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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 - 매트릭스의 철학 매트릭스의 과학
글렌 예페스 엮음, 이수영·민병직 옮김 / 굿모닝미디어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헛, 주간 베스트 18위 정도 되는 책의 첫 리뷰어가 될 줄이야.
[매트릭스]의 매력은, 사실 영화 관객보다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준다는 데에 있다. [매트릭스]만 본 사람들은 그리 시끄럽지 않다. [매트릭스]에서 매트릭스 이상의 것을 보려는 사람들은 다들 모여들어 와구와구 한 마디씩 하는 데 바쁘고, 이 책도 어쩌면 그 틈바구니에서 마침 생성된 부산물 같은 거다. 매트릭스 3:레볼루션의 전세계 동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더욱 깊이있고 푸짐한 감상을 위해서 혹시나 한 번쯤 읽어볼까나, 하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자신있게 말린다. -_-;
슬라보예 지젝 방한 후 그의 인지도가 더욱 높아져 <매트릭스로 철학하기>의 인기도 살짝쿵 올라갔으리라 짐작되지만, 처음 이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가 너무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탓에 슬라보예 지젝이 엮은 저 책은 거의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물론 이것은 메이저 언론에 국한된 얘기다,독자들의 선택은 다를 것이므로) 아, 역시나 알라딘에서는 <매트릭스로..>가 3위에 올라있는 것 같다.
아무튼 책은 엉성하기 이를 데 없다. 독자는 마치 빨간 알약을 먹을까 파란 알약을 먹을까 고민해야 하는 그들처럼 두 권의 책 중에서 선택의 기로에 설지도 모르지만 사실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점은 제대로 된 '아젠다' 하나 세우지 못하고 조각배처럼 망망대해를 한없이 떠도는 산만함이다. '단 한 편의 글밖에 읽을 시간이 없다면 이 글을 읽어라' 라고 권하는 맨 첫번째 글을 읽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마치 내가 시간을 일부러 죽이고 있는 양, 시간이 아까워진다. 음. 내가 왜 이 글을 읽어야 하는 거지?
이런 류의 책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깊이 아니면 재미인데, 어느 쪽도 제대로 일궈내지 못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도 굳이 칭찬할 거리를 찾자면 맨 앞에 실린 글은 그나마 매트릭스에 대한 분석적 시각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정도의 흥미와 수준을 보여주는 글이 그 한 편 뿐이라는 점. 뒤로 갈수록 점점 필자들은 초점을 잃어가고, 매트릭스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갑자기 우리 시대 과학 기술에 대한 신중한 검토로 이어져 어처구니가 없다. 결국 모든 작품의 완성도는 한 끗 차이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 '한 끗'은 결코 넘을 수 없을 육중한 무게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