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페포포 투게더
심승현 지음 / 홍익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슬퍼진다. <파페포포> 시리즈 두 권이 엔간한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1위를 확고부동으로 지키고 있는 것을 보자면 더욱 그렇다. 대체 나의 감성은 대한민국의 저 수많은 젊은이들과는 아예 동떨어져 버린, 엽기적이거나 선정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것인가? 그러나 나를 가만히 보자면 무엇보다 '대중적'이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좋아하는 것들은 알고 보면 늘 남들도 좋아하는 것임에 틀림없는 평범한 사람에 분명한데. 내가 좋아하는 것은 대중적인데, 대중적인 것들 중에는 내가 지독하게 싫어하는 것도 분명 많다. 그래, 이렇게 생각하니 좀 낫다. 나는 무언가 용납할 수 없는 비정상, 은 아닌 것이다.

사실 <파페포포 메모리즈>를 보면서는 약간 흥에 겨웠다. 흠, 그래, 하고 고개를 주억거릴 부분이 좀 많았단 뜻이다. 그래, 그랬었지, 라고. 어떤 신문은 너무 순진하고 맑기 때문에 약간 닭살이 돋을지도 모른다고 썼었지만, 그보다는 매우 '표면적'인 감정의 물결만 일으키기 때문에 수면의 진동이 너무 약하다는 얘기가 적절할 듯 싶었다. 그러나 그건 사실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국화꽃향기>에 엉엉 울 수 있다면, 그리고 지나간 자신의 추억을 되씹으며 대입시킬 수 있다면, 아무리 약한 파동이라도 결국은 징징징 진동되어 가슴 속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 진동의 강도가 아니라 진동의 유무이다. 가슴 가장 바깥쪽의 표피도 건드리지 못하고 스러져간 그 지옥같이 유치한 숱한 이야기들을 기억해 볼 때 말이다.

그런데 <파페포포 투게더> 속에서 나는 그런 몇 번의 주억거림조차 잃어버린 채 매우 기분이 더러웠다. 내가 본 것은 전편의 성공에 안주하여 똑같은 이야기에 3D라는 새로운 조미료만 넣어 버무린 젊고 무성의한 작가의 모습이었다. 그나마 전에 넣었던 맛깔스러운 재료들은 약간 쉬어 있었는 것 같았다. 유효 기간이 지난 것이다.

아무튼, [소중한 것을 뺏는 것은 그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흔하디 흔하고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가 단 한 번 조심스레 꿈지럭거렸을 뿐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가슴에 진동을 느끼고 있을까? 돌기처럼 가슴 곳곳에 난 추억들이 반응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얼마나 딱딱하고 무딘 가슴을 지니고 있는 걸까, 하고 말이다.

뭐, 좋다. 이건 정말 선물로도 못 줄 책이군, 하고 휙 던져버림으로써 나는 내 할 일은 다한 셈이다. 참 감수성이 예민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그래도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따위가 1위라면 그것도 나름대로 슬픈 노릇일 거다. 세상에, 굴 따위를 낳고 먹어치우는 얘기가 실린 책을 읽고 낄낄대며 좋아하는 감성의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나라는 정말이지 소름 끼친다. 그러니 차가운 음료수를 먹이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사오는 갸륵하고 조심스런 마음씨에 허걱, 하고 감동하는 순수한 사람들 틈에 내가 껴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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