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남히단?
2011년에 무슨일이 일어났던가? 내가 아는 것은 월스트릿 시위와 이집트 시위가 반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났다는 것... 그것 역시 지젝을 통해서다.
멈추고 사유하라! 지젝의 언명이다.
이제 멈추어야 하고,,, 그리고 생각해야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 자기관찰의 사회적 확대로서 관찰이다. 고요히 보는 것이다. 과연 무슨일이 일어나는가를...
와 남 니히단. 무덤위에 꽃을
시체를 덮어버리기 위해 썼던 경구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시대의 지배이데올리기의 방식이다. 사건의 진정한 중요성을 무효화를 만든다. 하지만 2011년 일련의 사건들을 총체적 상황에 위치시켜야 한다.
- 결정적 역사적 순간은 예술과 이론이 하나로 규합되며, 체계는 현실에 들어맞는 형식적인 틀을 구축한다. 현실에 얽매인 주체들의 주관적 생각들. 진단이 그 자체의 증상이 된다.
주관에 의해 왜곡된 현실의 불가피함의 원인 그 자체를 무시하는 태도가 더 이데올로기적인다.
현실은 객관적일수 없다는 것을 무시하는 태도가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이다.
- 현대 자본주의 특징과 자본주의의 지배 이데올로기
칸트는 이성의 공적사용, 즉 이성의 행사는 초국가적 보편성에 대해 얘기한다.
생각하고 복종하라!
자유롭게 생각한다 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불의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은 통치자에게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유사상이 오히려 자유를 방지한다.
칸트는 이성의 공적사용은 중립적, 비개입적(중립적, 비개입적)
막스는 혁명적 계급의식 차이(편파적, 완전한 개인) 이성의 공적사용이 이성의 사적사용으로 후퇴하지 않고 그자체로 실용적, 효울적이 되는 입장.
사회체의 몫없는부분, 과잉이 보편성을 구현
이성의 공적사용의 보편성과 참여적이고 주관적인 입장을 접목시킨 접근만이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적 지도를 제공할수 있다.
2. 지배에서 착취와 저항으로
사회구성체로서의 자본주의는 구조적 불균형, 생산력-생산관계의 적대
- 현대 자본주의의 3가지 특징.
1) 이윤추구가 지대(rent)로 공유지식, 천연자원 등
2) 노동자--> 실업자
* 더오래 착취되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
3) 봉급부르주아의 등장
- 다중 : 무실한 수뇌부를 제거 진정한 사회주의 도달한다고 보았으나 일반지성을 중앙계획국에 도치된 것에 불과함.
비물질노동이 지배적인 위상 차지할 때 비로소 혁명적 전복이 객관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지적노동(아이디어, 코드, 텍스트, 프로그램)
정동노동(의사, 보모, 승무원 등)
공유된 지식, 각종형태의 협력과 커뮤니케이션 등은 더이상 사유재산으로 담을 수 없다.
삶정치적biopolitical
물질적 생산--> 상징적 생산
중앙집권 위계 --> 자기조직적, 다중심적 협력,
공산주의 붕괴 : 정보혁명에 따른 새로운 사회적 논리를 수용하지 못한 정권의 무능함
벤처투자 --> 새로운 부르주아 계급은 은행, 분산된 투자자, ceo 등 잉여급여 큰 봉급부주아계급의 대두. 이들은 자신들의 높은수입을 정당화하는 유사 과헉적인 평가가 중요해졌으나,
이들의 높은 봉급은 이데올로기의 신화에 불과하다. 미국이 패권주의 이데올로기로 전세계의 자본을 빨아들이듯이 이들 역시 이데올로기로 치장 했으나, 그 근거 등은 뚜렷하지 않다.
잉여의 두가는 잉여급여, 또는 잉여시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실제 능력과 상관없이 권력과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자의적 메카니즘에 불과하다.
이들은 사회적 안정을 위해 중간계급의 유지.
중국, 부르주아 계급없는 자본주의에서 부르주아 없는 관리자체계로 돌입하였으나 반 자본주의 시위로 봉급부르주아들은 잉영급여이기 떄문에 이들의 허리띠를 조를 수 있는 계급이기에 정치적 저항을 할 뿐이다. 이들의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할 위험에 저항하는 시위에 불과하지 않을까.
영국대학생폭동, 이집트소요, 그리스 봉급부르주아 하위계급이 프롤레타리아롤 전락하는 동안 최고 경영자, 은행가들은 과도한 보수를 받게 되었다. 그들의 과도한 보수는 하위직의 말도 안되는 열악한 임금 덕분이다.
그리스 구제금융은 은행가와 기타 전문가에게 민주주의를 억압할 기회를 부여했다. 탈정치와 테크노크라시의 모델이 될 것이다.
선거는 진정한 선택지가 아니다. 중도좌파와 중도 우파사이의 선택지 이기 떄문이며, 우리나라는 극보수와 중도보수의 대결이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복지국가는 회귀된다.
이윤을 추구하는 재생산이라는 자본주의 기본틀을 유지하되, 글로벌 복지와 사회정의의 확정. 자본주의의 조정과 규체가 필요한 것이다.
정말로 자본주의라는 짐승과 함께 가는 것만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의 방법일까.
미국은 1960~70년대를 지나면서 무역흑자가 적자로 돌아섰다. 1971년 미국은 적자늘리기로 결심하고, 미국의 적자는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가 메꾸게 되는데 이렇게 끌어모은 자본은 월스트리트로 들어가 대출, 주식, 금융상품으로 변화된다. 미국에 투자가 몰리는 것은 경제적요인보다 이데올로기적 군사적요인에 기인한다.
글로벌자본중의가 문화적 다양성의 찬양이라는 허울아래 과두제로 향하는 새로운 추세이다.
이제 세계는 미국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미국이 나머지 세계를 필요로 한다.
세계의 기싸움에서 미국에게 패한 것이 진실이 아닐까. 그들이 만들어낸 전시상황. 위기 등은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여 글로벌적인 사기행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폭력은 행해지지 않아도 기싸움에서 밀리면 끝이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하정우의 그 포스. 조직의 보스는 그가 물리적으로 강하다기보다 '기'가 문제가 아니던가.
3. 정치적대표의 꿈작업.
정치적대표가 결코 사회구조를 직접 반영하지 않는다.
모든 계급의 유일한 공통분모는 모든 계급에서 배설된 과잉, 쓰레기 잔여물의 보편적 대표의 매걔가 필요. 특별한 한 계급, 적극적 대표를 요구할 만큼 통일되지 못한 계급의 대표역할을 수행하는대표.
부자증세에 반대한 그들의 논리는 투자감소 때문이라고 한다. 은행에 과도한 혈세를 투입시키고나서는 경제위기를 외국인에게 투사시킨다. 계급이 두계급이라면 안정될 것이나 제3의 적대계급을 만들어 계급투쟁을 존속시킨다.
거대자본의 이해관계라는 실재
시재 현실을 왜곡하는 원리자체
경제적인 것이 최종심급에서 사회체계를 결정하는 역할
경제적인 것은 결코 실질적인 작인으로 직접 나카나지 않는다.
경제라는 중층결정적인 심급은 결코 직접적이지 않는 먼 원인으로 직접적인 사회적인과의 빈틈에 개입한다.
정채적 중핵이 없는 경제적인 것은 마르크스중의 진화역사주의적 발전 개념에서 처럼 발전의 확실한 모체가 될것이다.
반면, 경제적인 것이 제거된 순수한 정치는 이데올로기의 다름 아니다.
공적개입이 사라지고,
대다수의 삶을 규제하게 될 익명의 무제한적권력을 급진주의가 나서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는 지금의 지배계급의 도덕적 분노 분출을 위해 전쟁을 용인한다.
문화전쟁이 곧 전치된 양식의 계급전쟁인 것이다.
두번째로 차이를 적대로 만드는 것이 계급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