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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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김누리라는 중앙대 독문학과 교수가 나와서 대한민국의 교육혁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리고 그 강의내용에 참석자뿐만 아니라 관중석에서 모두 환호할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들은 김누리 교수의 주장을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반응했기 때문이다. 김누리 교수가 제시하는 데이터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아도 너무도 분명히 드러나는, 이전의 수많은 교육개혁가들이 주장했던, 주장을 조금 선명하고 과격하게 이야기한 것일 뿐이었다. (나 역시 김누리 교수와 유사한 주장과 논거를 조금 더 과격하게 나의 청소년 소설 허균, 서울대 가다에서 피력하였다.)

그러면 관중들이 김누리 교수의 주장을 환호하는 이유를 다른 데에서 찾아야 했다. 촛불혁명을 거치고난 이후에야 들을 귀가 생긴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나?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구매한 책이 바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해냄, 2020)이었다. 책은 순식간에 읽혔다. 그리고 책의 서문에서 밝힌 바대로 강의의 모든 내용이 방송을 탄 것은 아니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짤려서 내보내졌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TV나 인터넷을 통해 방송만 보고서 김누리 교수의 이야기를 다 들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책은 방송에서 짤린 부분들을 복원하고, 거기에 내용을 더 강화하여 완결성을 높여 놓았다.

책은 우리가 정치적 민주화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성취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 문화민주주의 등 일상의 영역에서 왜 야만적인 상태에 놓여있는지에 대해 역사적, 국제적, 사회문화적 논거를 들어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수구와 보수의 과두제적 통치지배에 불과함을 국제표준적(?) 기준을 들어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는 문제인 정부에 대한 근원적 한계를 밝히는 것인데, 이를 방송으로 내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야수적 자본주의를 온전히 유지하는 수구와 보수의 거대양당체계가 지배하는 나라인 것이다.

물론 김누리 교수는 과격함을 자신의 무기로 삼는 것이 아니다. 그는 냉철하게 우리나라와 독일의 사례를 비교하고,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을 국제적 표준에서 성찰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대학입시제도와 철폐와 경쟁적 교육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 계급계층의 구성분포에 어울리는 정치지형의 형성, 노동자를 중시하는 노사관계의 구성, 병리적 증세에 빠져있는 남북한 사회의 발본적인 개혁을 요구한다.

김누리 교수가 이번에 쓴 책은 왜곡된 우리사회의 모습을 바로잡는데 중요한 시선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2020년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잘 읽히고 가장 통쾌한 책이라 생각한다. 특히 세계적인 변화를 일으켰던 68혁명에 대해서, 가장 잘못된 인식이 상식처럼 여겨졌던 독일통일에 대해서, 우리사회의 객관적 지형에 대해서 뿌연 안경알을 선명하게 만들어 세상을 바르게 보는데 아주 유용한 책이다.

 

<추신> 김누리 교수의 책을 구입하여 읽은 독자에게 내가 쓴 허균, 서울대 가다(, 2018)도 구입하여 김누리 교수의 책과 비교해보시길 당부한다. 김누리 교수의 주장이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 형상화한 좋은 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써놓고나니 조금은 얼굴이 붉어지지만, 어쩔 수 없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이니까. 하지만 좋은 독자가 없는 좋은 책은 조금 쓸쓸하다.


우리가 민주주의자가 아닌데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지? 하는 물음인 셈입니다. 얼마 전 이런 의미에서 한 신문에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광화문에 모여서 목이 터져라 민주주의를 외친 사람이 집에 가서는 완전히 가부장적인 아버지요, 다음 날 학교에 가서는 아이들을 쥐 잡듯이 들볶는 권위주의적 교사요, 혹은 회사에 가서는 갑질을 일삼는 상사라면, 민주주의는 어디서 하지요? 다시 말하면 이 나라에서는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가 괴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충분히 민주주의자가 되지 못한 거지요. 일상 민주주의는 광장 민주주의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일상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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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말 - 한계를 뛰어넘어 자유롭고 새롭게 보는 눈
천인츠 지음, 문현선 옮김 / 미래문화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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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사상의 주요한 관념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꼽으라면, 저는 혼돈에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노자로 바꿔 말한다면, ‘에 한 표를 던지는 것처럼 말입니다.(122)

 

만약에 나에게 장자 사상의 주요한 관념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꼽으라면 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장자는 자유와 변신의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장자는 막힘이 없고 거침이 없으며 하늘을 지붕으로 땅을 마당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상가이다.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기도 하고, 가장 낮은 똥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 평생 과업 중에 하나가 장자에 대해 열 권 쯤 쓰는 것이다. 한 권이면 되지 왜 하필 열 권이냐고 묻는다면, 장자는 읽을 때마다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내가 변해서일 수도 있고. 세상이 변해서일 수도 있으며, 장자 자체가 무궁무진하여 내가 다 엿볼 수 없어서일 수도 있다. 이번에 읽은 천인츠(陳引馳)장자의 말(미래문화사, 2020)장자에서 뽑은 88편의 쪽 글을 저자의 에세이를 붙인 형식으로 쓴 가벼운 장자읽기 책이다. 내가 장자에 대해 쓰고 싶은 책 중 머리 속에 장자의 맛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는데, 한 끝 차이로 비켜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자에 대해 살펴보니 푸단대학교 중문과 교수로 도가, 불교와 중국 고전문학 전문가로 소개되고 있다. 그의 저서 중 이 책이 유일한 국내 소개 저술이다. 중국 고전에 능통한 저자라서 그런지 장자의 문구를 편하게 소개한 글 속에 다양한 중국고전 작품들이 종종 등장한다. 설명이 억지가 없고, 교양인으로서의 풍모가 드러난다. 전문적인 교양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사람인데, 전문성에 기대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장자를 읽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장자 관련된 많은 책이 학술적인 책이라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에게 이 책은 기꺼이 소개할 수 있는 장자 에세이라 할 수 있다. 문제를 쉽지만 일상어 속에서 깊이를 느낄 수 있어 어느덧 장자에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장자식 에세이의 모델을 보는 듯 반가웠다.

장자는 이야기꾼이다. 장자 자체가 재미있다. 하지만 장자의 이야기 속에는 현실을 뒤집어보고, 달리 보고, 넓게 보고, 깊게 보는 다양한 표현들이 있어 읽는 이의 수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다. 이 책은 그 높이와 깊이와 넓이와 다르게 보기의 세계로 현기증이 일어나지 않도록 차분히 인도한다. 장자가 이야기꾼이라면 저자 역시 이야기꾼임에 분명하다.

나는 장자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교양서로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장자는 인간 문명에 대한 근원적 통찰하고, 인간 언어와 인식의 한계를 지적하며, 가난하지만 소박한 삶을 통해 자유를 추구할 수 있고, 하늘과 땅 사이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갈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자는 오래된 미래라 할 수 있다. 장자가 어려워 엄두를 못 내던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추신> 내가 쓴 청소년 소설 장자, 아파트 경비원이 되다와 전국시대 사상가들을 비교한 청소년 교양서 장자에게 놀고 먹는 법을 배우다라는 책도 장자관련 책이라는 사실을 살짝 밝혀둔다.


(장자의 세계는) 삼라만상을 포괄하는 세계입니다. 그저 사람의 세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지요. 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입니다. 만물이 한데 어우러지면 함께 나고 자라며 저마다 자신의 색채와 소리를 내는 세계지요. 이러한 세계에서 장자는 자신을 펼쳐 보이며, 사방으로 시야를 열고 팔방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거닐며 커다란 흐름에 몸을 맡기도 움직이지요. 이는 천지와 더불어 나고 만물과 하나가 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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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 - 카피라이터로 24년, 그럭저럭 터득한 글쓰기의 기본에 대하여
다나카 히로노부 지음, 박정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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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대부분의 일본 실용서는 간결하다. 마치 매뉴얼을 읽는 기분이다. 내가 일본인이 쓴 실용서를 안 읽는 이유다. 마치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뻔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그런데 이번에 읽은 다나카 히로노부의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인플루엔셜, 2020) 은 약간 성격이 다른 책이다. 간결하지만 메뉴얼 같지 않고, 솔직한 고백으로 실실 웃게 만드는 책이다. 표지에 부제처럼 써놓은 부분이 있다. “카피라이터로 24, 그럭저럭 터득한 글쓰기의 기본에 대하여.”이다.

오랫동안 카피라이터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중, SNS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원고 청탁을 받고, 책을 쓰자는 의뢰를 받고, 여기저기서 강연 의뢰가 오는 사태를 겪은 지은이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소개된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와 과정도 재미나는데, 출판사 기획자의 끈질긴 요청 때문에 마지못해 수락하고, 원고를 차일피일 미루다 간신히 쓴 책이라고 저자는 고백한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다.

그렇게 해서 써놓은 내용도 별 내용 없다(?). 특별한 글쓰기 기술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저자만의 비법을 공개한 것도 아니다. 그냥 무심할 정도로 솔직함을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컨셉이다. 그런데 그게 유쾌하다.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고, 타깃(특정한 독자) 따위는 없으며, 글을 쓰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순위의 1863위에 해당한다는 둥 실로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솔직함으로 자신의 태도를 고백한다. 돈을 벌라면 차라리 직접 돈을 버는 일을 하라기도 하고, 글로 유명해지는 것보다 유명한 사람의 한 마디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뼈를 치는 현실감각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힘은 그 무식하리만큼 솔직함으로 글쓰기의 환상을 제거하고, 글쓰기는 힘든 일이고, 힘든 만큼 돈도 안 되지만, 일단 재미난 일이고, 글을 쓴 이후에 예상치 못했던 재미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는 저자의 경험담이 솔직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서도, 어쨌든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저자가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자신은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지 이야기하는 글쓰기 책이다. 독서와 자료조사를 충실히 하는 모습, 사상(事象)과 심상(心象)이 교차하는 곳에서 생긴 문장이 에세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전달하는 모습에서 저자의 솔직함을 넘어 충실성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는 이 기본기에서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저자의 말마따나,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을지도 모른다.

저자에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쓴 다나베 세이코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글을 쓰면, 인생 따위, 어느 날 순식간에 변해버려.” 그리고 저자는 그 말을 정말로 경험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나도 해본 것이어서, 거짓이 아님을 안다.

 

<추신> 이 책에서 제일 재미난 부분은 글쓰기가 아니라 취업하기 위해서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썼는지 비법을 공개한 것이다. 매번 취업에 실패한 취준생에게 이 부분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103쪽부터 121쪽에 걸쳐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무익한 글쓰기 기술이나 공허한 목표를 향하는 삶보다는, 글쓰기가 갖고 있는 본래의 즐거움과 약간의 귀찮음을 알려주기 위한 마음으로 썼다. 그리고 동시에 무엇보다 내 자신을 위해 쓴 것이다. 모든 글은 자신을 위해 쓰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37쪽)

한밤중에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허리 통증을 견뎌가며 키보드를 두르려 글을 쓰고, 자신이 쓴 끌에 스스로 조금 웃는 것, 그것이 글 쓰는 사람의 생활이다.(94쪽)

칭찬해주는 사람에게 ‘다음에도 또 칭찬을 받겠다’라고 생각해서 글을 쓰면 스스로 재미를 잃게 된다. 어느 쪽이든 평가의 노예가 된 시점부터 글쓰기가 싫어진다. 타인의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쓰는 것은 자신이다. 아무도 대신해서 써주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 인생을 산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인 것이다.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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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 계보학 창비시선 254
권혁웅 지음 / 창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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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생 시인 권혁웅. 시집에 있는 사진을 보니 환하게 웃고 있다. 선하게 생겼다. 젊어서 그런가? 궁금증에 인터넷을 뒤져 최근 사진들을 검색한다. 살이 조금 올랐지만 선한 기운은 여전하다. 장난기가 살아있다. 그가 2005년도에 쓴,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쓴, 《마징가 계보학》(창비시선 254)를 읽었다. 은유가 쓴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기도 했고, 제목도 나와 동시대인임을 분명히 알리는 것이었기에 기꺼이 9000원을 투자했다. 잘했다.



시집에는 내 어릴 적 즐겨 보았던 (만화) 영화 주인공으로 가득하다. 저절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제목(주인공)들. 마징가, 애마부인, 미키마우스, 요괴인간, 투명인간, 가위손, 스파이더맨, 드래곤, 드라큘라, 독수리 오형제, 나폴레옹, 슈퍼맨, 배트맨, 엑스맨, 아톰, 원더우먼과 악당들, 돌아온 외팔이, 황금박쥐! 모두들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었던 주인공들이다. 만화영화의 경우 주제곡도 막 떠오른다. 추억 소환용으로 이만한 책이 따로 없다. 그런데 제목만 (만화) 영화 주인공이지, 내용은 모두 작가의 어린 시절 동네와 주변에서 같이 지내고 겪었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이야기이다. 시들은 적절한 비유와 유머와 위트에 깊은 페이소스를 곁들였다. 웃으며 읽었다가 찔끔 눈물을 흘리게도 한다. 피식 웃었다가 깊은 한숨으로 마무리된다. 이런 장난꾸러기 시인 같으니라고, 울다가 웃으면 000에 털이 나온다는데. 오늘 아주 나를 싸스콰치(설인괴물)로 만드는구먼.

그의 시에는 높은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차라리 사라졌거나 잊혀진 존재들, 기억에 조차 머물지 않을 것 같은 존재들이 소환되어 시에 주인공으로 떡하니 등장한다. 그는 비루한 일상생활이나, 초라한 과거에서 만났을 법한 인물들을 빛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오르고, 그가 시에 등장시킨 인물들과 유사한 골목의 친구들과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래 이들도 충분히 시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기억 바깥에 있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 내 앞에서 웅얼거린다. 

요즘에는 무슨 시집을 내었을까 궁금해졌다. 뒤져보니 요즘은 아니지만 2013년에 쓴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창비시선 369)가 검색된다. 아이고, 여전하구나. 제목을 훑어보니 이번에는 인물이 아니라 장소다. 도봉근린공원, 금영노래방, 불가마, CGV, 의정부부대찌개집, 춘천닭갈비집, 조마루감자탕집, 김밥천국, 오징어 나라, 24시 양평해장국, 포장마차, 조개구이집, 고려삼계탕집, 이발소까지. 나라도 한 번쯤은 가봤을 곳에서 무진장의 시를 길러내고 있었다. 일단 찜하자.

쭉 훓어내려가보니 평론집도 여러 권 냈구나. 평론집은 일단 패스! 어랍쇼, 사전류도 냈네. 《꼬리 치는 당신–시인의 동물감성사전》(마음산책, 2013), 《생각하는 연필-시인의 사물감성사전》(난다, 2014), 《미주알 고주알-시인의 몸감성사전》(난다, 2014), 《외롭지 않은 말-시인의 일상어사전》(마음산책, 2016) 등 범상치 않은 제목의 사전도 여러 권. 음, 모두가 감성사전이로군. 지름신의 강림하시려 한다. 이를 어쩐다. 일단 《외롭지 않은 말-시인의 일상어사전》만 찜해두자. 이 정도쯤 되면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직업인지, 책을 사는 것이 직업인지 헛갈린다. 아무렴 어떠랴. 시 한 번 찰지게 읽었다. 그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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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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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읽고 있는 책은 주로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이다. 젊은 시절 논술강사로 밥을 꽤 벌어먹고 살았지만, 논술이라는 글쓰기는 매뉴얼이 정해져 있는 제한된 글쓰기라 글쓰기 전반을 다루고 있지 않다. 직접 쓴 책이 20권이 넘었지만, 그것은 나의 글쓰기에 한정된 것이라, 이 역시 많은 이에게 권장할 수 있을지 막연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글쓰기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는지 꽤나 궁금해졌다. 하여 글쓰기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벌써 20권 넘게 읽고 정리한 듯하다. 구입한 책 중에서 너무도 뻔한 실무적 글쓰기는 제외하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 페미니스트가 쓴 책들이 한참 기억에 맴돈다. 왜일까?  

내가 페미니스트들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정희진이 시작이 아닐까 싶다. 나와 거의 비슷한 동년배로서 같은 시대를 다른 무늬로 살았던 점이 인상 깊었던가?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며 주로 정치적 이슈와 독서에 매몰되어 있었던 시기에, 정희진은 꾸준히 페미니즘을 소개해왔었다. 내가 페미니즘 책을 읽었다면 정희진이 책 속에 소개한 책들로부터 시작된 것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몇 해 전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읽으며 나는 막연하게 21세기는 페미니즘의 세기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페미니즘은 21세기 기독교다.”라고 나는 선언적으로 말했다. 1세기의 기독교가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듯이, 그래서 사유의 방식과 글쓰기의 문법을 바꾸어 놓았듯이, 21세기는 페미니즘적 사유방식과 문법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다. 이는 근대 마르크스주의와 맞먹는 사건이다. 노동자와 자본가로 세상을 양분한 마르크스주의만큼 여성과 남성으로 양분하는 페미니즘은 큰 틀에서 새로운 혁명적 사상이다. 전통적인 페미니즘이 여성과 남성의 문제에서 출발했다면, 포스트 페미니즘은 이 이분법을 넘어 젠더, 생태, 노동, 환경, 세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진화하고 있다. 페니미즘이 여성만의 이론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이 페미니즘적 세계를 새로 배우면서 늘 깜짝깜짝 놀란다. 나에게 너무도 당연한 현실이 불편한 현실로 인식되고, 내가 즐겨 쓰던 언어가 자꾸 걸리고,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권력의 산물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얼뜨기 관념 페미니스트에 불과하지만, 중년 남성의 몸으로 페미니즘의 옷을 입는 것은 꽤나 새로운 도전이고 실천이다. 늘상 불편하면서 언제나 각성할 수 있는 인식의 도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홍승은 작가는 우리나라에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이다. 물음표(?)를 찍은 것은 ‘대표적인’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권위성 때문이다. 이 형용사를 페미니스트들이 좋아할까 싶다. 저자 소개란에 “2013년부터 ‘불확실한 글쓰기’ 수업을 통해 글쓰기 안내자로 살아가고 있다. 서울, 대전, 대구, 통영, 공주 등 전국 각지의 책방 및 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을 다니며 글쓰기 수업을 한다. 타인과 연결될 때 삶과 문장은 단단해진다. 고립되지 않고 연결되는 글쓰기를 위해 앞으로도 함께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라고 적혀 있다. 이 이력이 만들어놓은 책이 이번에 쓴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어크로스, 2020)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글쓰기 수업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글쓰기 수업 모습을 보며 많이 반성하고 배운다. 

책의 후반부에 작가가 글쓰기 힘들 때, 또는 신선한 자극을 읽을 때 참고하는 작가들의 이름이 꽤나 나열되어 있는데, 나의 독서와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데 새삼 놀란다. 같은 하늘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구나 싶다. 기록에 남겨두었다가, 시간을 내어 찾아 읽어봐야겠다.   

이번 책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동녘, 2017)에 이어 단독으로 쓰는 두 번째 책이다. 공동 저술한 책은 《소녀들》(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7)과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프북스, 2017)이 있다. 이 책들 역시 구입목록에 올려놔야겠다. 첩첩산중이라더니 첩첩독서로구나.

     


글쓰기는 단지 지난 시간을 기록하는 활동이 아니라 경험을 기반으로 끈질긴 사유와 해석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기존의 관념을 비틀고 경험을 다각도로 해석할 때, 내 글은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62쪽)

각자의 고유한 자국을 존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 텐데.(92쪽)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쓰는 사람으로 지녀야 할 태도를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는 내 위치의 한계 알기. 그럼에도 연대하려는 노력을 버리지 않기.(142쪽)

내 이야기를 쓰려고 앉았는데 만약 누군가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면, 그 사람의 사연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다.(166쪽)

글을 마무리하기 막막할 때마다 서두르지 않으려 노력한다. 방심하면 쉽게 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일명 깔끔한 봉합의 유혹. 교훈이나 해피엔딩으로 끝맺음하려는 관성.(232쪽)

욕심에 비해 빈약해 보이기만 하는 내 사유와 문장들. 무한 반복하는 좌절과 읽기와 쓰기의 굴레 속에서 차곡차곡 해나가는 힘을 기르고 싶다.(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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