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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다 - 쾌락주의자 전여옥의 일본 즐기기
전여옥 지음 / 해냄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으며 나는 몸이 비비 꼬이기 시작했다. 전여옥은 글을 맛깔나게 쓰지는 못해도 입에 쩍쩍 달라붙게 쓰는 사람이다. 수많은 비난의 화살은, 반대로 생각하면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반증하는 대목이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책을 들었다. <일본은 없다>가 비록 걸작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화제작이었고, 전여옥의 성향은 아주 걸맞지는 않더라도 나와 교차하는 지점이 있었으며, 한 4년쯤 지나고 나서 <일본은 없다>를 다시 읽어보니 허술한 문체와 너무 직설적이고 몰아붙이는 말투가 싫었다 하더라도 어쨌든 재미는 있었다. 나는 전여옥을 믿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다. 쾌락주의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싶었다면 더욱 감각적으로 더욱 매혹적으로 글을 꾸몄어야 했다. 작가의 식성이 까다롭든, 작가의 먹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든, 그것은 독자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우리가 읽고 싶은 것은 그러한 미각을 충족시킬 수 있는 묘하고 쌉싸름한 스시 속 와사비의 맛에 대한 표현이며, 차라리 일본 곳곳 명소에 대한 세심하고 자상한 설명이며, 그것도 안될 바에야 어디 가면 뭐가 맛있다는 철저히 정보 위주의 여행 가이드 정도 수준이나 되어라, 하는 것이다.
상당히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표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 읽고 나서도 힘이 쭉 빠지게 한다. '글맛 아는 작가' 라던 어느 신문사 기자의 리뷰가 째려보고 싶을 정도로 짜증난다. 입에 짝짝 씹히던 일본도, 그렇다고 작고 귀엽고 앙증맞고 깜찍하다는 일본도 없다. 정말 일본이 행방불명되어버린 책이다. 가끔 자기 감정에 복받쳐서 횡설수설하는 전여옥의 글이 있다. 아직 중심을 잘 못 잡은 탓인 것인가, 때로 안쓰러울 정도로 빈약한 글들이 있는데, 이 책은 그런 글들에서 약간 나은 정도다. 차라리 TV 프로그램에 대해 시원하게 욕하는 작가의 글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