)하셔서 달변가들 옆에서 보리자루 같기는 했지만 나름 자리를 즐기시는 것 같아서 좋았다. 사회보시는 분도 제멋 멋쨍이기는 했지만, 그닥 내맘엔 별로였고, 강신주, 우석훈 선생님은 역시나 농담마저 어찌나 센스나 있는지, 웃겨죽는 줄 알았다.'나와너의사회과학'은 지금 읽고 있는데 역시나 지하철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읽기에는 좀 ㅂ거운 책이다. 챕터마다 쪽글이 있는데, 읽기전에  먼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써보는 거다. 우석훈저자는 처음에는 대학생대상으로 했는데 막판에 남은 사람은 주부였다며, 우리나라 주부들이 아마 세계에서 제일 학력이 높을 거라고,,주부용이라고,,, ㅋㅋㅋㅋ 글쎄 그러네. 나부터도 주부면서... 내가 일하지 않는 주부라면 정말 이런 강의 쫓아다니면서 공부하고 싶다. 그러면 배움을 나누고 싶을 테고, 말야.. 우석훈저자는 우리사회에 70-80년대를 통과하면서 사라진 사회과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본이 모든 것을 거의 90%이상을 설명해주는 시대에서 그래도 자본이 아닌 것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가야한다는 것이다.  강신주선생님은 우리의 프레임을 다양화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전에도 들었던 얘기지만, 다양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어야 우리 삶은 그나만 옳은 것을 지향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프레임의 자유를 가지고 있어야지만 언제 세상을 향해 셔터를 누를 수 있을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씀도 하셨다. 끝으로는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것을 감당해나가면서 살아야된다는 것을 강조하셨는데, 나에게 정말 필요한 말이였다. 내가 옭다고 믿는 것, 그것은 인간으로 마땅히 해야되는 것, 하지말아야하는 것들을 지키자는 것이다. 선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감당하자는 것이다.  

강신주선생님이 말한 프레임, 송변호사가 말한 배려, 우석훈 박사님의 구조 등 오늘도 많은 말들이 나의,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프레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랐을 것이다. 여럿이 모이면 우선 용어의 사용의 틀려서 참 서로 다른 말을 하다가 끝나기도 하고(주로 TV토론을 보면) 하는데, 존재하는 인간의 수많큼은 세계는 있을 것이고, 그 세계 보다는 훨씬 적은 프레임을 가지고 우리는 말을 하기 때문에 소통은 그만큼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간만에 또 인문학적 수혈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 참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머리에 남는 것은 별로없다. 뇌세포가 너무 죽었다! 자꾸 기억하려고 해야 죽은 해마도 살리는데,  

끝으로 강신주 선생님 싸인 받았다. 줄이 너무 길어서 우석훈 선생님꺼는 못받고, 아쉽다. 우석훈선생님도 정말 매력 만점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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