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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딩파이브 도와줘! - 10대들의 고민 상담 어플 ‘홀딩파이브’ 이야기
김성빈 지음 / 마리북스 / 2015년 4월
평점 :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가 5분씩이라도 용기를 낸다면
<홀딩파이브 도와줘!> 도서정보를 통해 ‘홀딩파이브’ 어플을 알게 되어 내 핸드폰에 깔았었다. 소개된 대로 교우관계, 학업, 진로, 부모와의 갈등 등으로 많은 사연들이 올라와있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서른이 넘도록 왕따, 학교폭력이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공부도 못했던, 아직 성공도 못한 너무 부족한 내가 해피인이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아이들의 말은 점점 거칠어졌습니다. 숨고만 싶었습니다. 모두 나를 벌레 보듯 했고, 누군가 흘깃 보기만 해도 ‘쟤도 나를 이상하게 보겠다.’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졌습니다. 너무도 많은 아이들에게 나쁜 말을 듣다보니 나중에는 나조차도 ‘내가 정말 그렇게 나쁜 아이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세뇌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나쁜 말을 듣다보면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처럼 믿게 되는 거죠. 20쪽]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 저학년 때까지는 ‘바보’, 초등 고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는 ‘병신’, ‘미친년’, ‘못생긴 게’, ‘재수 없어.’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녔던 말들이다. 다른 아이들이 못한 건 잠깐의 실수였고, 내가 못하는 건 바보, 병신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얼굴이 크거나 뚱뚱하거나 피부가 까만 건 매력이었고, 약간 돌출된 내 앞니, 왼쪽 눈 옆에 자리 잡은 점, 부스스해 보이는 내 반곱슬머리는 꼴불견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나는 파마 보다는 매직 펌을 선호하는 편이고, 20대 중반에 놀림감이었던 점도 뺐지만 피부라도 하얘서 다행이라는 생각뿐 아직까지도 내가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나마 외국어를 할 줄 알아서 내가 정말 머리가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만 여전히 나 자신을 팔방미인으로 만드는데 집착한다.
[“백번 양보해서 피해자가 모두 잘못했고 모든 원인을 제공했다고 해요. 그렇다면 가해를 해도 되나요? 그 아이들에게 그런 권리는 누가 주었나요?” -중략- ‘그렇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를 가르쳐야 하는 곳이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97쪽]
내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의 가해자들도 주변 어른이 끼어들거나 내 엄마나 선생이 혼내려들면 “얘가 먼저 때렸어요.”라는 거짓말로 빠져나가거나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건데 서연이가 삐뚤게 나가요.”, “서연이가 심심해 보여서 놀아준 거예요.”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들을 늘어놓았다. 게다가 지우개를 안 빌려줬다 혹은 부탁도 안 들어줬다는 어이없는 핑계도 있었다. 그리고 어른들도 나를 장난이나 농담을 받아주지 않는 속 좁은 애, 문제가 있어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애 취급했다. 심심해 보여서 놀아준다는 게 허구한 날 와서 언어폭력을 날리고, 펜을 안 빌려준다고 악을 쓰면서 좀생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점심시간마다 떼로 와서 반찬을 빼앗아먹고, 반찬 빼앗기는 거 싫어서 빵을 싸오니까 빵도 빼앗아 먹으려들고 안주니까 교실바닥으로 떨어뜨려서 못 먹게 하는 건가? 그리고 그런 행위들을 장난이나 농담으로 받아들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정말 속 좁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어한다고 가해를 해도 된다는 심판권은 누가 줬던 걸까?
[세월호 친구들이 아픔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을 때 모든 어른들이 말했습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하지만 어른들은 그 말을 곧 잊어버리고 우리가 필요로 할 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얼마나 힘들고 무섭고 외로웠을지 다 안다고 하지만 우리를 진심으로 안아주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수많은 친구들이 깜깜한 밤 잠 못 들고 한없이 불안한 마음을 부둥켜안고 홀딩파이브를 찾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178쪽]
내가 필요로 할 때 그 자리에 없었던 어른은 그나마 덜 원망스럽다. 그 자리에 있었음에도 도와주지 않았던 어른들이 두 배로 원망스러우니까 말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가? 아파트 단지 옆 배구장에서 바닥에 떨어져있던 장난감 자동차를 호기심에서 만졌는데 뭔가가 빠져나갔던 것 같다. 초등 고학년 남자애 여러 명이 물어내라며 둘러싸고 집에 못 가게 했고 나는 배드민턴을 치고 있던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두 남녀 어른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집에 가라는 말뿐 괴롭힘을 저지해주지 않았다. 여러 명이 막아서 빠져나가지 못하는걸 알면서도 배드민턴을 치는데 열중할 뿐이었다.
저자가 왕따를 심하게 겪었던 여고생 때의 ‘죽고 싶다.’와 어플에 사연의 주인공인 드림인들의 ‘죽고 싶어요.’라는 짧은 말들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건 나 역시 중학교 2학년 때 자살시도를 해봤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도 학교 가는 날 아침이 제일 무서웠고, 나를 예뻐해 주는 선생들도 없고, 일반적이지 못한 집안환경 등으로 그만 살고 싶었다. 그리고 귀신이 되어서 복수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때 세상을 등지는 시도에 실패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과거의 가해자들에게 잘된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으니까…….
-마리북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