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의의 악플러 ㅣ 콩고물 문고 3
김혜영 지음, 이다연 그림 / 스푼북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악플에는 ‘정의’란 없다
준하는 어린이 집에 있는 동생을 데리러 가기 전 햄버거 가게에서 또래로 보이는 낯선 남자아이에게 이상하게도 갖고 싶어지는 열쇠목걸이를 받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날 엄마가 운영하는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장난을 치는 영운이를 보며 열쇠를 만지자 아무도 없는 복도로 이동하고 서늘함을 느낀다. 그러다 목에 걸린 열쇠로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말더듬이로 놀림을 받았던 영운이의 유치원 시절이 눈앞에 펼쳐진다. 무엇이든 열 수 있다던 그 열쇠는 사람의 마음을 여는 열쇠였던 거다. 준하는 학교와 학원에서 친구들을 괴롭히는 영운이를 혼내주겠다는 목적으로 학교 게시판에 ‘정의의 악플러’라는 닉네임으로 영운이의 따돌림의 상처와 말더듬이라는 약점을 폭로하는 글을 올리고 학교 아이들은 그 글에 쉼 없이 악플들을 쏟아낸다.
[영운이 사건 이후에도 준하는 ‘정의의 악플러’라는 이름으로 여러 번 글을 올렸다. 그중에는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 것도 있었는데,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불친절함이나 영어 선생님의 편애에 대한 글들에는 댓글이 몇백 개씩 달렸다. 준하는 ‘우리들 이야기’가 곧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워낙 아이들의 참여가 높아서인지 학교에서도 쉽게 없애지 못했다. 이제 ‘정의의 악플러’는 온라인상에서의 영웅이었다. 73쪽]
[문장 하나하나는 이미 말이 아니었다.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칼 혹은 총이었다. 이만하면 다희를 쓰러뜨리기에 충분하다싶은 생각이 들 때까지 준하는 정신없이 흉기를 휘둘렀다. 87쪽]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마음이 놀랍도록 가벼워졌다. 준하는 말이 지닌 무게를 실감했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말을 영영 전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마음을 전해야하는 걸까. 148쪽]
같은 아파트에 사는 배우 한연우의 모습들이 가식적이라는 생각에 가면을 벗기겠다는 일념으로 사이트 이곳저곳에 쓴 준하의 악플로 인해 자살시도로 추정되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수술부작용으로 세상을 떠난 부분에서는 내가 20대 후반에 삶의 줄을 놓은 여배우가 떠올랐다. 그녀도 당당하지 못한 사람들의 악플에 시달리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으니까 말이다. 악플을 당한 건 그녀지만 그녀의 가족들에게도 지워질 수없는 상처를 남겼다. 딸은 잃은 엄마, 엄마를 잃은 남매, 누나를 잃고 2년 후 그 먼 곳까지 따라간 남동생……. 영운이가 배우 한연우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가족들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처럼 그들도 그녀의 가족들을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안했다. 차라리 앞에서 듣는 언어폭력은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기에 받아칠 수라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과 익명성에 감춰진 악플은 꼼짝없이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더욱 ‘장난이었다.’, ‘욕 좀 먹어야 된다.’등은 변명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범죄다. 악플을 쓸 시간에 보이지 않는 칭찬 혹은 위로의 선플을 하나라도 더 쓰는 습관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싶다.
-스푼북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