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의 시네마 레터
이동진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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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대한민국에서 이 '영화' 본 사람? 하면 1000만 명이 손을 들 수 있는 시대가 오나보다. 경기는 불황이고 실업률이 쑥쑥 늘어가고, 먹고 살기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시대에, 영화라니. 참 놀라울 뿐이다. 작가든, 기자든,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이라면 누구든지 이 영화를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누구나 자연스레 영화감상을 떠올리고, 만난 지 얼마 안 돼 어색한 소개팅 커플은 자연스레 영화를 보러 가고, 어쩔 땐 연애 중에 곰곰히 생각해 본다. 대체 영화가 없다면, 우린 이 시간에 뭘 하고 있을까?

영화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영화에 대한 글쓰기가 난무하는 와중에서도 이동진은 소속인 조선일보 사의 기자답지 않게 특별하고 퐁,하고 수면 위로 떠오르는 깔끔한 느낌, 세련미를 갖추었으면서도 결코 전문 용어를 혼자서 나불대다 으쓱거리며 글을 맺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드문 기자다. 종교학과 출신이긴 한데 술술 읽히는 쉬운 문장 아래 가라앉아 있는 내공은 정말이지 만만치가 않다. 그의 홈페이지에 가끔 들러 아무 글이나 읽다 보면 그때마다 대개 흠칫 놀라곤 한다. 언젠가 진주만에 대한 냉랭한 혹평을 날린 후 그에게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던 비난을 기억해 볼 때 역시나 그건 취향 문제겠지만, 아무튼 내가 읽는 이동진은 아주 매력적인 글솜씨를 가진 사람이다.

그의 몇몇 책 중에서도 굳이 이 책을 택한 건, 낯익은 제목에서부터 믿음이 갔기 때문이다. 그는 늘 저 제목 아래에서 영화에 대한 설을 신문 위에 펼쳐냈었으니까, 아마 가장 그다운 글이 담겨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이 책은 이동진의 매력이 쑥 빠져있는,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책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동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이 책을 권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신문에 실리던 글들을 그가 나름대로 고치고, 다듬고, 오랜 숙고를 거듭해서 책을 만들었을 것임에 분명한데(아닐까?) 글자 하나씩 짚어내려가며 읽어내려갈 때의 현장감을 잃어서일까, 그의 글은 뭔가 시작되는가 싶다가 끝나버리고 흥미진진할 듯 하다가 옆길로 새버린다. 이런 표현이 가깝겠다. 너무 단조로운 책이었다.

똑같은 글씨체, 똑같이 활자화되었으면서도 그 자신의 향을 폭폭 풍기던 이동진의 글이 이 책에서는 오래된 방향제처럼 읽는 이를 심심하게 한다. 그의 '영화편지'는 너무 오래 전에 보내졌던 것 같다. 영화 한 편이 1000만 명을 불러모으는 시대에서는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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