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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렇다. 이 책은 더도 덜도 않고 딱 별 세개짜리 책이다. 지금 현재 책에 별점이 별 셋 반이 평균으로 매겨져 있으니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한가보다, 하고 넘어가고 싶지만 아무래도 이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역시 박완서! 라고 하며 별 너댓 개를 남기는 사람과, 이게 무슨 소설이냐? 하고 냉소적으로 두세 개만 대강 던져주고 간 사람이 합심하여 이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어째 이렇냐고? 바로 박완서가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박완서를 논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지몽매한 일이고 찝찝한 일이 될 테니, 나라도 이렇게 주절거려 놓고 가야 할 것 같다. 왜 이 책이 별 세개짜리인지.
<아주 오래된 농담>을 그냥 집어들었을 때, 나 역시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의사 심영빈은 한광, 유현금과 초등학교 동창이다.' 요렇게 책이 시작되더니, 그 다음부터 책 한 권 내내 이보다 긴 문장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초등학교 동창생이라더니 갑자기 한 사십 년을 훌쩍 뛰어넘어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할 건 뭔가. 야야 거리면서 '~했냐?' '~하네.' 따위의 말투를 툭툭 내뱉는 중년이라니. 참고로 이 책을 읽었을 때 난 아마 고등학생쯤이었을 것이고 박완서 글을 언어 지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책 한 권으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니 일종의 문화적 충격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천의무봉의 작가라면서 도대체 문체는 왜 저렇게 빈약하고, 도대체 중년의 남녀가 저렇게 말하는 게 말이 돼? 그랬다, 작가는 마흔 여섯쯤의 나이는 완전히 '애송이' 취급이었다. 게다가 작중 인물에 대한 세심한 심리묘사는커녕 몇십 평생 살아온 이야기가 몇 장이면 후두둑 끝났다. 걸쭉한 입담이라고 하기에는 문장에 너무 정성이 없었다. 이게 뭐야?
그럼, 잠깐 박완서에 대해 생각해 봐야한다. 자본주의, 가족, 진실, 이런 저런 것들이 얽혀있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알다시피, 박완서는 이 소설 속 인물들보다 나이를 곱절 가까이 먹은 '할머니' 작가시다. 전쟁을 겪고, 남편과 아들을 잃고, 삶의 인생역경을 헤쳐 나오면서도 맑고 투명하고 발랄한 글을 써내는 이 노(老) 작가에게, 어차피 생이란 가벼운 농담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깊은 눈으로 보고 전해주는 이 현명한 작가에겐 말이다. <아주 오래된 농담>을 계속 읽고 있으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내 인생을 이렇게 적으면 어떻게 되려나? 별 것도 없을 게다. 매일 지치고, 짜증나고, 별별 속썩는 일에 시달리는데도, 막상 인생역정 말해보라면 그닥 자신있게 할 말이 없다. 그럼, 내 삶 역시 농담일 뿐?
가족이라는 끈끈한 매듭이 한편으로는 끈적하고 불유쾌한 굴레라는 것을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선택한 적도 없는데 다시는 돌이킬 수 없고, 아들 딸 구별말고 하나 낳아 잘 기르자지만, 아직도 설문조사를 해보면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는 응답이 80%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는 것이 지레 그 사람의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것도, 거꾸로 희망을 앗지 않기 위해 사실을 숨기다가 병을 직시하지도 못하고 환자가 죽어버릴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현실은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모순에 모순이 더해지며,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알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박완서는 바로 그 순간에 펜을 대고 적나라하게 전한다. 나무랄 데 없는 의학교수 영빈과 현금의 불륜, 현금과 영빈의 아내가 같이 다니는 불임 클리닉, 영빈 동생 영묘와 시댁의 갈등, 영묘의 남편 강호의 불행한 죽음과 치킨 박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자, 그러니 이제 별 셋은 단순히 별 셋이 아니다. 농담이란 극히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웃음을 유도하는 도구. 이상하게도 이 어처구니없는 소설을 읽고 나면 별 다섯짜리 어느 소설보다도 웃음 뒤의 씁쓸한 여운이 길게 남는다. 박완서를 의식하지 말고 소설을 읽되, 소설을 덮는 순간 박완서를 느끼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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