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쿨에서 일방통행로 강선생님 강의를 듣고 있다. 사무실내에 강의가 있어서 앉아있는 기자들도 보고 언론사의 분위기? 분위기랄 것도 없지만, 생각보다 사무실은 조촐했다. 그게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몇년전 이데일리 갔을때 거기는 좀 컷던 것 같은데...
몇몇 20명내외의 수업만 듣다가 다수의 사람들과 강의를 들으니 마음이 편하다. 선생님이 질문 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뒤쪽에서 듣고 있다.
그 답은 지난번 강의에서 영감을 얻었다. 벤야민이 사랑에는 부르주아적 사랑과 프롤레타리아, 봉건적 사랑을 이야기 했다. 부르주아의 생활은 사사로운 일들의 연속체라고 했던가... 현대인의 삶은 역시 사사로운 사적인 일들로 가득차 있다. 영화, 음악, 패션, 문화, 맛집 등 우리가 향유해야 할 많은 것들은 시스템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지젝도 지적했듯이 사적인 영역이 공적 영역을 침범해 버린 것이다. 많은 이들의 사적인 생활이 계속적으로 SNS에 알고싶은 않은 일들을 알아야하는 피로감의 연속이다. 생활이 단순하지 못하고, 오감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다 보니 큰 것을 자꾸만 놓치게 되는 것이다. 나역시 이 홍조증때문에 많은 것들이 놓치면 살지 않는가... 디테일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디테일에 대한 지속적 관심때문에 나는 시간이 매일 없는 것 아닐까.
먹고 입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매일 들여다 보는 쇼핑에 연애인 가십 가벼운 볼거리,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철학도 신념도 없이... 이것이라말로 기계안에 기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방통행로를 산지는 좀 됐다. 진중권을 통해서 알게된 벤야민. 그리고 수유너머에서 독일비애극의 원천을 읽으며, 손에 잡히지 않는 벤야민에 대한 나의 상상만 커져가고, 수시로 그가 우리 역사에 매우 중요한 인물임을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소리를 들었다. 선집을 모으며, 그러나 아직 완독한 책은 없으며, 일방통행로를 들었다가 이게 뭐지 하고 반정도만 읽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다시 꺼내든 일방통행로. 역시 가이드 없이 직관으로 읽기는 어려운 책이다. 아직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 부분도 많고, 하지만 제목과 연관없는 내용. 별 무관한 내용이 연결된 그 파편적인 글들은. 벤야민 자신이 어른이 되어 오로지 자신을 위한 글로 썼으며, 야시스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에게 받은, 벤야민의 사랑에서 도출된 많은 단상들로 이루졌다고 한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자극에 따른 떠오른 생각들을 적어놓은 책이라는 것을 알고나니 읽기가 한결 수월했다.
강선생님처럼 벤야민에 글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 정리해 보고 싶다.
두번째 주제는 사랑이였다. 사랑과 욕망의 차이.. 그 사람을 나의 일부분, 소유물로 보는 것은 욕망이고, 내가 그의 궤도에 맞추는 것은 사랑이다...라고 유명한 누가 얘기했다고 한다. 그럼 그이 궤도에 따른 것은 희생과 무엇이 다를까... 벤야민은 사랑하는 사람을 희망없이 사랑하고 했다. 희생하면서 희생에 따른 댓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아무 기대없이 희망없이 사랑했을 때 서로의 궤도를 돌 수 있는 사랑이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다들 사랑이 아닌 사랑의 제스쳐만 취하고 이 세상. 비도 오고,,, 음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