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
벙커1 강신주의 늙음에 대한 간단 후기를 써본다.
전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이후의 늙는다는 것의 의미는 매우 다르다. 전 자본주의시대에 늙음의 경험이 쌓여 현자로 아랫사람에게 존경이 대상이 되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쓸모없음으로 용도폐기가 되버리기 일쑤다. 이제 경험에 따른 정보는 너무나 널려있으며, 누구도 어르신들에게 묻지 않는다. 그들은 계속 해서 최신식의 기계를 만나고 적응해야 하는 것이 벅차며, 최신상품에 소외되고 만다. 그 늙음의 폭이란 것은 점점 더 짧아져서 이제 십대, 이십대를 지난 삼십대도 최신 전자제품 사용을 배워야하며, 배우자 마자 또 새로운 상품이 계속 대체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에게 프로그램과 기계를 매번 새롭게 배워야 하고 부끄러워야하는 상황이 오고 마는 것이다.
강신주박사님은 다소 맥빠지는 결론이였지만, 효는 아니지만, 언젠가 우리도 늙고 용도폐기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부터 어르신들을 지키면 나중에 그 자리가 남아있지 않겠는가...하였다. 내가 우리엄마를 아빠를 소홀히 한만큼 우리 자식도 나한테 그렇게 할텐데.. 한편 두렵지만 기대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주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고... 어찌보면 냉소인데, 사실...부모님을 버리고 몇년간 잘 살아오긴 했다. 어깨를 짓누르던 부담을 벗고 내 멋대로 살았다. 그렇다고 갑자기 그들을 챙기겠다는 말은 아니고, 이제 조금씩 챙겨야겠다는 얘기다. 쓸만큼 쓰고,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는 나누어주어야 할때. 그다지 많이 가져서 그런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냥 내 수준에서 잘 놀았다 싶다. 내 것을 좀 줄이고자 한다. 늙을 수록 더 현명하고 지혜로와 져야 한다. 내 남은 인생을 한병철도 얘기했듯이 늙지는 않고 불시에 죽어버리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