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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 카이에 소바주 1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3년 1월
평점 :
'썩'이라는 수식어는 함부로 붙일 것이 아니다. 오히려 '최고의' 라는 찬사보다도 까다롭게 제 뒤의 주어를 선택하는 단어, 취향의 다채로움과 다양한 지식적 깊이와 넓이를 감안하고서 나오는 '썩'이라는 말, 아무튼 이 책은 그 수식어가 썩 어울릴 정도로 아주 유쾌하게 잘 만들어진 책이다. 번역상의 문제가 지적되기는 했지만(한자로 써주면 간단히 이해될 단어를 굳이 일본어로 길게 풀어썼다는 점 등) 전반적으로 한 학기분의 강의록답게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유연하고 일관성있는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요즘 시대에도 왜 신화가 유효한지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 역시 우물 안 개구리식의 독선이 아니라 설득력있는 문장으로써 다가온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도 재미있고, 칼 융의 <인간과 상징>도 해박하고 풍성한 지식의 장에서 꿈과 신화, 인간의 삶과 직결되는 상징을 읽어내려갈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만, 어딘가에 걸터앉아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 될 것이다. 보통의 책보다 약간 작은 듯한 느낌의 판형과 노란색과 검정색으로 이루어진 표지도 깔끔하니 손 안에 쏙 들어와 마음에 든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신화적 요소를 빠짐없이 추출해냈다는 점에서, 얼마 전 나온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의 '손이 없는 소녀' 이야기에 낯설어했던 독자라면 더더욱 강력히 추천한다. 특히 신데렐라 이야기의 또다른 버전인 미크마크 인디언족의 이야기는 그 원형적 신화의 완전성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자체로 매우 인상적이다.
골치 아프게 신화를 파고들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지만,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는 무언가 본질적인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드는 사람이 읽는다면 책을 덮는 순간에 '썩' 만족스런 마음이 되어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