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3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장경룡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은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을 골라 읽는 중이다. 고등학교 때 논술 대비한답시고 루소의 <에밀>을 읽다가 엉엉 울고 싶었던 기분 이후, 나의 독서 취향은 점점 더 편협해지고 소소해져 갔다. 더 이상은 안 된다, 한 번쯤 줄기를 찾아 똑바로 세울 때가 지났다고 느껴져 허둥지둥 '좋은 책'을 찾아 읽는 요즘 색다른 기분이다. <호밀밭의 파수꾼>도 그렇고, <오만과 편견>도 그렇고, <백년동안의 고독>도 그렇다. 제목이 주는 생소함 때문에 오래도록 외면하던 책들, 아니, 이런 책을 못 읽고 죽었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야금야금 책들을 아껴읽다가 그래, 이젠 아시아권까지 발을 넓히자, 하며 집어든 책이 <설국>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의 말에 따르면, 일본의 정서는 '하나'로 요약된다고 한다. [러브레터]에서 부재(不在)하는 죽은 연인을 향해 '오겡끼데스까~' 하고 소리치는 여자, [철도원]에서 역 하나만 지키는 것을 숙명으로 알고 사는 역장 남자, 사랑의 대상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오히려 그 불완전함을 완전성으로 바꾸는 묘한 일본의 정서. 흰 눈 위에 벚꽃 잎처럼 핏방울이 떨어지는 것, 할복을 하고 내장을 드러냄으로써 깨끗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믿는 그들. 굳이 식민지 시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일본인이 추구하는 '깨끗함, 불완전함, 하나, 상실, 사라짐' 의 가치들은 구성진 판소리 가락 구비마다 맺힌 한(恨)을 안고 사는 우리 민족과는 역시나 꽤 동떨어진 듯 보인다.

그러나 내가 <설국>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경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도저히 극복될 수 없는 민족적 가치관의 간극 때문이라면 그건 진짜 세상에서 제일 값싼 변명에 불과할 것이다. 다만 나는 어리둥절했다. 과연 이것이 번역의 미비 때문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고 일본에 대한 내 배경 지식이 형편없기 때문일까 자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설국>을 겨우겨우, 그야말로 숨막혀가는 기분으로 간신히 인쇄된 활자를 다 읽어내고 나자 도저히 <이즈의 무희>와 <금수>를 읽을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어째 이럴까.

미술 시간에 배운 그 숱한 개념들은 모두 까먹은 지 오래지만, 아이들과 쪽지를 주고받으면서도 늘 우스개처럼 지껄이는 말이 하나 있다. 여백의 미(美), 한국화의 흥취라면 역시 여백에서 나오는 멋스러움일 것이다. 그런데 이 <설국>이야말로 여백으로 가득한 소설이었다. 서사도 묘사도 없이, 문장 사이의 간격이 한 뼘은 되는 듯, 인물들은 별다른 감흥 없이 인형극 속의 인형들처럼 간간이 얼굴을 내비추며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었다. 아니, 이것조차 자신이 없다. 나는 여백은커녕 씌어져 있는 글자들조차 제대로 해독해 내지 못한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소설에 대해 혹평 혹은 악평을 날리는 것은 스스로만 바보 만드는 짓일 게다.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왠지 눈을 흘겨주고 싶은 욕망을 어쩔 수가 없다. 왜냐하면, 글쎄, 이건 내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 만고풍상을 겪는다 해도 절대 이해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성찰이기 때문일 거라고 해두자. 삶의 깊이와 지식의 한계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 정서적인 '벽' 앞에서 나는 문을 찾거나 그 벽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게 도움닫기를 하느니, 그냥 스스로의 무지와 무식을 탓하며 홱 돌아가버리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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