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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해피엔딩
황경신 지음, 허정은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글을 읽을 때 가장 경계하는 것은 두 가지다. 유치함과 어설픔. 유치하거나 어설픈 글은 때로 내게 혐오감까지 불러 일으킨다. 에라이, 이런 삼류 같으니, 그토록 염증을 내며 외면하는 깊은 이유는 그런 유치함과 어설픔을 짐짓 딱딱한 말투와 냉소적인 말투로 자신을 포장하고 싶어하는 나의 비밀스러운 욕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것과 달라. 나는, 이렇게 말도 안 되게 허술한 것과는 달라, 하고 증명하고픈 그런 욕망.
위대함을 획득하지 못한 어떤 글들은 쉽게 유치함과 어설픔의 덫에 빠진다. 특히나, 그것이 연애에 관한 소설이라면 위험도는 더욱 커진다. 자전적인 경험이 묻어나오지 않는, 100% 지어낸 연애 이야기란 존재하기가 얼마나 힘겨운지, 아는 사람은 안다. <야심만만>에서 게스트들이 자신있게 뿜어내는 이야기들과 순위권 내 답이 풍기는 미묘한 뉘앙스를, 연애 한 번 못해본 사람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이란 참 우습다. 전쟁이 터져도 폭탄이 떨어져도 비행기가 추락해도 자신은 죽지 않을 거라고, 자신만은 특별한 개체라고 믿는 것처럼, 자신의 연애와 사랑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내 사랑은 달라. 내 사랑은 특별해. 그 믿음이 표현되는 방식이 바로, 연애소설의 유치함과 어설픔이다. 더 멋있게, 더 감동적으로, 꾸며내는 이야기들은 점점 자신이 바라는 이상향의 사랑과 닮아가고, 자신이 경험했던 연애의 모습을 모방하고, 결국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흔한 연애담 하나가 덜렁, 유치하고 어설픈 모습으로 남는다. 그것은 필연적이다. 원래 실제의 연애와 사랑에는, 아무런 개연성과 복선이 필요치 않으므로.
황경신의 연애소설은 그래서 읽기가 조금 겁났다. 설마하니 황경신이 날 실망시키랴 하는 믿음 구석에는, 이것도 그렇고 그런, 흔한 연애소설의 한 종류, 작가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읽지 않아야 하는 책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스탠드 불빛에 의지하여, 탱고를 틀어놓고, 나는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은 후에 잠들었는지 세지 못하겠다. 그리고 며칠 간 나는 계속 꿈을 꿨다. 잊었던 사람도 나왔고, 사랑했던 사람과 나를 사랑했던 사람도 나온 꿈이었다. 그 꿈 끝에서 깬 나는 늘 여운처럼 이 책의 한 부분을 펴들었다.
나도 알고 있다. 덜 사랑하는 자와 더 사랑하는 자의 놓칠 수 없는 간극을. 사랑이란 두 사람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다른 세상에서 홀연히 왔다가 제멋대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는 걸. 그 뻔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어떤 유치함과 어설픔에 발을 담그지 않고 날 울리는 이 책은, 정말이지 얼마나 묘한가. 에이와 비라는 통칭만으로도 한 때 내가 덜 사랑했던 사람과 더 사랑했던 사람을 모두 아우르는 인물들은 얼마나 서글픈가. 내가 운 이유는 소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나 역시 소설 속의 '나'였기 때문이고, 소설이 유치하고 어설프지 않았던 이유는 이 소설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황경신이 기막힌 솜씨로 우리의 뻔한 연애를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3부의 결말이 과연 해피엔딩인가? 내가 보기에 이 책에서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저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가는 것, 그 '변화'가 중요할 뿐일 게다. 그러나 왜 슬프게도 나는 사랑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그 관계 자체에 자꾸 더 눈이 가는 걸까. 아마 아직 나도 그 과정 속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황경신의 소설은, 늘 내가 생각해왔지만 그리고 알고 있었지만,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무엇', 혹은 상실에 대해 객관화해주었다. 그 솜씨는, 소설의 작품성이나 위대성을 논하기 이전에, 연애소설이라는 제 정체성을 꼭 들어맞게 입고 있는 <모두에게 해피엔딩>이라는 이 책이 얼마든지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