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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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도 타다오, 보고 왔다.

 

몇년전에 안도 타타오의 책을 본 적이 있다.

책에서 보았던 그는 노인이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그는 힘이 넘쳐 보였다.

 

 

그의 건축물은 콘크리트로 빚은 빛이 만든 공간.

어디에도 없던 길을 만들어 걸었던 자가 만든 결과물

그의 중정은 우주가 된다.

 

공백으로서의 빛

그리고 나무들,

물과 바람.

회색의 웅장함.

 

자연과 공간의 조화로움은 대타자의 공간에서

절대적 타자의 공간을 실현한 것만 같다. 

 

무엇이 그를 없는 길을 만들게 했을까.

그의 머리 속에 수많은 아이디어들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남들을 하던대로 하지 않는 그의 창조적 집념.

 

그런 예술가가 우리나라에도 나와야 할텐데,

조금 더 삶이 다양해야 한다.

유행이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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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공백을 들여다보는 여자와 남자
빗물받이 속. 까만공백에서 곰팡이가 피어오른다
쇠창살사이로 하얀곰팡이가 연기처럼 빠져나온다
누런색 양복을 입은 장발의 남자
나는 그와 곰팡이를 보는데
곰팡이는 공이되어 공중에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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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집에서 일찍 와서 돼지고기 스끼야키를 만들었다.

혼자 먹기 아까운맛.

누구와 함께 먹어도 좋지만, 우리는 너무나 바쁘다.

나에게는 딱 내가 필요한 이 순간만 잠깐 함께 있을 누구.

내가 필요한 시간에 딱 그만큼의 시간만 함께 있다면

좋을 아무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니, 정말 이 이기적인 생각을 숨기고 누군가와

식사를 한다면 십미터 매장각이다.

할수 없이 나는 나와 먹는다.

술은 끊었지만, 와인 한잔 한다.

존맛...

아쉬운 것은 3일째 안한 설거지거리가 1시간 남았다.

 잠깐 설겆이 하고,

오늘은 제발 일찍 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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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어떤 남자의 집에 갔다.

처음보는 남자인데,

가는 길에 너는 나를 잘 몰라..라고 말한다.

가면 말하려고 했다. 나의 이야기를

그는 키가 작았다.  얼굴은 평범하게 못생겼던 것 같다.

여기서 반전.

그의 집에 갔더니, 그의 어머니와 아기가 있었다. 

그의 아기를 안았다.

아기는 조금씩 게우다가

토를 엄청많이 했다. 아기의 시큼한 토냄새가 난다.

콧물, 토 나는 당황해서 두손으로 아기를 토를 받아낸다.

아기가 불쌍하다.

그의 어머니는 아기 엄마가 왜 연락이 안되냐고 욕을 한다.

그는 당황하고

나는 아기를 안고 토닥토닥 방안을 서성인다.

사실 그와 사랑에 빠질 지도 모르는 가능성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러한 현실아래 나는 참으로 정신없었다.

대체 이 해괴한 꿈은 무엇일까.

아기가 나온 꿈을 가끔 꾸긴 하지만

 오늘같이 토한 것은 처음. 아기의 구토.

나의 역겨움의 증상이 표상이 된 것일까?

오늘 꿈은 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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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랑켄슈타인

 victor가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늘 이영화에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란걸 알고 깜짝 놀랐다
컴버비치가 나오는 영국 영화 아니 연극에서 그 이름이 빅터였다.

우연의 일치일까. 무의식의 장난일까.

전혀 나는 의식하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어느새 이 연극(영화)를 보고 있다.

사실 햄릿과 고민하다가, 프랑켄슈타인이 더 보고싶어서 봤는데, 빅터라니..

 

사랑을 받지 못한 자의 절규.

 '만들어 달라고 한 적이 없어 나는' 그는 절규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한 노인 만이 그의 친구가 된다.

대타자의 사랑이라도 받아보고자 했지만,

그를 만든 신은 그를 두려워하고 그를 abandon한다.

괴물이라 불리우는 그의 고독은 점점 원한과 함께 깊어져 간다.

그를 만들어준 그의 신,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과 닮은 신부를 만들어달라고 그래서 영원히 그와 함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살겠다고 애원을 하지만,

그의 신은 또 한번 그를 버린다.

그를 만든 신은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 대한 오만과 두려움에 떤다.

 

애초의 언어도 복수도 사랑도 몰랐던 그는

인간이 되었다. 인간이 된 이상 인간처럼 되어야 하는데,

그는 끔찍한 고독속에서 외롭게 살아야하는 그 지독한 운명에 포효한다.

인간의 그 오만함, 다름에 대한 배척,

연극은 그래서 인지 다양한 인종을 가족을 만든다.

 

하나,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은 왜

그 아름다운 시체를 괴물 프랑켄슈타인에게 넘기지 않았을까.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믿지 못하여 두려운 것일까.

아니면 괴물에게 아름다운 여인을 넘기기 싫었던 것일까,

사람인 자신도 모르는 괴물의 그 사랑이 질투가 났던 것일까.

 

그는 주인이자 노예인 그 신과 함께 몰락의 길을 떠난다.

 

 

컴버비치의 그의 연기는 놀라웠다. 너무나,

 

 

대사가 소설의 원작과 같을까?

프랑켄스타인 소설을 읽어봐야 겠다.

무대장치며, 그의 체액이 흐르는 그 무서울정도로

진실한 연기에 나는 거의 압사당할뻔 했다.

괴물 프랑켄스타인 완전한 결핍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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