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무라카미 류 지음 / 예문 / 1996년 4월
평점 :
절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책에서 처음 무라카미 류를 만났다. 더 솔직히 이것저것 털어놓자면 '내가 아직 안 읽은 작가' 리스트에는 그 유명한 무라카미 류와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상하게 나는 일본 작가에게 손이 안 가고 정이 안 간다. 뭐 배일 감정이나 반일 감정, 그런 것 때문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 작가들의 작품을 읽기엔 그들이 너무나 많은 작품을 내놨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긴 하다. 그래서 제목이나 알면 족하지, 뭐하러 그 똑같은 얘기들(무라카미들의 책의 주인공들은 그 작가의 분신 같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은 것이다)을 읽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굳이 그들을 읽어야 한다면, 그들의 책 중 단 한 권만 읽기로 작정하고 맨 처음 보게 된 것이 류의 <69>이다.

예전에 <69>를 읽고 있는 사람을 처음 봤을 때 내 뇌리에 떠오른 것은 사람 두 마리의 체위-_-; 그래서 이 책을 약간 변태적이고 야한 소설로 지레짐작해 버리고 잊고 있었는데, 즐겁다잖은가. 리뷰들을 보고 흔들렸다. 읽고 난 기분? 그래, 즐겁다.

즐거운데 이 즐거움은 굉장히 익숙한 즐거움이다. 색깔은 달랐으나 나도 그 지겨운 선생들에게 바리케이드 봉쇄 대신 테러를 저지를 음모를 꾸몄었고(성공했으면 나도 류처럼 작가가 됐을까?) 지금은 오직 즐겁게 살려고 노력 중이며, 나의 마츠이도 일방적으로 변심해 버린 지 오래다. 비단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 뿐 아니라 <69>는 <호밀밭의 파수꾼>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 듯하고 내가 먼저 읽어버린 <GO>는 <69>에 또 많은 것을 빚진 듯하다. 내가 그 책들을 읽었듯이, 뒤에 태어난 작가들은 앞의 책을 읽었겠지. 뭐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겐의 이야기는 그 나름의 의미와 생명이 있으니까.

하지만 아쉬운 것은 책의 끝이었다. <호밀밭의 파수꾼>도, <GO>도 그냥 '거기서' 끝난다. 스기하라는 사쿠라이와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로, 홀든은 D.B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끝맺는 것으로, 홀든의 말처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처럼 바보같은 질문은 없다.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너 정말 열심히 공부할 거냐? 라고 묻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설사 그런 질문에 네, 라고 백번 천번 대답해봤자 말이다. 슬프게도 <69>는 69년을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해 일일이 다 들려줘 버린다. 이 자전적인 에필로그는 한껏 <69>의 발랄 경쾌함에 빠져있던 나를 김빠지게 했다. 뭐, 개인의 취향 차이겠지. 그러나 류의 69년처럼, 누구에게나 격동적인 시기는, 그냥 그 자체로 기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그때 그들을 모두 불러내보았자 69년이 재생되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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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맘 2004-04-28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읽으니 이 책을 하루라도 빨리 읽고 싶어지네요~
참..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추천해도 될까요? 전 바나나 중독자라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