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이윤기 외 대담 / 민음사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책을 사고 나서 두 가지가 기특했다. 하나는 당연히 이렇게 깔끔한 구성과 편집, 쉽게 읽혀져 내려가는 이야기 속에 담긴 유려한 사유의 흐름이 기특하기 그지없었고, 또 하나는 이런 책을 순전히 '그냥' 읽고 싶어 산 내가 기특했다.

일단 등장인물의 면면을 보기만 해도 입이 딱 벌어질 만한, 내노라 하는 지성들이 모여 있다는 것만 해도 구미가 당기는데 책 곳곳에 자리잡은 사진들은 마치 대화의 순간에 독자가 바로 옆에 있는 양 생생하게 분위기를 전달해 준다.어찌 보면 책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활자들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화자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것이 사진들이라고 말한다면,그건 너무 '오버'하는 걸까?

어쨌든 시간 날 때면 틈틈히 읽고 싶은 대담만 골라 읽다 보니 어떤 부분은 몇 번을 읽게 되기도 하고,책을 산 지 꽤 지난 지금도 영 손을 못 댄 부분이 있다.뭐,그게 대담집의 매력 아니겠는가.맨 첫편에 실린 이윤기(소설가이며 번역가이며 신화학자라는 타이틀에 빛나는)와 그 분의 딸 대화가 있는데,딸과의 평범하고 무난한 듯한 대화에서도 이렇게 빛나는 '이야기' 자체를 끌어오는 힘에 그저 탄복할 뿐이다.제목으로 쓰인 <춘아,춘아..>도 이 신화학자(라고 해두고,생략하자) 이윤기가 소개한 노래에서 따온 것이다.

춘아,춘아,옥단춘아,너희 아버지 어디 갔니?
우리 아버지 배를 타고 한강수에 놀러 갔다.
봄이 오면 오시겠지?
봄이 와도 안 오신다.
꽃이 피면 오시겠지?
꽃이 펴도 안 오신다. ..

이렇게 이어지는 노래는 끝이 없다고, 이것을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아이 시절에 불렀는데 알고 보니 우리 무가(巫歌) 본풀이였다며 이윤기는 이것이 바로 '신화적 서술'이라고 한다.그러고 보니 다시 한번 융의 원형(Archetype)개념을 곱씹어 볼 수 밖에 없게 된다. 나도 어렸을 적 '꽃네'라는 여인이 등장하는,일종의 민담인 듯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계속 [참외 줄까? 참외 싫다.00 줄까? 00 싫다.우리 엄마 젖을 다오.우리 엄마 젖을 다오...]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노래를,음도 모르는데 계속 뇌리에 맴돌고 있는 노래를 머릿 속으로 흥얼거리곤 했다.그러니 인간의 공통적인 본질을 깨닫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우리의 영혼 속에 끝없이 진화하며 새겨지고 있는 어떤 것들에 관하여 말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그러한 노래를 부르기 위한 훌륭한 악보가 되어줄 것이다.어떻게 노래를 불러야 할지,음은 어떻고 가사가 어떤지,이 시대에는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며 지금 우리의 지(智)는 어디까지 와 있는지에 대한. 이 기특한 책에 대한 서평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다니,참 한심한 노릇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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