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 대개의 것이 그렇듯이 작가도 몇 개의 군으로 나뉘어진다.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에 감히 호불호를 가를 수 없는 작가(누가 셰익스피어가 재미없어서 싫다고 하겠는가), 사람에 따라 취향이 뚜렷이 갈리는 작가(수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단 한 명의 평론가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슬픈 평가를 받는 김진명 같은 작가), 그리고 그 작가의 작품을 읽은 사람과 읽어보지 못한 사람으로 갈리는 작가(왜냐하면 일단 읽어보면 누구도 '재미없다'고 말하기엔 쉽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는 작가이기 때문에) 등등.

베르나르는 세번째 유형에 속한다. 일단 그의 작품을 읽고 나서 '에이, 재미없어' 하기에 그의 이야기 풀어내는 솜씨는 너무나 경쾌하고 약간 컬트적이면서도 신기할 정도로 놀랍다. '프랑스의 천재 작가' 라는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붙곤 하는데 나는 그보다도 우리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 그를 부르고 싶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와 더불어 같이 빛나는 훤한 머리를 지닌 그는, <개미> 를 통해서 자신의 그 광대한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보이기 시작했고 드디어 <나무>에까지 이르렀다.

사실 베르나르의 책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나무>까지 오기도 전에 이미 그가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가치관을 벌써 눈치챘을 것이다. 그는 인간을 세워놓고 썰어서 육질을 확인해 보기도 하고, 현미경으로 세세히 관찰해 보다가, 파블로프처럼 먹이를 줄 때마다 종소리를 내는 실험 같은 것도 일삼는다.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개미나 천사를 갖다가 옆에 세워놓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가 끈질기게 놓지 않고 있는 화두는 바로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다.(쓰고 보니 폴 고갱의 그림 제목이며 공지영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군.)

아무튼 인간이라면 누구나 숙명적으로 지닌 이 화두를 베르나르는 여전히 의미심장하게 비꼬면서, 우리를 웃기면서, 풀어나가려고 애쓴다. 자꾸만 그가 다작多作의 작가가 되어가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의 이야기샘이 자꾸 퍼낼수록 더욱 풍성해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17까지 셀 수 있으면 최고의 엘리트가 되는 세상, 너도나도 앞다투어 사자를 기르다가 먹히는 세상, 마치 그것처럼 '애완 인간'을 길러 보라고 권유하는 세상. 그의 세상은 여전히 자유롭고 재미나다.

훗날 그는 이 시대의 루이스 캐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작가)로 기억될지도 모르고, 그의 작품들은 <해저 2만리>같은 대접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어쨌든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참, 내가 느끼기에 이 책의 백미는 무지 꿍꿍한-_- 냄새가 나는 유성을 진주로 탈바꿈시킨 눈물겨운 노력이, 마치 우리 인간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없애준다는 세균들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묘해졌던 이야기('냄새')였다. 베르나르는 늘 인간에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의 이야기를 뒤집어보면, 우리가 너무 일상적으로 대하는 가전제품에게조차 그는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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