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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최복현 옮김 / 노마드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어린 왕자가 만난 이상한 어른들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가 사준 전집으로 <어린왕자>를 처음 만났다. 그 때의 나는 이해력이 부족했는지 보아뱀, 코끼리 이야기까지 읽고 덮었다. 그리고 30대 중반인 지금 원본인 프랑스어와 한국어, 영어 번역이 담긴 <어린왕자>로 다시 만났다. 덕분에 독서와 영어공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생각으로 왼쪽 한국어, 오른쪽 영어 번갈아 읽었다. 프랑스어를 몰라서 뒤쪽에 원본과는 비교해볼 수 없었기에 처음으로 프랑스어를 아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나는 내가 그린 걸작을 어른들에게 보여주면서 무섭지 않은지 물어보았어요. 그랬더니 어른들은 오히려 “모자가 뭐가 무섭다는 거니?”라고 반문하는 거예요.
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게 아니었어요. 그것은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을 그린 거였거든요. 그런데 어른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거예요. 12쪽]
‘나의 그림 제1호’ 아무리 봐도 모자로 보인다. 모자 중에서도 중절모……. 하지만 연장자에겐 맞춰주지 못해도 어린 사람에게는 맞춰주는 성향인 나는 속으로는 ‘모자가 아니라 괴물을 그린건가?’ 혹은 ‘이게 뭐가 무섭다는 거지?’라는 생각에 잠기면서도 겉으로는 “이게 뭔데?”라고 물어볼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보아뱀의 속을 그렸다는 그림을 본다면 “아! 무서운 뱀이 커다란 코끼리를 삼켰구나!”라며 맞장구쳐줄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도 공감을 바랐으니까…….
[“널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어린 왕자가 말했어요.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돼. 우선 넌 나와 좀 떨어져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는 거야. 난 곁눈질로 널 볼 거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씨앗이거든. 그러면서 날마다 너는 조금씩 더 가까이 앉으면 돼…….” 160쪽]
여우가 말한 길들이는 방법은 내가 사람들에게 정말하고 싶은 말이다. 너무 빠르게 오지 말라고……. 나에게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나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곁눈질 혹은 멀리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너무 급속도로 친해지려는 사람들이 부담스럽다.
친해지겠다고 결혼여부와 호구조사를 하는 사람들, 나이를 물어보고 내가 더 어리면 곧바로 반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오히려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차라리 내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더 묻고 싶으면 차라리 취미를 물어보든가.) 그리고 내가 나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질 때까지 참고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어린 왕자가 견문을 넓히기 위해 방문했던 별들에서 만난 왕, 허풍쟁이, 주정뱅이, 상인, 점등인, 지리학자. 모두들 이상한 어른들이다. 혼자 있는 별에서 자신이 제일 중요하고, 제일 힘든 일을 하고, 제일 많이 소유하려하고, 제일 부끄럽다고 여기니까 말이다.(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제일’밖에 모른다.) 그런데 일곱 번째 별인 지구에는 이십억 가량의 이상한 어른들이 살고 있단다. 서로 잘나기 위해 경쟁을 하고 자신이 제일 불행하다고 여기며 주위는 둘러볼 생각이 없는 현대인들을 향한 일침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나는 술을 마셔본 적이 없지만 난 아마 저들 중에 부끄러움을 잊고 싶어서 쉬지 않고 술을 마시는 주정뱅이에 가까운듯하다. 일반적이지 못한 가정환경, 학교폭력이 끊이지 않았던 학창시절이 나에겐 아킬레스건이니까. 그래서 나를 팔방미인, 지식인으로 만드는데 집중하니까.
-노마드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